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조짜리 대마 시장에 '그린 러시'…한국은 총성없는 전쟁 중

2025-10-04

불법 마약?…의료용 56개국 합법화

한국에서 산업용 대마(大麻·헴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졌다. 불법 마약으로 취급되던 대마가 세계적으로 새로운 산업 자원으로 주목받으면서다. 미국·캐나다·독일·호주 등 56개국은 이미 의료용 대마 사용을 합법화했다. 식품·화장품·섬유·건축자재 등 산업용으로도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5일 학계에 따르면 대마는 중앙아시아가 원산지인 한해살이 식물로 꽃과 열매·섬유·줄기·잎 등 부위에 따라 용도가 다르다. 480여 종 천연 화합물로 구성된 대마 대표 성분은 THC(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와 CBD(칸나비디올)다. THC는 환각 효과, CBD는 신경 안정과 항염·진통 효과 등이 있다. 대마가 ‘두 얼굴의 식물’로 불리는 이유다. CBD 성분이 뇌 노화와 노인성 치매를 예방하고 뇌전증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세계보건기구(WHO) 연구 결과도 있다.

현재 세계 시장 규모는 산업용 헴프가 7조~13조원, 의료용 대마가 30조~41조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한 보고서에서 “2027년이면 전 세계 의료용 대마 시장은 109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때문에 19세기 미국에서 금광을 찾아 서부로 몰려드는 현상을 뜻하는 ‘골드 러시(Gold Rush)’에 빗댄 ‘그린 러시(Green Rush)’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금빛이 아닌 초록빛(대마 산업)을 향해 사람과 자금이 몰린다는 의미다.

새만금 샌드박스에 ‘헴프 산업 클러스터’

한국도 ‘그린 러시’ 열풍이다. 자치단체가 앞다퉈 대마 산업 선점에 나서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는 새만금개발청과 함께 새만금 농생명권역을 헴프 산업의 전진 기지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정부가 지난달 16일 확정한 123대 국정 과제에 ‘새만금 글로벌 메가 샌드박스’가 포함되면서 추진 동력이 커졌다. 이 안에 헴프 산업 클러스터가 들어간다. 샌드박스(sandbox)란 기업이 새로운 제품·기술·서비스 등을 출시할 때 맘껏 테스트하고 실증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유예 또는 면제해 주는 구역을 말한다.

전북도와 새만금개발청은 새만금 샌드박스에서 헴프 재배부터 의약품 개발, 식품·화장품 제조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 계획이다. 외부와 격리돼 있으면서 새만금 산업단지와 농생명용지·항만 등이 모두 인접해 있는 게 강점으로 꼽힌다. 김의겸 새만금개발청장은 최근 ‘바이오 실증단지 플랫폼 구축 전략 토론회’에서 “헴프 산업이 새만금, 나아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의 핵심축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산업 생태계 전반의 패키지 지원은 물론 기업 투자에 걸림돌이 없도록 과감한 규제 특례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했다.

농촌진흥청이 전북 전주·완주혁신도시에 있는 것도 유리한 여건이다. 농진청은 2022년 5월 의료용 대마 생산을 위한 육종 기술 2건을 개발해 특허 출원을 마쳤다. 이후 해당 기술로 만든 의료용 대마 식물체를 국내 연구 기관에 분양하고 있다.

‘대마 특구’ 안동시 선점…전남·강원도 ‘눈독’

경북 안동시는 국내에서 가장 먼저 산업용 대마에 도전한 지역이다. 2020년 중소벤처기업부의 ‘산업용 헴프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돼 대마 재배와 CBD 추출 실증 연구를 하고 있다. 원래 특구 기간은 2023년 11월 끝날 예정이었지만, 지난해 11월 임시 허가가 승인되면서 2027년 11월까지 3년 연장됐다.

안동시는 특구 연장을 계기로 기업과 연구소 유치를 확대하고 있다. 현재 안동엔 의료용 원료를 개발하는 바이오 기업들이 들어와 있고, 일부는 해외 제약사와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다. 안동시는 헴프 산업을 지역 주력 산업으로 삼아 농가 소득과 일자리 창출을 극대화하는 게 목표다.

다른 지자체도 대마 산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전남도는 화순·나주·장흥 등을 중심으로 첨단 의료 기술과 휴양 산업을 결합한 ‘바이오 메디컬 허브’ 구축에 공들이는 가운데 대마 기반의 치유 산업을 활성화하겠단 구상이다. 강원 춘천바이오산업진흥원은 강원대·농심 등과 함께 CBD를 활용한 항암·뇌전증 등의 고부가가치 의약품을 개발 중이다.

“정부가 규제 완화해야”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현행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은 대마 재배와 유통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실험·연구 목적일 때만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최근 들어 “국내도 산업화·수출을 위해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세계 대마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상황에서 국내 규제가 완화되지 않으면 지자체와 연구기관 등의 연구·개발 노력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찬반양론은 여전하다. “산업용과 의료용은 환각 성분(THC)이 거의 없어 안전하다”는 규제 완화 주장과 “법이 허술해지면 오·남용이 우려된다”는 신중론이 엇갈린다. 정부와 국회도 논의를 시작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입법 진전은 없다.

학계에선 “의료적 효과가 검증된 분야부터 단계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엔 “THC와 CBD를 구분하지 않고 규제하는 마약류관리법 탓에 의료용 대마로 새로운 의약품을 개발하는 다른 나라와의 기술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전북연구원 하의현 연구위원은 “첨단 바이오 산업 중심의 의료용 헴프 산업 육성을 위해 과감한 규제 완화와 고부가가치 품종 개발 및 생산 지원, 유통 관리 체계 인증 제도 도입 등 다각적인 정부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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