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지금 '노태우 위인전'이라니…계엄과 내란이 그립나 [데스크 칼럼]

2025-01-15

노소영·노재헌, 父 노태우 찬양 '만화 위인전' 도서관 배포 강행

12·12 , 5·18 사과 없이 업적만 부각

하필 계엄·탄핵 정국에…"아이들에게 독재자 본받으라는 건가"

지독한 아이러니다. 왜 하필 지금일까. 윤석열 대통령이 45년 만에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즈음,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 등은 논란의 어린이용 '만화로 읽는 인물이야기, 대통령 노태우'를 20여 곳의 전국 소규모 도서관에 배포했다.

노 전 대통령이 누군가. 그는 1979년 신군부 계엄의 핵심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12·12 군사반란 사건을 주도한 인물이다. 이후 신군부의 정권 장악을 본격화하기 위해 전국에 5·17 비상계엄을 확대 실시하고 다음 날인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했다. 대통령 재임 중에는 자신의 군사 반란을 정당화했지만, 그다음 정부에서 내란중요임무 종사자로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내란수괴 죄목으로 함께 기소된 전 전 대통령은 무기징역에 처해졌다. 이렇게 비상계엄의 요건이나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비민주적 방법으로 헌법 기관의 기능을 불가능하게 한 것이 내란죄라는 대법원의 판례는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에 의해 완성됐다.

그래서 윤 대통령이 '12·3 계엄 사태'로 내란죄 피의자가 된 것은 현대사의 지독한 아이러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면되지 않고 내란의 죄를 범한 것에 대한 합당한 죗값을 치뤘다면, 또 그때 교훈을 얻었다면 어쩌면 윤 대통령은 무리해서 비상계엄을 발동하지 않았을 지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노태우 위인전이 비판의식이 없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전국의 도서관에 무차별적으로 배포되는 것은 우려할 만하다. 노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어린이들에게 편향된 역사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서다. 실제 이 만화는 노 전 대통령을 미화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민주화와 경제 성장을 동시에 이룬 주인공이라든가 서울올림픽 개최와 북방정책 등 긍정적인 부분만 묘사했다. 반면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일으킨 12·12 군사 반란, 뇌물 수수 등 과오는 언급하지 않거나 왜곡·호도하는 기술마저 보이고 있다. 군사독재와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을 민주화와 경제 성장으로 바꿔치기한 것이 한 예다. 지난해 출판기념회에선 이를 "노 전 대통령은 민주화와 경제 성장을 동시에 이룬 주인공이지만, 성과에 비해 가장 저평가됐다"며 억울한 피해자인 것처럼 설명하기도 했다.

물론 출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이 책의 출간 자체를 탓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아무리 자기 입장대로 역사를 서술하더라도 노골적 사실 왜곡이나 편향된 역사 인식을 비판의식이 없는 어린이에게 심어줘서는 안 된다. 이런 내용은 아이들의 판단을 혼란케 할 소지가 있다. 더욱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법적 평가는 역사적 사실로 남아있다. 12·12를 군사 반란, 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기술한 역사 교과서와도 어긋난다. "아이들에게 독재자를 본받으라는 거냐"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더구나 이것이 국민 공감대 수렴도 없이 노태우 일가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대단히 위험한 영웅화·우상화 작업이다. 군사정권 범죄수익 국고환수추진위원회(환수위)는 노 전 대통령의 ‘위인 만들기’에 막대한 자금이 동원되고 있고, 여기에 비자금 일부가 쓰였는지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인과 일족의 물욕을 채우기 위한 노 전 대통령의 과오를 현대적으로 포장해 다시 유포시키려는 하나의 시도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니 노소영 관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숨겨진 비자금이 드러난 것이나 김옥숙 여사가 2000년부터 2001년까지 210억원에 이르는 비자금을 차명으로 보관하다가 보험금으로 납입해 자금을 세탁한 정황이 밝혀진 것, 불법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152억원을 노재헌 원장의 공익법인에 기부해 불법 증여한 사실 등 노태우 일가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역사적 과오는 미화할 게 아니라 반성해야 할 일이고, 상처는 덮을 게 아니라 치유해야 할 문제다. 어떤 미사여구를 막 갖다 붙여도 자명한 가해-피해 관계가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노태우 일가가 이번 윤 대통령 계엄·탄핵 정국에서 깨달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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