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병 보호자 10명 중 6명 ‘심한 우울’…24시간 ‘가족간병’ 바꿔야”

2025-01-14

“의료법상 중증희귀질환자를 돌보는 장애인활동지원사나 요양보호사 같은 간병인은 가래 흡인(석션), 소독 같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하지만 안 하면 환자 목숨이 위태로워지니 보호자가 간병인에게 방법을 가르쳐주며 어렵게 간병을 이어갑니다.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간호사나 간호조무사가 있는 일반병원이나 요양병원에서는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중증희귀질환자를 잘 받아주지 않고요.”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는 14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오는 3월 개원을 앞둔 승일희망요양병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승일희망요양병원은 국내 최초의 루게릭병(근위축성측삭경화증) 등 중증근육성 희귀질환자를 위한 요양병원으로 218억원(정부지원금 100억원, 기부금 118억원)이 투입돼 지난해 말 완공됐다. 이 병원에서는 의료 서비스와 응급 대처 요령 등 중증 환자를 위한 전문 간병 서비스를 함께 제공해 보호자의 간병 부담을 덜어줄 전망이다.

병원 개원준비단장을 맡은 권 교수와 병원 건립·운영을 담당하는 승일희망재단은 지난 1년간진행한 ‘중증근육성 희귀질환자의 간병 실태 및 욕구 조사 연구’ 결과를 이날 공개했다. 권 교수는 보건복지부의 관련 연구 참여와 지난해 친한 친구의 루게릭병 발병으로 중증근육성 희귀질환에 관해 관심을 기울이면서 재단과도 인연을 맺었다.

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환자 162명 중 100명(61.8%)의 주 돌봄자가 아내, 남편, 자녀, 부모, 형제 또는 자매 등 가족이었다. 간병인이 주 돌봄자로 있다 해도 가족이 옆에서 함께 환자를 돌봐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환자와 보호자들은 입을 모은다. 또한 환자의 86.1%, 82.2%가 각각 위루관 삽입 시술, 기관절개술(중복 시술 기준)을 받은 것으로 조사돼 석션과 위루관으로 영양 주입 등 의료 행위가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권 교수는 “환자의 79%, 보호자의 59%가 심각한 우울 상태를 보인 것도 눈여겨볼 결과”이라며 “간병 부담이 가족의 병적 상황으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짚었다. 이 밖에도 월평균 간병비가 257만~324만원(20일 기준)인데, 응답자 대부분(72.8%)의 월평균 소득이 365만원 이하인 것으로 조사돼 재정적 부담 역시 큰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의료와 돌봄의 사각지대 속에서 중증희귀질환자 돌봄을 가족에게 의존하고 있다”며 “환자 특성에 따라 제대로 교육받은 간병인이 의료행위를 할 수 있게 해주거나 의료기관에서의 간병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희귀질환복지법 신설이나 희귀질환관리법 개정, 혹은 희귀질환관리지원사 제도 신설 등을 제안했다.

이어 “법 개정은 아직 먼 일이지만 승일희망요양병원이 문을 열면 환자와 보호자에게 실질적 도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이 병원에서 전국의 중증희귀질환자들을 위한 원격 진료 등 시범사업도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조사는 브라이언임팩트재단에서 5억원을 지원받아 진행됐다. 승일희망재단과 권 교수팀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간병의 전문성과 역량을 높여줄 간병 교육과정과 교재를 자체 개발해 승일희망요양병원에서 이뤄질 간병 서비스와 일반 가정 간병 서비스에 적용할 계획이다.

승일희망재단은 루게릭요양병원 건립을 위한 비영리재단으로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전 프로농구 선수 고(故) 박승일씨와 가수 션이 2011년 함께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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