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아스파라거스, 봄을 연상시키는 녹색빛 싱그러움…섬세한 풍미 지녀

2025-04-14

“아스파라거스가 나왔다. 큼직하고 국물이 흥건하게 괴어 있고 침이 꿀떡꿀떡 넘어가는 놈이었다. 염치도 없는 그 여인이 크고도 요염한 그 입 가득히 아스파라거스를 처넣고 삼키는 꼴을 바라보며 나는 태연하게 발칸반도의 연극계 정세를 논의해야 했다.”

영국 소설가 서머싯 몸의 단편 ‘점심식사’의 한 장면이다. 가난한 작가는 팬을 자처한 여자 앞에서 체면을 차리고자 파리의 고급 레스토랑을 찾는다. 상대는 눈치 없이 값비싼 메뉴만 주문하며 작가의 한달 생활비를 털어간다. 메뉴엔 원래 고급 채소인 데다 제철도 아니라 값비싼 아스파라거스가 포함돼 있었다.

인상파 미술의 대표주자 에두아르 마네에게도 아스파라거스는 쉽게 맛볼 수 없는 음식이었던 것 같다. 그는 아스파라거스를 먹기보다 정물화 소재로 사용했다. 부유한 미술품 수집가이자 아마추어 사학자인 샤를 에프뤼시는 어느 날 마네에게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한다발을 주며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한다. 약속한 대가는 800프랑이었지만 에프뤼시가 내놓은 돈은 1000프랑이었다.

뜻밖의 보너스를 받은 마네는 재치를 발휘한다. 단 한줄기 아스파라거스 그림을 더 그려 보내며 이런 말을 덧붙인다. “당신이 준 아스파라거스 다발에서 200프랑어치 한줄기가 떨어졌소.” 재미있는 일화 덕에 원래의 아스파라거스 그림도 한층 유명해졌다. 필자의 상상이지만 마네는 모처럼 두둑해진 지갑에 흐뭇해하며 아스파라거스 요리를 즐기지 않았을까.

마네를 비롯한 초기 인상주의 화가에게는 생활고에 시달렸다는 이야기가 클리셰(진부한 표현)처럼 따라다닌다. 사진을 찍듯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사실주의가 대세였던 시절, 그들의 작품은 너무나 급진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마네의 그림은 파격을 넘어 충격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새로운 화풍은 조금씩 세상의 인정을 받았으며 오늘날 마네는 미술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거장이 됐다.

아스파라거스는 무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사랑받아왔다. 자양 강장 효과가 있고 이뇨 작용을 도와 천연 의약품으로도 사용됐다. 중세 유럽 수도사에게는 마치 불가의 오신채처럼 금욕과 절제를 위해 금기시됐다.

그린 아스파라거스는 봄을 연상시키는 녹색에 독특한 외양으로 두툼한 적갈색 스테이크와 시각적 조화를 이룬다.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는 즙이 더 많고 섬세한 풍미를 지녔다. 햇빛을 차단한 채 재배하므로 엽록소가 생기지 않아 색이 하얗다. 화가 이중섭이 일본 유학 시절 훗날 아내가 되는 이남덕(마사코)과 통조림 아스파라거스를 즐겨 먹었다는 일화도 있다. 이중섭은 연인의 길고 새하얀 발가락을 아스파라거스에 빗대 ‘아스파라거스 군(君)’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아스파라거스 하면 양식 요리의 가니시(곁들임)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아시아에서도 활용도가 높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식 볶음 요리다. 일본에서는 구운 아스파라거스 위에 간장을 끼얹고 가다랑어포를 올려 먹는다. 소금을 뿌려 버터에 볶거나 베이컨으로 말아 구우면 훌륭한 술안주가 된다.

아스파라거스는 수확 직후부터 식감이 질겨지고 쓴맛이 생긴다. 이 때문에 외국산보다는 접근성이 높은 국산을 먹는 쪽을 추천한다. 전남 화순에서는 2008년부터 아스파라거스를 주요 소득작물로 육성해왔는데, 2011년 일본에 첫 수출을 하는 등 상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정세진 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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