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뿡, 뽕, 빵” 배꼽 잡는 방귀 전래동화, 민족의 해학 담겨 [뿡, 뿡, 뿌웅∼ 방귀 이야기]

2025-01-29

(3) 원초적 해학 ‘방귀’, 전래동화 소재로

흥미 유발하며 다양한 교훈 전달

“방귀 이야기로 쾌감이나 희열 느껴”

“한 처자가 있는디 참 고와. 아주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지. 근디 이 처자가 말여, 방귀를 참말로 잘 뀌어. 사흘마다 한 번씩 시원하게 뀌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지. 하지만 이건 비밀이여, 비밀.”

전래동화 ‘방귀쟁이 며느리’(신세정 지음, 사계절출판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야기를 듣는 청자들은 벌써 입이 근질거릴 정도로 흥미로운 비밀을 알게 됐다. 동네에서 곱기로 유명한 처자가 실은 방귀를 아주 잘 뀐다는 사실이다. 옛사람들이 과연 뒷이야기를 듣지 않고 배길 수 있었을까.

이야기는 이 처자가 이웃 마을 부잣집 외아들과 결혼을 하면서 시작된다. 처자는 결혼 후 방귀를 뀌지 못해 얼굴이 누런 ‘메줏덩이’가 됐다. 이를 지켜보던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걱정돼 그 이유를 물었고, 처자는 “방귀를 못 뀌어서 그라요”라고 실토한다. 시아버지는 “참으면 쓰간디?”라며 방귀를 뀌라고 허락해준다.

처자는 “그러면 방귀를 뀔라니께 아버님은 가마솥을 꽉 붙잡고, 어머님은 문고리 꽉 붙잡고, 서방님도 아무거나 꽉 붙잡고 계시오”라고 경고한 뒤 ‘뿡, 뽕, 빵’ 방귀를 뀌었다. 방귀 바람이 어찌나 세던지, 시어머니는 문고리를 잡고 펄럭였고 남편은 정신을 못 차렸다. 시아버지는 방귀 바람에 잡고 있던 가마솥을 든 채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가 닷새, 엿새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시아버지는 처자를 집에서 쫓아내기로 하고 함께 그녀의 친정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한 청실배나무가 있는데, 너무 높아 아무도 배를 딸 수가 없었다. 나무 밑에서 쉬던 비단 장수와 놋그릇 장수가 “누가 저 청실배 맛보게 해주면 비단, 놋그릇 반 갈라줘도 안 아깝겠다”고 말한다.

이를 들은 처자는 “내가 딸 수 있다”며 배나무에 방귀를 뀌었고, 배가 후드득 쏟아져 내렸다. 약속대로 많은 비단과 놋그릇을 받은 처자와 시아버지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이를 팔아 부자가 돼 잘 먹고 잘살았다는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방귀쟁이 며느리’는 충북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서 전해 내려오던 민담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 주민 신윤식씨가 구연한 것을 채록해 1983년 충북도에서 출간한 ‘민담민요지’에 수록했다고 진천군은 설명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민담 특성상 지역 등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줄거리와 교훈은 큰 차이가 없다.

방귀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순수한 웃음을 끌어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방귀 이야기만 나오면 아이들은 배꼽을 잡는다. 재미있는 이야기와 함께 교훈을 주는 전래동화에서 방귀가 단골 소재로 쓰였던 이유다.

실제로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채록된 방귀쟁이 설화만 약 100편에 달한다. 앞서 소개한 ‘방귀쟁이 며느리’ 외에도 ‘방귀쟁이 오삼이’, ’방귀시합’, ‘단 방귀 장수’ 등이 방귀를 소재로 한 대표적인 전래동화다.

동화는 주로 방귀의 세기와 냄새 등 위력(?)을 과장되게 표현하며 웃음과 재미를 준다. 방귀 바람으로 사람과 집을 날려 버리고, 절구통이 전라도와 경상도를 오가다 달나라까지 간다.

소재는 친숙하고 재밌지만, 이야기가 주는 교훈까지 가벼운 것만은 아니다. ‘방귀쟁이 며느리’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게 방귀는 그야말로 꼭꼭 숨겨야 하는 ‘비밀’이다. 당시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던 억압과 부조리함을 방귀를 통해 우리 민족 특유의 해학으로 풍자했다.

‘방귀쟁이 오삼이’의 교훈도 비슷하다. 첫날 밤 아내가 방귀를 뀌었다는 이유로 도망간 아버지를 아들인 오삼이가 찾아가 “누구나 방귀를 뀐다”고 꾸짖는다. 아버지는 아들의 말에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아내와 오삼이를 다시 가족으로 맞이한다.

‘단 방귀 장수’는 꿀을 먹고 단 방귀를 뀌어 많은 재물을 쌓게 된 동생을 시샘한 형의 이야기다. 형은 꿀인 줄 알고 똥을 먹어 ‘똥방귀’를 뀌게 되고, 고약한 냄새 때문에 마을에서 쫓겨난다. 지나친 물욕을 경계하고 형제간의 우애를 가르치는 이야기다.

‘방귀쟁이 며느리’의 신세정 작가는 “방귀는 재미있고, 누구에게나 친숙해 옛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전래동화 소재였을 것”이라며 “한편으론 부끄러울 수 있는 소재인 방귀를 입 밖으로 꺼내 사람들이 함께 이야기하며 또 다른 쾌감이나 희열을 느끼지 않았을까 짐작한다”고 말했다.

전래동화에선 옛사람들의 방귀에 대한 인식도 엿볼 수 있다. 예부터 ‘똥’은 현실과는 다르게 꿈에서 돈, 재산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대변의 전 단계인 방귀는 가난한 삶을 사는 민중들의 부유한 삶을 향한 염원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방귀쟁이 며느리’에서 며느리가 방귀로 배를 따서 부를 쌓았고, ‘단 방귀 장수’에선 성실한 나무꾼이 방귀를 팔아 큰돈을 번다.

유진아 한국언어문화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방귀는 자연스러운 생리적 현상이므로 누구나 일상에서 체험할 수 있고, 방귀의 세기, 소리, 냄새에 따라 그 양상이 다양하여 웃음을 유발하기에 적절한 소재”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방귀로 날아간 절굿공이가 물고기 또는 섬이나 바위 같은 지형이 되고, 며느리의 방귀로 다른 사람의 재물을 얻는 것은 모두 방귀의 생산력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구윤모 기자 iamky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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