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시절 '김현미 시즌2' 힘잃은 국토부
국토부도 10대사 장관 간담회 개최…친목도모 지적도 나와
'국토부 패싱' 이재명 정부 임기 내 지속될 수도
[서울=뉴스핌] 이동훈 선임기자 = 건설·부동산 주무부처 국토교통부의 목소리가 점차 힘을 잃고 있다.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 기획재정부 주도로 부동산 대책이 마련되고 정권 후기 중대재해처벌법 등장 이후 건설업계 단속권한까지 사실상 놓친 국토부 위상이 이재명 정부 시기에도 재연될 조짐을 보인다.
업계에서는 자칫 '옥상옥' 형태의 건설·부동산 사령탑이 생겨날 수 있다는 진단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부동산대책이 기획재정부에서 앞질러 발표되고 있는 상황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이 독자적으로 건설업계 CEO(최고경영자)를 불러 모으는 일이 발생하고 있어서다.
2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새정부 출범 이후 국토교통부의 건설·부동산 주무부처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 대책은 기획재정부가 맡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고용노동부가 업계 단속을 맡았던 것과 유사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며 "부동산대책이나 건설업계 단속이 범부처에 권한이 쪼개져 있다지만 주무부처인 국토부가 주도하지 않은 것은 제대로 된 것이라 보기 어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새정부 출범 후 강해진 노동부 중처법 대응…국토부 건설사 단속권 유명무실
포문을 연 것은 새정부 출범과 동시에 터진 '6·27 가계부채 관리강화 방안'이다.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을 옥죄는 권한은 물론 금융당국인 금융위원회 등에 있다. 다만 부동산을 콕 집어 대출 제한 대책을 내놓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란 게 업계의 평가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당시 집값 급등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긴 해도 금융당국이 선제적으로 대출 제한과 같은 초강경 대책을 시행하는 것은 사례가 많지 않다"며 "앞으로도 세금, 대출과 같은 부동산 시장 수요 억제책에 대해서는 부동산 주무부처인 국토부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할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의 건설업계 단속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물론 노동부의 이같은 움직임에도 명분은 있다. 새정부 출범 이후 지속되는 건설 공사현장의 안전사고로 인명피해까지 발생하자 대통령부터 강경대책 주문을 내놓고 있어서다. 이재명 대통령도 국무회의 자리에서 "대형 건설사들이 중대재해 처벌법으로 처벌 받은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다"며 강력한 처벌을 주문한 바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4일 서울 모처에서 국내 20대 건설사 CEO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이 자리에는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DL이앤씨, GS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포스코이앤씨, 롯데건설을 비롯한 올해 시공순위 20대 기업들이 모두 참석했다. GS건설에서는 그룹 오너 격인 허윤홍 대표가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이들 CEO가 한 자리에 모인 것만으로도 이날 간담회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건설 중대재해 근절을 위한 20대 건설사 CEO 간담회'로 명명된 이날 간담회에서 김영훈 장관은 "중대재해 반복 발생 기업은 강경 제재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와 함께 노동부는 건설업계 안전 사고 방지를 위한 본격적인 대책 마련에 착수한 상태다. 중대재해가 아닌 경우에도 적극적으로 산재 예방을 할 수 있도록 장관의 '긴급 작업중지명령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김 장관은 최근 연이어 공사장 인명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 본사도 찾아 중대재해대책을 직접 보고받는 등 국토부 장관을 넘어서는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담당하는 노동부가 산업현장 재해를 관리하는 것은 규정상 잘못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산업현장 인명 사고가 대부분 건설현장에서 벌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국토부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2022년 중처법이 시행되자 국토부는 자체 건설사 단속 법안인 '건설안전특별법' 입법을 추진하다 이중규제라는 지적에 따라 중단한 바 있다. 대신 윤석열 정부시절 원희룡 장관의 주장으로 사고 건설사에 대한 국토부 직권 제재 규정이 신설됐다.
한 정부 관계자는 "건설 주무부처인 국토부가 현장 사고에 대해 온정주의를 보인다는 지적도 노동부의 건설사 단속에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 부동산대책은 기재부·대통령실…국토부는 집행만
부동산 대책 수립에는 기획재정부가 깊숙이 개입했다. 정부는 지난 12일 기획재정부 주재로 제27차 국유재산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2026년도 국유재산종합계획'을 의결했다.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대규모 유휴 국유지와 노후 청·관사를 복합개발해 공공주택 약 3만5000가구를 공급키로 했다.
이날 기재부는 용산 유수지, 종로 복합청사, 천안세관, 대방군관사, 경찰기마대부지, 광명세무서,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와 같은 후보 택지도 공개했다. 국토부가 준비하고 있는 주택공급대책의 절반이 사실상 공개된 셈이다. 이밖에 국토부가 발표할 공급대책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던 3기 신도시 조기 추진 그리고 재건축·재개발 대책 밖에 없는 셈이 됐다.
국토부는 이에 대해 이번 기재부 발표는 국유재산에 대한 종합계획의 일부로 끼워서 발표된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무려 3만5000가구의 유휴부지 공급 방안과 일부 유휴부지를 공개한 것은 공급 대책이 나온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한 부동산 시장 전문가는 "6·27대책에서도 볼 수 있듯 정부 대책이란 것은 시장을 급격히 안정시킬 만한 영향력이 있어야하는데 국토부가 향후 발표할 공급대책이 이만한 파괴력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4기 신도시, 그린벨트 해제와 같은 힘있는 방안이 없다면 공급대책은 이미 절반이 발표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시선이 많아지자 국토부도 움직이고 있다. 국토부는 내달 초 김윤덕 장관 주재로 대한건설협회 회장과 주요 건설사 대표들을 초청해 비공개 간담회를 열기로 했다. 이 자리에는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DL이앤씨, GS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포스코이앤씨, 롯데건설, SK에코플랜트, HDC현대산업개발 등 시평순위 10위권 건설사가 초대될 예정이다.
다만 간담회는 '친목도모' 형태가 될 전망이다. 국토부는 이 자리에서 정부 정책 동향을 설명하고 건설업계 애로사항을 청취한다는 방침이다. 정책 방안 등은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비판도 나온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국토부 장관이 건설사 CEO를 불러모았는데 별다른 안건 없이 덕담만 나누다 헤어지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또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대통령실과 노동부 등에 혼쭐이 났던 건설업계를 달래 주며 향후 화이팅을 주문하는 것도 주무 장관이 해야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건설·부동산시장 업무에 대한 국토부의 위상약화는 이어질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정치인 출신인 김윤덕 장관은 본인 스스로 인정했듯 국토교통 분야 전문성이 낮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시절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위상을 갖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실세 차관'이 있는 만큼 같은 정치인인 윤석열 정부시절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처럼 강력한 부처 운영을 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부동산시장 한 전문가는 "김현미 장관 재임 당시도 부동산 대책은 대통령실이 사실상 전담한 상태며 중처법 시행 이후 고용노동부에 건설업계 단속 권한이 넘어간 바 있다"며 "이같은 상황이 잘못됐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건설부동산 분야에서 오래된 정책 노하우를 갖고 있는 국토부가 중심에 나서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dong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