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혼란으로 정부의 손발이 묶여있는 사이 한국경제의 골든타임이 일분일초 낭비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절벽 위에 서있음을 보여주는 세 가지 심각한 징후를 살펴보자. 첫째, 한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이고, 출산율은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두 지표 모두 2위와 상당한 격차가 나는 압도적인 수준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10대부터 30대까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며, 특히 20대 사망의 절반 이상이 자살로 인한 것이다. 출산율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OECD 국가 중 합계출산율이 1 이하인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우리 청년들은 자손을 남기기 위한 본능을 갖기 전에 극심한 경쟁 압력 속에서 사회적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자살률·출산율, 지방소멸, 부채 등
절벽 위의 우리 사회 징후들 뚜렷
2차 베이비부머 노동시장 머무는
향후 10년이 우리 경제 전환 기회
둘째, 한국의 수도권 집중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며, 비수도권 지역은 전례 없는 속도로 소멸하고 있다. 현재 수도권에는 인구와 경제력 창출, 그리고 일자리의 절반 이상이 집중되어 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의 분석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국 228개 시군구의 57%에 해당하는 130개 지역이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었으며, 2047년에는 모든 시군구가 소멸위험지역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셋째, 한국의 가계부채는 GDP 대비 90% 수준으로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에 속하며, 1인당 실질소득증가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미래세대에 전가되는 고령화의 청구서이다. 국민연금 개혁이 하루 지연될 때마다 미래세대의 부담이 885억원씩 쌓이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건강보험 지출은 2024년 98.7조원에서 2033년 197.4조원으로 10년 내 100조원 가까이 증가한다. 뿐만 아니라 소득하위 70%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 예산은 도입 해인 2014년 7조원에서 올해 26조원이 넘었고, 5년 후에 4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대외 환경도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우선주의 기조 아래 관세를 무기로 자국 내 투자를 강요하고 있다. 중국은 전기차, 2차전지, 석유화학, 조선, 메모리반도체 등 모든 첨단기술 분야에서 한국의 최대 경쟁국으로 부상했다. 올해 마이크로소프트 단 하나의 기업이 AI 데이터센터에 100조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한다. 기후위기의 위험성은 LA 산불 사태에서 보듯 더욱 고조되고 있으며, 북한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으로 한반도 주변 정세의 불확실성도 증대되었다.
지금의 정치 혼란이 87년 체제가 낳은 제6공화국 정치 시스템의 한계를 보여준다면, 경제사회적 난맥상은 97년 외환위기 직후 재편된 경제구조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 경제가 구조개혁을 통해 근본적 전환을 이룰 수 있는 체력과 시간은 10년도 남지 않았다. 2차 베이비붐 세대(1964~74년생)가 향후 10년에 걸쳐 은퇴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당장 2027년부터 국민연금지급액이 보험료 수입을 넘어선다. 결국 2차 베이비부머들이 노동시장에 머무는 지금이 우리 경제의 마지막 기회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이 골든타임, 우리의 과제는 명확하다. 첫째, 철저한 가계부채 총량관리와 주택정책을 통해 부동산 가격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 최근 부동산 가격은 대출 규모에 따라 움직인다. 정책대출은 주택 가격을 떠받치며 시장의 연착륙을 방해한다. 주거안정을 위해서라면 재정을 써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 둘째, IMF 외환위기 직후 인터넷과 IT 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2000년대의 먹거리를 마련했듯이, 국가의 모든 자본과 역량을 AI를 포함한 미래 산업 육성에 집중해야 한다. 건설 투자로 거시경제지표만 일시 개선하는 관행을 끝내야 할 때다. 전국의 인프라가 어느 선진국보다 최신 사양이라고 아직도 못 느꼈는가. 미래세대의 소득으로 연결될 산업육성에 올인해도 재원이 모자라다. 셋째, 국민연금개혁을 연내 반드시 완료해야 한다. 또한 기초연금과 내국세에 연동된 교부금과 같이 인구성장기에 설계된 우리 사회의 재정구조를 인구축소 사회에 맞게 전면 개편해야 한다.
우리의 중위연령은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 30.3세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36.7세를 거쳐 올해 46.7세로 급격히 상승했다. 불과 5년 후면 인구 절반이 50대 이상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회복력과 활력이 떨어지듯, 우리 경제도 대내외 충격을 극복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현저히 떨어지며 구조적 장기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 전국민 소비지원금, 부채증대를 통한 부동산 경기부양과 건설투자는 경기하강의 고통을 잠시 완화하는 진통제일 뿐만 아니라 미래성장의 발판을 허무는 일이다. 암환자에게 진통제를 투여한다고 암이 완치되지 않는다. 외과적 수술과도 같은 산업구조개혁과 장기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산업 발굴에 자본과 인력을 집중할 시간이다. 10년도 남지 않았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