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도 생각하며 산다’
- 김준태 시인
나무도 생각하며 산다
나무도 눈입코귀가 열려있다
새들이 날아와 둥지를 틀면
노래를 가르쳐주고 휘파람을
불어준다 예, 그럼요 나무도
예쁜 손은 물론 발도 있다오
사람들이 잠든 시간에 나무는
달빛 속에서 걷기를 좋아한다
나무는 언제나 생각하며 산다
강물에 자기의 모습을 띄우고
바람의 파란 붓으로 시를 쓴다
나무는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와
노래하기를 좋아한다 먼 옛날에
어쩌면 나무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해설>
미국의 시인 리처드 브라우티건(Richard Brautigan, 1935-1984)이 1961년에 발표한 시산문집 《미국의 송어낚시》는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정수로 꼽힙니다. 그는 그 작품에서 “전 할머니가 송어하천인 줄 알았어요.” 자신이 착각한 내용에 대해서 이렇게 용서를 구합니다. 그의 방식을 빌면 “저는 나무가 사람인 줄 알았어요. 죄송해요.”가 됩니다.
이 시는 문예지 <포스트모던>(2021년 겨울호)에 발표됐는데, 시인의 내면에 자리한 생명 사상은 과거 베트남 참전 경험에서 출발합니다. 그는 전쟁의 비극을 직접 체험하고자 종군기자처럼 자원했습니다. 그가 베트남 전쟁터에서 “사지가 찢긴 전우의 시신을 모아놓고 담배와 소주를 넣어 화장하여 저승길로 떠나보내는 장례 의식을 지켜보면서 평화에 대한 열망을 추구하게 됐다”며,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시인은 강렬한 반전 정신과 물질주의를 비판하고 목가적인 꿈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허무를 나무로 의인화해서 극복하고 있습니다.
시는 “나무도 눈입코귀가 열려있다”는 전제로 시의 무대가 열립니다. 나무는 새에게 “노래를 가르쳐주고 휘파람”을 불어줍니다. 나무는 예쁜 손과 발이 있어서 “달빛 속에서 걷기”를 좋아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무는 언제나 생각하면서 살기 때문에 “강물에 자기의 모습을 띄우고 / 바람의 파란 붓으로 시를 쓴다”며 시적 메타포가 절정에 이릅니다. “나무는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와 / 노래하기를 좋아한다”고,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평화의 대합창으로 막을 내립니다.
인류의 진보란 첨단 과학의 발전이 아니라 삶에서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고 느낄 때 진정한 진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전쟁으로 지구촌 곳곳에서 죽음이 끊이지 않는 오늘은 더욱 그렇습니다.
강민숙 <시인,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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