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커다란 역설의 사회다. 한국을 설명하는 열쇠말은 화려하다. 경제적으로 한국은 원조를 받던 가난한 나라에서 출발해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 인구 5000만명 이상을 동시에 달성한, 이른바 ‘30-50클럽’에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이름을 올리며, 명실상부한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다. 문화적 위상 또한 눈부시다. K팝, K드라마, K푸드로 상징되는 한국 문화는 세계 대중문화의 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기준이 되었다. 한국 민주주의는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계엄령과 친위 쿠데타를 경험하면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지만, 시민의 놀라운 저항으로 위기를 버텨냈다.
하지만 한국의 놀라운 성취 이면에는 복합적인 도전이 켜켜이 쌓여 있다. 한국은 경제성장을 본격화하던 시기에는 비교적 불평등이 완만한 사회였지만, 오늘날에는 소득·자산·주거 불평등이 중첩적으로 작동하는 다중격차 사회로 변모했다. 여러 지표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 선진국 가운데서도 가장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는 나라 중 하나라는 것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이러한 불평등은 개인의 주관적 삶의 평가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눈부신 외형적 성취와 달리, 한국인이 체감하는 행복 수준은 매우 낮다. 세계 행복지수에서 한국은 50위권에 머물고 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서도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미래 사회의 주역인 청소년 세대의 행복 수준 역시 현저히 낮다는 점이다.
광복 후 놀라운 성취에도 불구하고 한국 시민은 왜 불행할까? 한국 사회에서 개인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을 마무리할 때까지, 생애 전 주기에 걸쳐 자신의 ‘존재 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하도록 요구받는다. 아동기에는 성적과 등급을 통해 미래의 잠재 가치를 입증해야 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기에는 각종 스펙을 통해 자신의 쓸모를 입증하는 일종의 ‘사용 설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중년기에 접어들면 안정적인 소득과 직업 지위를 통해 자기 능력과 사회적 가치를 증명해야 하며, 노년기에는 연금의 규모와 축적된 자산을 근거로 가족에게, 나아가 사회에 부담이 되지 않는 존재임을 다시 확인받아야 한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는 존재 자체로 주어지는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지속적으로 갱신하지 않으면 효력을 잃는 자격증에 가깝다. 삶의 어느 단계에서도 증명을 멈출 수 없는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은 존재 자체로부터 도출되는 기본 가치가 아니라 성과에 따라 조건부로 부여되는 지위로 전락한다.
왜 이러한 역설이 발생했는가? 가장 중요한 원인은 세계 민주주의의 표준이 될 수 있다는 자찬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투표장에서 멈춘 민주주의의 기능 부전이다. 한국은 국민주권정부의 출범으로 민주화 이후 네 번의 정권교체를 달성했다. 이 과정에서 파수꾼 민주주의를 구현한 촛불항쟁과 빛의 혁명을 통해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을 헌정 중단 없이 치렀다. 이와 같이 한국 민주주의는 저항을 표출하고 정권을 심판하는 기능을 적절히 수행했다. 하지만 시민의 요구를 반영해 시민들의 삶을 바꾸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이러한 현실은 시민의 인식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최근 여론조사(2025년, 경북대 민주주의연구팀·표본 1000명)에 따르면,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해결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3분의 1에 가까운 31.1%에 달했다(“해결할 수 있다” 68.9%). 더구나 민주주의 위기 국면 속에서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지지는 63%에 그쳤다. 특히 민주주의의 문제 해결 능력을 부정적으로 인식한 응답자들 가운데 민주주의 체제를 지지한다고 답한 비율은 38.26%로 급락했다. 이 조사가 보여주듯, 민주주의의 효능감에 대한 불신은 결국 민주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지지 철회로 이어질 수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넘어 집권에 성공한 국민주권정부가 맞이한 역사적 과제는 분명하다. 이제 한국 사회는 끊임없이 성과를 입증해야만 존재를 인정받는 사회에서 벗어나, 존재 그 자체로 존엄과 가치를 인정받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투표장에서 멈춘 민주주의를 넘어, 민주주의가 생애주기의 각 단계-교육, 노동, 돌봄, 노후- 속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확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환은 내란의 종식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이를 위해 노동·교육·복지를 포괄하는 종합적 개혁 패키지가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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