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리더 부재’ 시대에 살고 있다. 정치, 경제, 종교, 교육 등 사회 거의 모든 곳에서 믿고 존경하며 따를 만한 리더가 부족함을 절감한다. 대통령, 국회의원, 공무원은 머리를 조아리고 귀를 세우기보다는 권력을 앞세워 자신을 합리화하고 국민을 지배하려고 한다. 자기 이익에 매몰돼 돈놀이에 집중하는 기업들도 적잖다. 타락한 종교 지도자도 다수다. 교육계에도 아이들을 팔아 이익을 챙기거나 자리를 보존하려는 행태가 여전하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은 지난 2~3년 동안 정부와 극심한 대립각을 세웠다.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노골적인 충돌이었다. 이 회장과 정부는 사사건건 정면으로 맞붙었고 여파가 지금도 여전하다. 파리 올림픽 이후 정치권과 행정권은 이 회장을 대놓고 공격하고 있다.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에서 체육계 원로들은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이기흥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은 지난 2년 동안 실정을 너무 많이 했다. “판단력이 흐려졌다” “고인 물이 썩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정 회장 주위의 사람들은 예스맨 또는 방관자였다. 반대 의사를 슬쩍 내비쳤을 뿐 절대 안 된다고 맞선 경우는 거의 없었다. 스타 출신 인사들도 자신에게 수익을 안겨다주는 팔로어들이 듣기 좋은 소리만 했을 뿐 행동하는 리더는 없다.
지금 스포츠계에서는 선거가 한창이다.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해 중앙 경기단체장을 뽑고 있다. 이기흥 회장 연임을 막겠다며 여러 후보들이 나섰다. 저마다 “후보 단일화”를 외치지만 “내가 먼저 내려놓겠다”는 후보는 없다. 이들이 내놓은 공약도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 축구협회장 선거에도 정몽규 현 회장, 허정무 전 국가대표팀 감독 등이 출마를 선언했다. 정 회장이 내놓은 비전에도, 허 후보가 내놓은 공약과 지금 펼치는 여론전에도 별로 기대할 게 없다. 중앙 체육단체가 이 모양 이 꼴이니 지방 체육단체 선거도 이보다 나을 리 없다. 선거인단 조작설, 줄세우기식 기표법 등 괴소문들이 돈다. 스포츠계도 더러운 정치판으로 전락했다.
스포츠계가 정치화, 경기인 중심 카르텔화하면서 스포츠 분야에서 꿈을 키운 사람들이 떠나고 있다. 지식과 경험을 겸비한 인재들은 돈을 찾아, 꿈을 찾아 다른 곳으로 갔다. 경기단체와 멋진 사업을 해보겠다고 나선 기업들도 경기인들이 자행하는 제 식구 챙기기에 혀를 내두르며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과거 스포츠 발전을 위해 전폭적으로 지원한 기업들도 스포츠계에 만연한 배타적인 자기 고립의 한계를 절감하며 등을 돌리고 있다.
훌륭한 스포츠계 리더는 없는가. 자신의 눈높이를 체육인을 넘어 국민의 수준에 맞추고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릴 사람은 없나. 자기 사람 챙기기, 자리 나눠주기, 이권 개입 등이 숨겨진 공약이 아니라 실현 가능성 있는 냉정한 약속과 심장을 뛰게 하는 청사진을 제시할 사람은 없는가. 봉사, 희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정당당하게, 투명하게, 공정하게 일할 리더를 찾는 게 어려운 것일까.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은 증가하는 상황에서 스포츠계 발전을 주도할 리더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잘못 뽑은 리더는 조직만 망치는 게 아니라 전체 생태계를 마비시키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