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수련 비용, 국가가 책임져야

2025-01-13

심정지 상태의 30대 여성 응급환자가 병원 22곳에 연락했으나 이송을 거부당했다가 3시간 반 만에 겨우 치료를 받은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지난 1년간 이어진 ‘의·정 갈등’으로 인한 치료 지연은 이제 일상이 됐다. 국민도 의료기관도 피해가 막대하다.

필자는 10여 년 전에 6대 암 수술 환자 14만7682명을 수술 건수 기준으로 하위·중위·상위로 병원을 나눠 분석해봤다. 그 결과 하위·중위 병원에서 1개월 이상 수술 지연된 환자는 상위 병원에서 1개월 이내 수술받은 환자보다 사망률이 높았다. 예컨대 위암은 1.96배, 대장암 1.87배, 직장암 2.15배, 췌장암 1.78배, 폐암 2.21배, 유방암 3.81배나 높았다.

치료지연으로 국민 생명 큰 타격

전공의·의대생 복귀할 명분 줘야

의료 투자 위한 수가 현실화 필요

의정 갈등을 방치했다가는 응급환자의 치료가 지연될 뿐만 아니라, 중증환자가 상대적으로 경험 부족한 병원에서 부적정 진료로 생명과 건강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의료 인프라와 국민 건강은 장기적으로 심대한 폐해를 경험할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의 태도 변화 없이는 전공의들과 학생들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껏 국민·정부·의료계 모두가 상처받은 패배자인데,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다.

의대 정원 문제 등 누적되고 뿌리 깊은 구조적인 문제로 촉발된 의료 사태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지난해 서울대는 의료 개혁 및 전공의 공백 사태 해결을 위해 총리를 포함한 정부 부처, 주요 대학 총장, 대학병원 관계자 연석회의를 두 차례 주관하며 대안을 제시했다.

한국은 그동안 공적 투자 없이 의료 인프라를 민간에 의존해 왔다. 공공의료는 전체 의료기관의 5.2%, 병상의 8.8%, 의사 인력의 10.2%에 불과할 정도로 빈약하다. 특히 전공의 인건비를 병원이 전액 부담하는 나라는 선진국 중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만 하더라도 전공의 수련을 위해 1인당 1억 원 정도를 수련병원에 지원한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한국은 어떻게 세계적 의료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필수 의료 전공의들의 밤샘 당직과 저임금 중노동 등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더 큰 국민 생명 피해를 막으려면 전공의와 의대생이 제자리로 돌아오도록 명분과 동기를 제공해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원상 복귀를 전제로 올해 늘어난 정원(1509명)만큼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줄인다고 약속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자. 과학적 근거와 국민의 요구에 따라 사회적 합의가 성사되면 나중에 늘리면 될 것이다.

10년 후의 미래 의료 방향, 의사의 역할, 정부 정책, 국민의 참여와 협조를 통한 사회적 합의가 먼저다. 의대 정원은 그다음이다. 의사의 생산성을 높이는 정책에 따라 의사 인력 공급이 달라지고, 국민의 자가관리를 통해 건강을 높이며, 과다한 의료 이용을 줄여 전체 수요를 줄이는 정책을 시행하면 필요한 의사 인력 추계도 달라질 수 있다.

사회적 공공재로서 전공의의 국가 수련 책임제, 필수의료 시설과 장비, 인력 등 공공 인프라에 대한 투자, 병원 인프라와 연구에 장기 재투자가 가능한 의료 수가(보수) 현실화가 필요하다. 이를 뒷받침할 예산 해법을 논의해야 한다.

건강을 위협하는 첨가당 제품 생산 기업에 ‘설탕세’를 부과해 추가적인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과학만이 아니라 소통과 협의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반영한 합의에 근거해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야 한다. 힘들지만 그 합의 과정이 바로 정치다.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는 “가장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의 말처럼 전공의를 포함한 의료계와 국민, 정부가 10년 후의 의료 개혁을 위한 동반자로서 의료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자. 대승적 차원에서 서로의 선의를 믿고, 선제적으로 양보하며 관용을 보일 때다.

마침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 이주호 사회부총리가 전공의와 의대생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 “대화에 참여하면 내년 의대 정원을 원점에서 협의할 수 있다”고 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새로운 집행부가 꾸려졌다. 국민 생명에 직결된 문제인 전공의의 현장 복귀와 의료 개혁을 위해 현실적인 타개책과 장기적 비전의 대타협을 위해 이제는 만나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윤영호 서울대 기획부총장·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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