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질서
헨리 키신저, 에릭 슈밋, 크레이그 먼디 지음
이현 옮김
윌북
인공지능(AI)이 바꿀 미래 예측 보고서가 쏟아진다. 이 책은 ‘외교의 전설’로 불리는 전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1923~2023)가 썼다는 게 차별점이다. 키신저가 누구인가? ‘미국에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으며, 오직 국익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극단적 현실주의자로 도덕이나 인권보다 힘의 우위에 기반한 정책을 펼쳤다. 그런 그가 말년에 AI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키신저는 핵무기가 그러했듯, AI가 세계 패권의 게임 체임저가 될 것이라 내다봤다. 단순히 일자리를 빼앗는 수준이 아니다. 정치·안보·경제 등 모든 체제를 흔들고, 나아가 인간의 정의를 바꿀 것이라고 봤다. 책은 AI가 바꿀 미래를 양극단에서 제시한다. 불평등과 기후위기를 해결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최상의 시나리오가 있는 반면, 인류를 파멸로 이끄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있다.
우리가 대비해야 할 것은 당연히 최악의 시나리오다. 완벽한 인공 지능을 개발한 나라가 절대 패권을 휘두르는 세계, 인간의 의도와 다르게 움직이는 AI가 핵전쟁을 일으키는 세계, 인류 보다 똑똑한 기계를 신성시하다 AI에 항복하는 세계. 무엇 하나 마주하고 싶지 않은 암울한 풍경이다.
저자는 책의 후반부를 인류의 생존 전략에 할애한다. 그 핵심은 의외로 ‘인간성’이다. 인간과 기계의 구분이 모호해질 때 인간성의 최소 기준은 무엇인가, 기계와 타협할 수밖에 없을 때 인류가 포기할 수 없는 마지노선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모두가 동의할만한 답을 찾아야 하고, 그것을 기술 개발의 길잡이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2년 전, 100세로 생을 마감한 키신저의 마지막 제언이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기술 전문가인 에릭 슈밋(구글 전 CEO)과 크레이그 먼디(마이크로소프트 전 연구 책임자)가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