[사진 한 잔] 어서 오십시오

2025-01-10

건물 한 채에 4개의 간판이 걸렸다. 먼저 1층에는 할랄 음식을 파는 이스탄불 식당과 ‘마가리타의 주방’이라는 러시아어 수식이 딸린 중앙아시아권 식료품 상점이 있다. 현지어와 영어가 도드라진 간판으로 보아 인근의 동향인 커뮤니티를 상대하는 가게로 보인다. 그 위층으로는 노래주점이 자리 잡고 있다. 호객을 위한 파란색 영어 간판의 어색한 띄어쓰기는 서로 다른 외국인 집단 간의 공통어인 영어가 서툴게 작동하는 단면을 보여준다. 경기가 좋지 않은 탓인지 벌써 문을 닫은 주점 위로는 세속의 계단을 지나 도달하는 성소처럼 러시아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건물 밖 다국적 언어들은 끼니를 해결하고 유흥을 즐기고 종교 활동을 하는 삶의 기본 조건이 국적을 초월한 누구나의 일상임을 실감하게 한다.

작은 건물 한 채에 한국과 유라시아의 문화가 뒤섞인 이곳은 김해시 동상시장의 밤 풍경이다. 김수로왕이 아유타국 공주와 결혼해 생겨났다는 원조 국제도시 김해는 이렇듯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중국 등에서 일자리를 찾아 외국인이 몰려드는 그야말로 초국적 도시가 되었다. 이들은 주로 김해와 인근 산업 도시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최요한은 1년 반에 걸쳐 한국의 다국어 경관을 기록했다. 서울의 이태원이나 동두천, 구로동처럼 흔히 떠오르는 다국적 거리에서 시작해 미군기지 주변이나 대구, 안산, 김해로 발길을 뻗어 나갔다. 자본이 개입해 부러 이국적 상권을 만들어내지 않는 한 대다수의 다국어 경관은 생계가 부담되지 않는 도시 외곽에서부터 자생적으로 생겨난다. 그 경관은 한국 사회가 애써 외면하려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는 신호이자 시각적 좌표다. 그 좌표를 따라가다 보면 도시별 노동의 양상이나 번영과 쇠락, 문화 전파의 흔적이 나타난다. 최요한의 작업은 사월의눈 출판사가 한국 시각문화의 단면을 책으로 엮어내기 위해 기획한 결과물이다. 사진집 제목은 ‘어서 오십시오’. 작가가 외국인 거리에서 가장 많이 마주한 다국어 문구에서 따왔다. 어서 오라는 인류 공통의 인사는 그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초대의 말이자, 환대를 그리워한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송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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