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人] "자립준비청년들 인생 바꾸는데 일조하는 보람"

2024-10-17

<편집자註> 시민사회는 '시대의 창(窓)'일뿐 아니라 가장 강력한 '여론 형성의 장(場)'입니다. 세상의 흐름을 알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읽지 못하고선 미래를 꿈꿀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人)과 쉴새없이 소통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각양각색 사연을 [스토리人] 코너를 통해 소개해 드립니다.

해마다 만 18세라는 이유로 보육원에서 퇴소해야 하는 아이들은 약 2천600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 아이들이 세상에 나와 첫 홀로서기를 할 때 우선 부딪히는 난관은 보금자리다. 준비도 채 안 된 상황에서 사회로 내몰리는 이들에게 있어 안락한 자신만의 둥지는 심리적 안정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런 처지에 놓인 아이들에게 기꺼이 손을 내미는 이들이 있다. 사회적 협동조합 ‘십시일방’이 그중 하나다. 십시일방은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주거와 교육 등을 제공하며 돕는 일을 한다. NGO저널이 십시일방의 이호영 대표와 만나 이들을 돕는 십시일방과 그의 활동 이야기를 들었다. 1990년생인 이 대표는 2022년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하는 등 공익 분야에서 인정받는 유명인사다. 현재 십시일방 대표 겸 한양대학교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 이 대표님 반갑습니다. 그나저나 십시일방은 십시일반에서 따온 이름입니까?

"반갑습니다. 맞아요. 십시일반이라는 사자성어를 변형시켜 만든 이름입니다. 저희는 자립 준비 청년들에게 방을 주는 일을 해요."

- 방을 나눠줘요?

"네. 만 18세 전까지 아동보호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거주하다 보호 조치가 종료된 아이들, 즉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주거지를 제공하는 공익법인입니다. 이 아이들은 성인이 되면 보육원에서 나오게 되는데 바로 어제까지는 보호받다 만18세 됐다고 바로 오늘 그곳을 나와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단 하루 차이인데 말이죠."

- 듣고 보니 그렇군요.

"그럼요. 바로 이 아이들이 사회로 나갈 준비를 돕는 일이 저희 일이에요. 이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방을 제공함으로써 저희가 완충 역할을 합니다. 임대주택과 같은 곳을 아이들에게 주거지로 제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아이들이 원하는 위치와 맞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말 그대로 부동산은 움직이지 않고 아이들이 원치 않더라도 입주해야 하는데 저희는 이 한계를 좀 극복해보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지을 땅이 필요한 임대주택과 같은 경우 보통은 역세권에서 다소 먼 곳에다 짓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형편이 어렵고 차가 없으니 지하철, 버스와 떨어진 곳의 임대주택으로 가게 되면 삶이 더 어려워지는 거거든요. 이 문제를 극복할 방법을 고민하다 한국의 전세제도를 활용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죠."

- 전세제도를 어떻게 활용합니까?

"전월세 제도의 임차보증금을 지원해주는 방식이에요. 보육원을 퇴원하고 나와 살 곳이 필요한 아이들이 지원하면 선발된 아이들에게 임차 보증금을 지원합니다. 예를 들면 보증금 2천만 원에 월세 50으로 정하면 부동산 앱을 활용해 원하는 지역을 찾는 거예요.

만일 아이가 서울시청역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면 그 근처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싶을 거예요. 그럼 예산에 맞는 월세의 원룸을 구하도록 하고 혹시 전세사기는 없는지 등 저희가 검토해서 아이와 함께 부동산에 가서 계약서 쓰고 그 집에서 살도록 해주는 거죠."

- 살 수 있는 기간은 어느 정도인가요? 지원하는 아이들이 한 두 명도 아닐 테고 보증금을 모아놓으면 그것도 목돈일 텐데, 그 돈은 어떻게 마련하는지 궁금하네요.

"하하. 당연히 목돈이 듭니다.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집에서 1년 동안 살게 되고요, 경우에 따라 연장이 가능합니다. 보증금 비용은 개인 기부자로 충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어서 기업으로부터 기부 받아 사용하고 있어요. 비씨카드에서 저희에게 임차보증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3억 원을 기탁해주었습니다. 3년째 기부를 받아 아이들의 임차보증금으로 사용하고 있죠.

특정한 지역, 장소, 건물에 있는 방에 아이들이 들어가 살도록 하는 게 아니라 유동적으로 아이들이 자기가 살고 싶은 곳에 살도록 매칭해주는 겁니다. 아이마다 각자의 사정이나 원하는 곳이 다르고 2천만 원이라는 목돈이 없으면 우리나라 부동산 구조상 월세가 올라가니, 저희 방식이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보증금과 월세를 지원해주면 아이들이 부담할 비용은 크게 줄겠네요.

"그렇죠. 관리비 정도만 아이들이 부담하면 됩니다. 저희는 주거지원 외에도 금융, 요리, 정서 교육 등 분야에서 1년 동안 한 달에 두 번 정도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 아이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 십시일방 사업은 언제 시작하셨어요?

"십시일방을 설립한 때는 2020년 5월이에요. 그 이전에 하던 일은 십시일밥이라고 식사를 지원해주는 단체를 만들어 운영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인 2014년 3월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에 그 일을 했었어요. 제가 평소 봉사에 관심이 있어서 포털을 검색하다 연탄봉사라는 게 있길래 지원해 한 달 동안 해봤는데, 그때 느꼈던 건 한번 봉사하러 나가면 거의 반나절 이상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었어요. 너무 힘들더라고요.

이런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내 삶 가까운 곳에서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고민하다 재학 중인 학교 식당 봉사를 기획하게 됐습니다. 학생 식당 영양사님께 바쁜 점심시간 한두 시간 동안 식판 닦는 것 도울 테니 식권을 달라, 받은 식권은 필요한 학생들에게 기부하겠다고 제안한 거죠. 그렇게 시작해서 39명의 봉사 동아리가 한양대에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전국 29개 대학교까지 식권 기부 봉사활동이 확산됐고요. 저희가 기부한 식권만 20만 장(약 10억 원)이 넘었어요.

하지만 또 하나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식권 기부는 한명 당 5만 원 정도였는데, 어느 순간 이 금액이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외부 인터뷰를 하게 될 때마다 사회 변화에 일조한다고 말하곤 했는데, 이 정도 금액으로는 그렇게 얘기하고 다녀선 안 될 것 같더라고요. 하하.

그래서 단순히 밥을 먹도록 해주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어떤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청년들에게 주거를 마련해주는 일을 해보자고 결심해서 두 번째 공익법인으로 십시일방을 만들게 된 거죠. 십시일밥은 지금은 다른 분이 맡아 잘 운영되고 있어요."

- 그렇군요. 보통 대학 때는 좋은 기업에 취업하거나 어떤 거창한 목표와 계획을 세우기 마련인데, 어떻게 기부와 봉사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그 방향으로 진로를 틀게 된 계기라도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하하. 저도 원래 취업을 하려던 사람이었어요. 다만 제가 남들보다 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봉사해보니 시스템적으로 잘 만들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뛰어든 겁니다. 봉사라는 건 꼭 멀리 가서 하는 게 아니고 가까운 학교 생태계 안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식당 봉사를 기부로 연결시켜 시스템화하는 아이디어를 실천한 것뿐이에요.

저는 원래 이렇게 모델링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 궁극적으로 취업을 하던 무엇을 하든 제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직접 하다 보니 이 사업 자체가 잘 됐고 저도 이런 일을 좋아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어 제 업(業)으로 삼은 것이죠."

- 십시일방을 운영하면서 도움을 주거나 혹은 주지 못해 기억에 남는 사례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역설적이게도 저희가 도와주지 못했던 아이의 사례에요. 처음 십시일방을 오픈하고 막 사업을 시작했을 때인데 누군가 저희 SNS 채널로 연락이 온 거예요. 한 여자아이였는데, 사연이 딱했죠. 보호종료가 되면 각 아동들에게 1천만 원~2천만 원 정도 목돈의 정착금을 지원해 줍니다.

문제는 그 아이 주변인들이 그걸 알게 되요. 근데 이 아이에게는 친모가 있었던 거죠. 친부모가 있어도 가정 상황에 따라 아동보육시설 등에 맡겨지는 경우가 있고, 보호종료가 됨에 따라 다시 부모님과 연락하거나 원가정에 복귀하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이 여자아이의 경우 정착금을 받은 사실을 친모가 알고 다시 잘 해보자고 접근한 거죠. 엄마와 아이가 1천만 원 보증금으로 단칸방을 얻었습니다. 근데 엄마라는 사람이 아이 모르게 집주인에게 얘기해서 보증금을 빼 도망간 거예요.

아이는 친모에게 두 번 버림받은 셈이죠. 전 재산인 천만 원을 잃고 집에서 쫓겨난 아이가 저희에게 연락을 해왔던 거예요. 저희는 당연히 돕겠다고 했는데, 연락을 취하는 사이 어느 순간 연락이 뚝 끊겼어요. 연락을 할 수 없었던 무슨 사연이 있었겠지만 아직도 이 아이가 계속 생각납니다."

- 십시일방 사업을 하면서 항상 밝은 면만 보는 건 아닐 것 같습니다. 도와주면서도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경우도 있습니까?

"음...가장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중복 지원의 문제에요. 사실 십시일방 사업을 알고 지원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자립 의지가 있는 아이들이에요. 그리고 이 아이들은 우리 사업에만 지원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업에도 많이 지원하죠.

문제는 민간사업자끼리는 개인정보를 공유할 수 없기 때문에 한 사람이 여러 사업에서 중복으로 수혜를 받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몇 몇 아이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면접을 통과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그 사업 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는지, 자기 스토리를 어떻게 하면 잘 어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 중복 사업의 수혜를 받는 케이스가 발생하게 됩니다."

- 또 그런 문제가 있군요? 아이들에게 골고루 지원이 돌아가야 할 텐데 몇몇이 수혜를 독점적으로 받으면 문제가 되겠어요.

"전략적으로 여러 사업에 지원하여 수혜를 중복으로 받는 친구들이 있지만, 그래도 지원할 자격이 되니까 또 지원한 거잖아요. 자신이 중복으로 수혜하면 남들에게 기회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생각은 개인이 하기 어려우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해요.

정부에서 하는 사업은 일원화해서 정보 공유가 가능하지만 민간 사업자의 경우 그게 안 되어서 현실적으로 막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정보에서 뒤처지고 약한 아이들에게도 지원이 돌아갈 수 있도록 그런 아이들을 발굴하는 작업이 업계에서 활발히 일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 사업을 하다보면 정부정책 등 지원책이나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많이 느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사실 정부 지원은 정말 드라마틱하게 많아졌어요. 여야 할 것 없이, 이전 정부나 현 정부나 지자체나 이런 이슈는 정쟁화가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자립 청년에 대한 지원은 계속 성장해왔습니다. 그 덕분에 보육원 보호 종료된 아이에게 정착지원금은 원래 500만 원이었는데 불과 5년도 안 된 지금은 2천만 원으로 늘었습니다. 거기에다 보호종료 후 5년까지 매월 자립수당을 50만 원씩 줍니다. 이 지원책은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에요. 재정적으로는 충분히 좋아졌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하다고 생각합니다."

- 근본적인 문제는 뭔가요?

"본질은 결국 가정의 문제라고 봐요. 아이들 지원책은 다 사후적으로 도와주는 것인데 보다 근원적인 문제의 해소 없이는 사후약방문이 아닌가... 지금 보호대상아동 또는 자립준비청년 문제는 부모가 있는데도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실제로 아동보호시설을 가보면 부모가 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부모 노릇이 어려워도 포기 안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포기하는 경우도 있어서요. 사실 부모가 애정을 가지고 꾸준히 함께 했으면 좋겠다 싶어요. 모든 문제가 가정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가정이 바로 서고 아이를 잘 키우면 해결되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 듣다 보니 결혼은 하셨는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가정에 대한 소신이 확고한 듯 보입니다.

"하하. 결혼했습니다. 아직 아이는 없고요. 가정을 이루면 책임감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간 신뢰도 중요하고요. 가정이란 신뢰를 깨뜨리지 않고 성실해야 유지되는 것이고 아이를 키운다는 건 더욱 그렇겠죠. 사실 요즘 저출산으로 말들이 많지만 저는 반대로 젊은 사람들이 결혼과 양육에 대해 더욱 신중해져서 나타난 현상일수도 있다고 봐요.

현실적 여건이 안 되는 상황에서 섣부르게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일 뿐이죠. 매번 저출산 저점을 경신하지만 보호종료 아동수는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가정폭력 등 보호가 필요한 아동 발견율이 높아지는 원인도 있지만 결국 가정의 문제 등 복합적인 인간의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 말씀 잘 들었습니다. 올해 하반기 안으로 마무리 지어야 할 단기 목표, 그리고 장기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들려주시죠.

"단기 목표라면 새롭게 10명의 아이들이 선정되어서 10월까지 모두 입주할 예정인데 이 작업을 순조롭게 끝내는 거예요. 이 아이들이 내년 말까지 1년 동안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게 가장 중요하고 장기 목표는 기부처 다원화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은 대형 카드사에서 펀딩을 받아 사용하고 있지만 지속가능성 면에서는 안정적이지 않아요.

저는 NGO 공익법인의 안정성은 소수의 큰 기부액이 아니라 적어도 다수의 꾸준한 기부금이 뒷받침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단체의 지속성을 위해 운영에 사용할 소액 기부자 발굴을 위한 노력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NGO저널에도 실렸습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