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 우울증’ 환자 증가세
2024년 7만6350명… 5년 새 54.9%나 늘어
코로나 영향 정서·사회성 발달에 어려움
SNS 사용·비만 아동 증가도 자극 요인
행동장애·불안장애·ADHD 등 공존 질환
“공부나 과거 사건 집착 말고 치료 우선”
#올해 중학교 입학 아들을 둔 A씨는 지난해만 떠올리면 끔찍하다. 아들과 사소한 일로 계속 부딪치다 심할 경우 몸싸움까지 할 만큼 충돌이 잦았던 탓이다. A씨는 “사춘기 자녀의 반항심도 병원 상담을 받으면 나아진다”는 말을 듣고 병원을 찾았다가 의외의 결과를 받아들었다. 의사의 진단은 ‘소아 우울증’이었다. 그는 “생각지도 못한 진단을 받아 당황스러웠지만, 아들이 치료를 받으며 나아지는 모습을 보고 왜 진작 우울증을 생각 못 했는지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고 말했다.
‘소아·청소년 우울증’ 환자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
12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국민관심질병통계에 따르면 2019년 4만9299명이던 소아·청소년 우울증 환자는 지난해 7만6350명으로 5년 새 54.9%나 늘었다. 어릴 때부터 학업에 대한 과도한 압박과 한국 사회의 경쟁이 영향을 미치기도 했지만, 현재 소아·청소년 우울증 발생은 전 세계적인 추세다.
서울대어린이병원 소아정신과 김재원(사진) 교수는 최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미국의 경우 소아·청소년 우울증 발생률이 2017년 1.35%에 비해 2021년 2.10%로, 우울증 유병률도 2017년 2.55%에서 2021년 4.08%로 각각 늘었다”며 “이런 증가세는 특히 14∼17세 사이에서 두드러졌다”고 했다.
학계에서는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이뤄지지 못하면서 소아·청소년의 정서·사회성 발달에 어려움이 생긴 데 따른 것으로 추정한다.
◆우울보다는 예민함, 반항이 키워드
우울증은 ‘우울감과 의욕 저하를 주요 증상으로 가지며 다양한 인지·정신·신체적 증상을 동반하고, 일상기능을 떨어뜨리는 정신과적 질환’으로 정의된다.
다만 소아·청소년 우울증은 성인 우울증에 비해 우울감·기분 저하보다 예민함·반항심이 더 부각된다.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행동장애 등 다른 정신질환이 동반되는 비율이 성인에 비해 높은 것도 특징이다.
김 교수는 “2015년 미국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지에 실린 미국 청소년 공존질환 조사에서 우울증 63.7%에서 공존질환이 있었다”며 “행동장애, 불안 장애, 물질사용장애, ADHD 순으로 공존 유병률이 높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진료실에는 우울감보다는 집중력저하, 성적하락, 등교 거부, 가출 등 비행 문제 때문에 병원에 왔다가 우울증으로 진단되는 사례가 많다.
김 교수는 “품행장애가 동반되지 않는 우울증 소아 환자의 경우에도 반항 행동이나 흡연, 음주, 가출 등 가면성 우울(masked depression)이 행동 문제에 가려져서 평가하기 어려운 것도 소아 우울증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SNS, 비만 등 늘어난 자극 요인
소아·청소년 우울증은 학업이나 가족·또래 관계 등 환경적 요인과 유전적 요인이 결합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 증가도 우울증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아이들이 SNS를 통해 자해나 자살 등 부정적인 콘텐츠를 소비하거나, SNS의 익명성을 이용한 온라인 괴롭힘(사이버불링)으로 대인관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비만 아동 증가도 소아·청소년 우울증과 연결된다.
김 교수는 “우울증과 비만이 염증성 질환이라는 관점에서 질병 발생 기전을 공유한다는 연구들이 그간 많이 이뤄졌다”며 “아직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지만 비만에서 자존감 저하, 신체 활동 부족 등이 우울증 발생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우울증 진단은 미국정신의학회 평가기준(DSM-5)과 소아·청소년 우울증 중증도 평가도구(CDRS-R)를 통해 이뤄진다. CDRS-R이 40점 미만(경증)이면 심리치료를, 40점 이상이면 항우울제 치료를 받게 된다. 항우울제 치료가 효과가 있는 경우는 60% 수준. 이외에도 감정을 표현하거나 조절하는 능력이 미숙한 경우 놀이치료나 정서 조절 훈련을 병행하기도 한다.
김 교수는 “학교·학원 일정 때문에 치료받으러 오지 않는 등 우울증 치료보다 공부를 우선시하는 학부모가 많은 것도 현실”이라며 소아·청소년 우울증 치료에서 우울증 치료를 우선순위에 둘 것과 부모가 과도한 죄책감으로 과거에 집착하지 않을 것을 당부했다.
그는 “환자는 과거 잘못했던 일이나 트라우마(외상) 경험에서, 부모는 자녀를 잘못 키워서 우울증이 생겼다고 생각하며 과거 사건에서 우울증의 원인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과거 집착은 치료에 도움이 안 된다. 아이와 함께 노력한다는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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