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110주년…미공개 회의록으로 본 ‘위기극복 리더십’ 〈2〉

정주영의 현대는 중후장대(重厚長大)하다. 대규모 설치 투자와 높은 자본 집약도, 방대한 전·후방 연관 산업이 특징이었다. 그는 요체를 이렇게 정리했었다.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 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될 수 있는 길이다.”
그 정신은 위기 국면에서도 여전했다. 1985년 6월 정 회장은 사장단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대가 하는 업종 가운데 세계 경기가 좋은 건 자동차 하나뿐이라고 보고 있다. 조선업도 그렇고 수리조선은 좋은 편이 아니며 건설도 좋지 않다. 어려울 때 잘 이겨내고 후퇴하지 않는 것이 저력이다. 각 회사가 열심히 연구해서 불경기라고 해서 후퇴하지 말고 창의력을 발휘해 저력을 보여달라. 각 회사의 저력이 곧 현대 전체의 저력이 되고 현대의 저력이 국가의 저력이 된다.”
“어려울 때 후퇴하지 않는 것이 저력”

종종 일본·대만을 언급하며 독려했다. “대만이 할 수 있으면 우리가 할 수 있다. 일본이 하는 것은 우리도 할 수 있다”(1984년 7월 2일)는 식이었다. 이듬해 10월에도 정 회장의 목소리엔 힘이 실려있었다.
“왜 일본 사람이 할 수 있는 걸 한국 사람이 못하냐. 일본은 100년 조선업 역사를 가진 나라다. 미쓰비시 같은 회사도 100년 역사를 가지고 있고 2차 세계대전 때는 전함을 전부 만들었지만 지금은 그들도 우리보다 많이 못 만든다. 우리는 불과 15년 만에 일본 어느 조선소보다 더 많이, 더 싸게 배를 만들고 있다. 결국 여기 있는 여러분이 얼마나 진취적으로 움직이느냐가 관건이다.”
이 시기 정 회장은 주력 산업 교체란 승부를 던졌다. 1950년대 이래 그룹 계열사 종합 매출액은 현대건설이 명실상부 1위였다. 현대중공업은 세계 1위 조선소를 굳혔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와 반도체(현대전자)로 옮겼다. 불경기가 배경이긴 했다. 1980년대는 흔히 ‘3저(低) 호황’으로 알려져 있지만, 전반기는 사정이 달랐다. 그동안 외화벌이 창구 역할을 톡톡히 했던 중동의 건설 붐도 차츰 사그라지기 시작했고, 세계 조선 수주도 한창때 연간 4000만t에서 1400만t으로 3분의 1토막이 난 상태였다. 중동에선 불안한 정세 때문에 돈이 들어오지 않기 일쑤였다.
정 회장이 본 건 그러나 그 너머였다. “기존 주력인 건설과 중공업이 앞으로 성장이 힘들기 때문에 거기에 쏟을 정력을 다른 데로 돌려야 한다” “다른 회사에서 만드는 것이 세계 경쟁력이 있다면 굳이 우리가 새로 만들 필요가 없다”고 본 그는 1984년 10월 8일 사장단에게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앞으로 현대자동차와 현대전자에 보다 집중하려고 한다. 현대자동차와 현대전자에 모든 역량과 노력을 집중해 세계 시장으로 적극 진출할 계획이다. 각 회사도 이러한 방향을 참고하여 내년도 사업 계획을 수립해 달라.”

직전에도 “오늘 회의가 끝나면 자동차회사의 중역들은 내 방으로 오도록 하라. 일주일에 한 번씩 나와 회의할 자료를 가지고 바쁘더라도 꼭 회의하자. 나는 이 자동차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세계적인 대기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쁘더라도 자료를 준비해서 오도록 하라”고 당부했었다. 그러면서 이해 캐나다로 포니를 수출하며 북미 시장에 진출한 것을 시작으로 미국 시장의 적극적인 공략을 당부했다. “20만 대, 30만 대, 50만 대를 미국에 수출하려면 주마다 쿼터 문제를 해결할 인재를 배치하라. 변호사만 믿지 말고 실력 있는 인재를 직접 기용하라. 우리가 뜻을 크게 품고 그에 맞는 노력을 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 세계 시장은 크다. 일본이 하는 것을 한국이 못 할 이유는 없다. 사장단은 이 점을 깊이 연구해달라. 지금 한국에서 제일 큰 회사라고 해서 절대 만족해서는 안 된다.”

정 회장은 이전부터 자동차산업에 애정이 깊었다. 1940년 서울 아현동에 ‘아도써비스’란 자동차 수리공장을 세웠고 해방 직후인 1946년에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했다. 1967년 제조업에 진출했고 그 유명한 포니가 나온 건 그로부터 9년 후였다. 미국 측으로부터 독자개발 대신 주문 생산을 제안받았을 때 정 회장이 “자동차는 달리는 국기(國旗)나 다름없고, 일생에 번 돈을 다 들여 실패하더라도 후대에 자동차 공업을 성공시킬 디딤돌을 놓는다면 후회는 없다”고 뿌리쳤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졌다.
경기 최악 때도 “해야 할 투자는 해야”
반도체를 지목한 건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한국의 소형차 산업 이상으로 전망이 좋다고 확신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이나 자동차 산업에 방대한 투자를 해야 한다”(1986년 6월)고 봤기 때문이다. 스스로 “전자화는 장차 자동차 사업의 성패를 가늠할 궁극적 핵심 요소가 될 것이 분명했다. 자동차 산업은 그때 막 보급되기 시작했던 퍼스널 컴퓨터와 함께 최대의 반도체 수요 제품이 되었다”고 회고한 일도 있었다.
그는 사활을 건 경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반도체 산업계가 버티지 못할 것이란 얘기도 나오는데 원칙적으론 못 버티는 게 맞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노력하는 사람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본다. 모든 사업엔 항상 도산이 다르기 마련이고 그래도 새로 투자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계가 지금은 초창기가 어려움을 겪는다 하더라도 장래가 매우 유망하다고 본다. 일본 후지쯔에 가서 둘러보면서 이해한 바인데 우리나라 사람들 잘만 가르치면 고급 두뇌가 참 많아질 것이란 것이다. 고급 두뇌가 많은 나라는 반도체 산업에 가장 유리한 나라다.”(1985년 6월 3일)
그의 목표는 늘 세계 1위였다.
“나는 현대자동차의 모든 이들이 세계적인 대기업을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갖길 바란다. ‘세계 제일’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공장부터 최고위 경영진까지 모두 그런 인식을 가지고 확신을 가져야 비로소 회사가 제대로 선다.”(1984년 9월 24일)
“우린 처음에 선체 도면만 구매해서 만들기 시작했지만 불과 13년 만에 세계 1위에 올랐다. 자동차 산업도 마찬가지로 추진할 것이다.”(1984년 10월 8일)
“우리는 수출산업 중심으로 조선이면 조선, 자동차면 자동차, 반도체 산업이면 반도체 산업,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세계 1위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2위는 도달하겠다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 반도체 산업도 세계 1위까지는 아니어도 세계 일류급에 든다는 목표로 일해달라.”(1985년 1월 14일)
정 회장은 불경기라고 투자가 위축되는 것에도 부정적이었다. 이듬해 경기가 최악일 거라고 전망했던 1984년 10월 15일 사장단 회의에서는 “지금은 투자해서 경기가 유발되는 것이 제일 좋다. 투자를 해서 유발되는 것은 미래에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소비를 조장해서 경기를 유발시키는 것은 백해무익”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국민에게 진정한 혜택이 되는 건 생산설비에 투자하는 것밖에 없다. 공장을 하나 짓는다는 건, 모든 산업이 다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생산설비에 투자했어야 했는데, 소비재만 늘려서 인위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려 한 건 근본 방향부터 잘못된 것이다. 어떤 시책을 펴더라도 우리는 투자를 가장 효율적으로 진행해야 하고, 억제하더라도 꼭 해야 할 투자는 해야 한다.” 실제 1984년부터 1988년까지 전자 분야에 5000억원을 투자했다.
현대전자, LG반도체와 합병했지만 IMF 위기 못 버텨

‘현대=제조업’이란 이미지가 강하고 실제로도 그렇다. 1950~70년대는 건설과 조선, 80년대 이후엔 전자·자동차·중공업 등을 주력으로 했다. 정주영 회장은 “나는 자체 수요나 국내 시장만으로 끝나는 수출 경쟁력이 없는 사업에는 흥미를 못 느낀다”며 “전자산업도 남들이 이미 하고 있는 가전 분야에 뒤늦게 끼어들어 경쟁만 심화시키기보다는 수출 잠재력이 크면서도 기술이나 자금 문제 등으로 타 기업이 선뜻 나서기를 꺼리는 분야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이 예견했듯이 실제로 현대전자 설립 20여 년 후 반도체는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리는 성장 동력이 됐다. 하지만 그가 1980년대 자동차와 더불어 집중 육성했던 현대전자는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1998년 말 김대중 정부의 ‘빅딜’ 정책에 따라 LG반도체를 합병했지만 이게 결국 탈이 났다. 막대한 인수자금에 따른 유동성 위기를 넘지 못했고, 2001년 정 회장 사망 후 하이닉스반도체로 개명해 현대그룹에서 분리됐다. 이후 하이닉스는 10여 년간 주인 없는 회사로 떠돌다가 SK 품으로 안겼고 현재 ‘알짜 자산’이 됐다. 훗날 구자경 LG 명예회장은 “반도체를 잘하고 있는데 누가 욕심을 부려서 빼앗아갔다. 소 떼를 몰고 북으로 가고 돈을 쓰더니… 우린 안 된다고 버티다가 결국 포기했다”고 회고했다. 정 회장을 겨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