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축구 FC안양 구단주 최대호(66) 안양시장은 열혈 축구팬이다. 지난해 안양이 K리그1(1부리그)으로 승격하자 머리를 구단의 상징색인 보랏빛으로 물들였다. 쏟아지는 장대비에도 아랑곳 않고 우산을 쓴 채 관중석에서 그라운드를 응시하는 유튜브 영상도 화제가 됐다.
‘축구광’ 최 시장은 지난 20일 안양 홈구장인 안양종합운동장에서 구단주로는 이례적으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공정하지 못한 심판 판정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에 대해 더는 침묵할 수 없다”며 분노했다. 대한축구협회(이하 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이하 프로연맹)을 향해 “판정 실수를 인정하고 공개하라”거나 “판정에 대해 공개 비판을 금하는 K리그 규정은 독소조항”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몇 년 간 K리그에서 주목할 만한 오심이 끊이지 않는 것에 대한 소신 발언이었다.
딱 여기까지만 언급하고 끝냈다면 팬들과 축구계의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최 시장은 돌연 총구를 엉뚱한 곳에 겨눴다. “K리그는 몇 개 안되는 기업구단 위주”라면서 “(K리그 관계자들이) 기업구단의 눈치만 본다. 시민구단과 기업구단 사이에 공정한 룰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자초했다. 심판 판정이 기업구단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뤄진다는 뉘앙스의 발언이었다.
K리그1·K리그2에는 총 26개 팀이 참여 중이다. 그 중 기업구단은 9개 팀(34.6%)이다. 한 기업구단 관계자는 “(최 시장의 발언은) 1년 운영비로 200억~400억원을 쓰는 기업구단을 ‘악’으로 규정하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씌운 것”이라면서 “K리그의 공정성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이라고 분노했다.

기자회견장에서 최 시장은 지난 6일 열린 안양-FC서울(모기업 GS그룹)전을 포함해 올 시즌 오심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10개 장면의 영상을 공개했다. 하지만 그중 전문가들이 “오심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으는 상황은 2개 뿐이다. 서울 위험지역 안에서 에두아르도(안양)와 최준(서울)이 뒤엉켜 넘어진 직후 페널티킥을 선언했다가 취소한 안양-서울전 상황 또한 에두아르도의 헐리웃 액션(속임 동작)에 가깝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지난해 안양은 K리그2에서 여러 기업구단들을 제치고 우승해 시민구단 최초로 승격했다. 반면 심판 배정과 평가를 담당하는 축구협회의 수장(정몽규)이 구단주를 맡고 있는 팀(부산 아이파크)은 여전히 K리그2 소속이다. ‘K리그는 기업구단 위주’라는 최 시장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느껴지는 지점이다.

프로연맹은 21일 안양을 상벌위원회에 회부한다고 발표했다. K리그에 판정 차별이 발생하고, 그 차별이 구단의 규모나 운영 주체에 기인한다는 근거 없는 주장이 자칫 리그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축구협회와 프로연맹이 판정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판정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제되지 않은 분노를 쏟아내고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 역시 K리그에 무익하다. 최근 우리 사회도, 정치도 흑백으로 나뉘어 서로를 물어 뜯는데, 스포츠마저 ‘나와 다르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