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찐리뷰]초등생 9명 죽은 축구부 합숙소 화재사건…목숨 살릴 3번의 기회, 어른들이 놓쳤다

2025-03-28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7일 방송된 '악몽의 합숙소, 천안초 축구부 화재 사고'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박병은,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멤버 수빈, 가수 백지영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한밤의 응급환자

때는 2003년 3월 26일, 천안의 한 대학병원이야. 온종일 정신없이 붐비던 응급실은 밤이 돼서야 좀 고요해져. 오늘 밤은 이렇게 지나가려나~ 싶은 그때, 구조대가 응급환자를 싣고 왔어. 환자는 열 살 남짓한 남자아이야. 한 눈에 봐도 상태가 위태로워 보여.

"살려주세요…"

아이는 간신히 소리를 내뱉고는 말을 더 잇지 못해. 1분 1초를 다투는 긴급한 상황이야. 그런데 처치를 시작한 의료진은 다음 상황에 등골이 오싹해져. 이 아이에 이어 또 한 아이, 그리고 또 한 아이… 끊이지 않고 환자가 밀려들어 오는 거야. 하나같이 화상을 입은 채로.

"계속 뜨겁다고 막 살려달라고만 했던 것 같아요. 팔짝팔짝 뛰었던 것 같고."

-사고 당사자

"불을 끄려고 해도 꺼지지도 않고 그러다 그냥 턱 쓰러진 것 같아요. 평소 같은 날이었으면 저는 다 살았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사고 당사자

뭔가 큰 사고가 벌어진 것 같지? 대체 이 아이들은 누구고, 그리고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사고 6개월 전으로 가볼게.

▲ 축구선수 꿈을 품은 월드컵 키즈들

때는 2002년 8월. 일본 구마모토 현의 한 축구장이야. 이제 곧 한국과 일본의 경기가 시작돼. 한일전이잖아. 절대 질 수 없어. 선수들 사이에 불꽃이 팍팍 튀어. 그날의 선수들을 소개할게.

유소년 축구 선수들의 경기야. 일본 구마모토현의 손꼽히는 강팀 나가미네 초등학교와 붙게 될 한국 팀은, 바로 천안초등학교야. 이 천안초 축구부가 어떤 팀이냐, 역사와 실력을 자랑하는 충청의 명문팀이거든. 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1위를 휩쓸어. 창단하자마자 시장기 대회 1위. 이후 30년 가까이 전국 대회를 누비면서 명문팀으로 자리매김 했어.

그런데 천안초도 해외 원정 경기는 처음인데, 그것도 한일전이야. 양국의 자존심을 건 승부. 결과는 7대 1로 천안초가 대승을 거뒀어. 이렇게 일본 원정 경기에서 멋진 승리를 하고 돌아온 천안초 축구팀은, 얼마 후 축구 잡지에도 실렸어.

이때가 2003년 1월 무렵이거든. 새해를 맞이하는 천안초의 분위기가 남달랐어. 원래는 축구부원이 14명 정도였는데, 그 해에 갑자기 부원이 확 늘어난 거야. 무려 11명이나. 왜 이렇게 부원이 늘어났을까? 바로 2002 월드컵 때문이야.

2002년 월드컵 당시, 나라 전체가 도파민 폭발이었어. 온 국민이 축구 하나로 대동단결했지. '꿈은 이루어진다' 월드컵 4강 신화는 많은 아이들에게 축구선수를 꿈꾸게 했어. 바로 '월드컵 키즈'. 지금 활약하는 많은 선수들도 2002월드컵을 보며 자랐어. 손흥민 선수도 이런 '월드컵 키즈' 중 하나야.

"저는 그 선수들을 보며 자랐고 월드컵에서 뛰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손흥민

이런 '월드컵 키즈' 중엔 손흥민과 동갑인 천안초 5학년 김천명 선수도 있었어. 천명이는 축구 때문에 천안초로 전학을 갔어.

"저는 박지성 선수. 그라운드를 누비는 그 모습을 보면서 꼭 국가대표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은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김천명, 당시 천안초 축구부 5학년

근데 전학을 천명이 혼자 간 게 아니야. 천명이와 같은 아파트에 살던, 이웃집 동생 민수도 함께 했어.

둘은 월드컵 경기도 같이 보고 매일 같이 공 차며 놀았어. 민수는 4학년이지만 볼 감각이 남달라. 어려서부터 형이랑 축구를 계속 했거든. 사실 민수 친형도 천안초 축구부 출신이야. 민수가 입단할 무렵 형은 천안중 축구부로 진학했어.

"동생이 저보다 열정이 더 높았어요. 저보다 더 소질이 있었고. 축구하는 거 어른들이 보면은 '아 되게 쟤 축구 잘한다' 이런 소리 항상 들었었으니까 동생은. '형, 얼른 같이 운동하고 싶다'라고 얘기하고. 제가 숙소 생활하러 가기 전에는 그래도 좀 많이 투닥투닥하고 이럴 때도 있었었는데, 더 애틋해지더라고요. 동생 가면은 하나라도 먹을 거 더 챙겨주고 동생하고 좀 더 같이 있고 싶고."

-강민우, 당시 4학년 강민수의 형

형제 사이가 좋아 보이지? 민수는 입버릇처럼 얘기하곤 했대. "형! 우리 최초로 형제 국가대표가 돼서 같이 월드컵에 나가자!"라고.

▲ 25명 축구 꿈나무들의 합숙소 생활

이렇게 모인 25명의 천안초 축구부. 축구부 아이들은 모두 운동장 옆 합숙소에서 생활했어. 서른 평 남짓한 공간에서 함께 숙식하며 매일 열심히 훈련했어.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벌어져. 밤사이 합숙소에서 누군가 사라진 거야. 분명 취침할 땐 모두 자리에 있었는데, 아침에 깨보니 한 명이 안 보여.

사라진 아이는 천명이었어. 합숙소가 발칵 뒤집어졌지. 천명이는 밤사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숙소에서 도망간 적도 있어요 새벽에. 엄마 아빠 보고 싶어서요."

-김천명, 당시 축구부 5학년

2층 침대를 상상했으나 현실은 좁은 방에 다닥다닥, 재래식 화장실과 비좁은 세면장도 적응이 안되는데, 밥상 차리는 것부터, 빨래, 청소까지 스스로 다 알아서 해야 했거든. 그래서 부모님이 있는 집에 가고 싶었어. 그런데, 이상해. 어느 날부턴가 집에 가기가 싫어. 아이들끼리 금세 끈끈해진 거야. 같이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웃을 일이 많아진 거야.

"딱히 그렇게 재밌진 않았는데 많이 웃기도 하고. 이상하게 운동 끝나고 집에 갔는데 어느 순간 가기 싫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부모님한테 말씀을 드렸죠. 나 숙소 생활하고 싶다라고."

-김천명, 당시 축구부 5학년

같이 웃다 보면 가시밭길도 꽃길 되는 거잖아. 쉬는 시간에 누가 먼저 흥얼거리기라도 하면, 바로 '떼창'으로 이어져. 그즈음 아이들을 열창하게 만든 노래는 바로, 부활의 '네버 엔딩 스토리'였어. "그리워 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그때 당시에는 많이 들었던 음악은 부활의 '네버 엔딩 스토리'. 카세트로 음악을 틀어주시면 따라 부르다가 잠이 들었던 것 같아요."

-김천명, 당시 축구부 5학년

그리고 취침 시간이면, 코치님이 "장난 치지 말고 일찍 자"라며 불을 끄고 방에서 나가. 그러기가 무섭게, 누군가 코고는 시늉을 해. 이런 게 얼마나 웃긴지, 그때부턴 웃느라 아무도 못 자. 이 천안초 축구부에선 이런 개그 담당이 6학년 윤장호 였어.

사실 장호는 자기가 지금 축구부 합숙소에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신나는 일이야. 못 들어올 뻔한 걸 겨우 들어온 거거든.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축구선수 활동하려면 부모의 지원이 필수적이었는데, 장호네 집은 그럴 여유가 없었어.

"그때 내가 기억하는 거는 월급이 60만 원인데, 축구부에 내는 게 30만 원이래요. 그러면 그걸 내고 가정의 살림하기가 너무 힘들잖아. 그래서 안 된다고 하다가 얘가 계속 아주 물고 늘어지는 거예요. 축구하고 싶다고. 뭐 어차피 힘든 건 똑같으니까. 뭐 밥 세 끼 먹는 거는 나가서 직장 가서 먹으면 되고. '그래 하라'고 이제 밀어줬어요."

-백금녀, 당시 6학년 윤장호 어머니

장호는 일찍 철든 아이였어. 평소 갖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단 한 번 조른 적이 없었대. 그런데 축구가 너무 하고 싶으니까, 부모님께 처음으로 떼를 쓴 거지. 부모님은 야간근무에 주말 근무까지 마다하지 않고 장호를 뒷바라지했어. 장호는 자기가 어떤 돈으로 축구를 하는지 너무 잘 알았어.

"엄마! 내가 국가대표 되면, 엄마 일 안하고 놀러만 다녀. 알겠지?"

장호는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고 제일 늦게까지 훈련을 했어. 그러다보니 주전으로 맹활약을 펼치기 시작했어. 장호는 그렇게 기특한 아이였어.

▲ 악몽으로 변한 합숙소

그렇게 아이들의 꿈도, 실력도 무르익어 가던 그때. 그날이 찾아와. 2003년 3월 26일 밤 11시. 낮에 원정경기가 있던 날이라, 아이들은 이날 일찌감치 곯아 떨어졌어. 밤늦도록 장난치고 놀다가 잠들던 평소랑 달랐던 거야.

다들 잠들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장호가 벌떡 일어나. 쉬가 마려웠거든. 다닥다닥 붙어 자는 아이들 사이를 조심스레 디디며 방을 빠져 나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갑자기, 뭔가 펑!! 터지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열기가 장호를 덮쳤어.

그런데 장호는 그 순간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어. 장호의 얼굴과 몸에 불이 붙었거든. 불을 끄려고 팔짝팔짝 뛰며 난리를 쳤어. 근데 불은 안 꺼지고 몸 전체로 번져.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장호는 겨우겨우 현관 앞 쪽으로 갔어. 간신히 출구 앞까지 간 장호는, 거기서 의식을 잃고 말았어.

불길은 장호뿐 아니라 숙소 전체를 집어삼키고 있었어. 뜨거운 열기에 아이들은 하나 둘 잠에서 깨어났어. "불이야!", "야 일어나!" 소리치며 출구 쪽으로 향해. 하지만 출구가 어딘지도 찾지 못해.

"눈은 못 뜨겠고 눈은 따갑고, 숨은 못 쉬겠고 앞은 안 보이고. 위에서는 계속 불똥이 떨어졌던 것 같고. 맨날 나가던 큰방 문도 어딘지 위치가 어딘지도 기억 자체가 안 나고 정신이 없어 버리니까. 뜨거워서 계속 발버둥을 치고 엄마 아빠도 찾았던 것 같아요. 어떻게 문 손잡이를 잡았는데, 살이 '사삭' 녹는 소리가 들렸어요. 뜨겁지만 어깨로 밀고 나왔던 것 같아요."

-김천명, 당시 축구부 5학년

다행히 천명이는 가까스로 불길 속에서 탈출했어. 그때 밖으로 함께 나온 친구들은 불과 다섯 명 정도. 아직 스무 명 가까운 아이들이 안에 남아 있어. 그런데 불길이 번지는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라. 화재 상황에서 가장 최악의 조건. 바로 '가연성 소재'야.

당시 합숙소의 모습이야. 합숙소는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단층 벽돌집에, 조립식 컨테이너를 몇 개 덧붙여서 확장해 놓은 구조야. 근데 이걸 봐봐.

합숙소 천장 단열재가 이렇게 스티로폼에 합판으로 마감된 거야. 당연히 불에 활활 잘 탈 뿐 아니라, 유독가스가 다량 분출돼.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빠져나와야 돼. 그런데 몇 분 사이 탈출이 더 어려워졌어. 왜 그런지 이 합숙소 내부구조를 봐봐.

현관으로 들어가서 바로 오른쪽 작은 방엔 일곱 명이, 왼쪽 큰 방엔 열여덟 명이 자고 있었어. 아이들이 나올 수 있는 출구는, 현관뿐이야. 처음 폭발음과 함께 장호를 덮친 불길은 화장실 옆 주방에서 시작됐어. 유일한 탈출구인 현관의 반대편이야. 불길과 유독가스는 주방에서부터 현관으로 향하는 복도에 빠르게 번졌어. 그래서 뒤늦게 깨어난 아이들은, 방 밖으로 나오질 못한 거야.

아이들이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큰방에 있는 창문 뿐이야. 그런데 창문을 깨뜨린 아이들은 당황해. 창문이 방범용 창살과 환풍기로 가로막힌 데다가, 그마저도 냉장고, 신발장으로 가려져 있던 거야. 아이들이 나갈 수가 없어.

그 사이 불길은 방안 아이들 뒤통수까지 번져왔어.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환풍기를 뜯기 시작했어. 형들은 체구가 작은 동생들부터 그 작은 틈으로 내보내기 시작해.

아이들이 어떻게든 합숙소를 나오려고 아등바등하던 그때. 구조대가 도착했어. 누군가 합숙소에서 뿜어나오는 검은 연기를 보고 119에 신고를 한 거야. 구조대 도착까지 걸린 시간은 단 4분. 대원들은 불길에 휩싸인 합숙소로 들어가 남은 아이들을 구조했어. 화재를 완전히 진압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0분이야. 구조된 아이들은 급히 인근 병원들로 이송됐어. 하지만 하나, 둘 안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해.

"월드컵 무대를 동경하던 어린이들의 꿈은 잿더미로 변한 합숙소 내부처럼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신발장에 남은 축구화만이 사라진 어린이들의 꿈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갑자기 그 펑펑 소리가 났었어요. 부엌 쪽에서 막 팡! 하면서 막 전기가 막 지지직 하면서 펑 하면서 그러는 소리가 났어요. 코가 맵고 목이 숨을 못 쉬었어요 잘."

-당시 천안초 축구부원

"나가려고 하는데 불길이 너무 강해서 애들이 창문 깨고 나가거나 도망쳤어요."

-당시 천안초 축구부원

안타깝게도 8명의 아이들이 세상을 떠났어. 그 중엔 동생들을 먼저 내보내고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6학년 형들도 있었어.

"주 군은 방안에서 출구를 찾느라 허둥대는 4∼5학년 후배를 하나 둘씩 방안에 난 비좁은 창문으로 밀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수차례, 불길 속에서 자신은 가스에 질식해 빠져나오지 못했다. 생사를 다투는 불길 속에서 천안초등학교 주 모 군은 친구와 후배를 살리고 자신은 끝내 숨졌다."

-당시 신문 보도 中

"나중에 기사를 보니 저와 또래 몇몇 고학년 친구들은 후배들을 먼저 탈출시키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런 얘기도 봤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좀 부끄럽기도 하고. 그 이후에 느껴지는 그런 슬픔이나 뭐 절망, 그리고 뭐 미안함. 여러 가지가 좀 중첩되더라고요."

-김민성, 당시 천안초 축구부 6학년

▲ 생사의 갈림길

그런데 아직 긴장을 늦출 수 없어. 생존자 중에 여전히 위태로운 아이들이 있었거든. 이 아이들은 서울의 큰 병원으로 이송됐어. 그 중엔 장호와 천명이도 있었어.

"빠르게 가야 되는데, 비가 와 버리더라고요. 조금 더 비나 천둥번개 같은 게 빨리 쳤으면… 아버지나 다른 분께서 계속 저한테 말을 걸어주셨던 것 같아요. '금방 다 와가니까 조금만 참아'라고 그랬던 것 같아요. 아직 어린 나이에 애가 이 고통을 못 이겨서 눈을 감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김천명, 당시 축구부 5학년

모두가 한마음으로 천명이가 의식을 잃지 않길 바랐던 거야. 그나마 의식이 있던 천명이와 다르게, 몸에 붙은 불을 끄려다 현장에서 의식을 잃었던 장호는 아무 말이 없어.

"붕대를 다 감아놔가지고 아예 뭐 눈곱만큼도 살이 안 보여요. 그래서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게 장호라니까 장호구나 생각했죠. 이름 불러도 대답은 안 하더라고요. 응급 처치하고 서울로 가는데 한 5시간 간 것 같아요 기분에. 너무 이게 막 촉박하게 돌아가니까, 정말 그렇게 긴 시간을 처음 본 것 같아요."

-백금녀, 윤장호 어머니

그사이 민수 형 민우에게도 소식이 전해졌어.

"선배들이 빨리 집에 부모님한테 전화해 보라고. 천안초등학교 숙소에 불이 났다고. 그래서 전화 한 그 수화기 들고 있었을 때가 엄청 아직도 생생해요. 제발.. 아버지가 되게 울면서 수화기를 받으시는데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그러시더라고요."

-강민우, 당시 4학년 강민수의 형

사실 민우는 화재가 나기 몇 시간 전까지 동생과 함께 있었어. 저녁에 천안초 합숙소로 동생을 보러 갔었거든.

"동생이 좀 보고 싶었었어요. 그때 많이 못 봤었어가지고. 같이 야간 운동 같은 것도 하고, 슛 게임 같은 것도 하고."

-강민우, 당시 4학년 강민수의 형

동생과 함께 볼을 차며 놀던 민우는, 밤 9시쯤 합숙소를 나섰어.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 거야. 민우는 "야 강민수! 이리와 봐!"라며 다시 동생을 불렀어. 형이 부르자 잽싸게 달려온 동생에게, 민우는 3천원을 쥐여 줬어. 그날 가진 걸 다 내어준 거야. 그게 마지막일 줄은 꿈에도 몰랐지. 형과 동생이 헤어지고 불과 2시간 뒤, 뜨거운 불길이 동생을 덮치고 말았어.

"병원으로 이송하면서 동생이랑 같이 탔는데, 동생이 다리를 많이 구부리고 있더라고요. 그래가지고 펴주고 싶었었는데 안 되더라고요. 많이 다쳤다고 많이 좀 훼손이 됐다고 열어보지 말라고…"

-강민우, 당시 4학년 강민수의 형

"민수야. 하늘나라에서도 잘 지내고… 항상 형 옆에 있어줘. 네가 못한 거 다 내가, 형이 해 줄게."

-강민우, 당시 인터뷰

하룻밤 사이 소중한 아이, 형제, 친구를 잃은 사람들의 울음 소리가 합동분향소를 가득 채웠어.

▲ 마지막 생존자

친구들의 장례가 치러지는 사이, 아직도 그 불구덩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아이들이 있어. 바로 장호야.

"너무 기가 막혀가지고 이제 말도 안 나오고 눈물도 안나오고요. 우리 장호는 꼭 일어난다고 엄마하고 약속했어요."

-백금녀, 윤장호 어머니 당시 인터뷰

붕대로 온몸이 감긴 채 누워있는 장호. 엄마의 목소리에 장호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어.

"옆에 엄마 있으니까 힘내 장호야. 엄마 목소리 알지? 잘 참아내고 있으니까, 힘내. 엄마 항상 옆에 있으니까 안심하고."

친구들의 장례가 끝나갈 무렵, 장호는 겨우 의식을 되찾긴 했어. 엄마는 자기 모습에 놀라는 아이를 안심시키고 천천히 상황을 설명했어.

"장호야 놀라지마. 합숙소에 불이 나서 네가 많이 다쳤어. 근데 지금 치료중이니까 곧 나을 거야."

그러자 장호는, 친구들 안부부터 물었어.

"장호야.... 친구들은 많이 떠났어.."

장호는 친구들 소식에 눈을 뜰 때마다 울기만 했대. 다른 아이들은 한 명씩 한 명씩 퇴원을 했어. 그리고 중환자실에 남은 건, 장호와 4학년 동생 민건이, 둘 뿐이야. 장호 엄마는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저는 뭐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고 그 주위에 교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거기 가서 맨날 기도하면서 하나님 나를 보고 살려달라고… 그냥 그 기도만 죽어라 살아라 한 것 같아.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으니까."

-백금녀, 윤장호 어머니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장호 옆에 있던 민건이가 사고 열흘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 그렇게 천안초 합숙소 화재 사고의 희생자는 아홉으로 늘어나. 이제 병원엔 장호만 남은 거야. 장호는 이 참사의 마지막 생존자가 될 수 있을까?

"중환자실에 있으면서 상태가 심각하니까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된다'고. 맨날 한 3개월 동안 그 소리만 듣고 그냥. 나 한 번도 안 울었어요 거기 가서는. 내가 울면 그 환자 본인은 얼마나 슬프겠어요. 곰돌이 같은 게 너무 예쁘다고. 얼굴이 새카맣게 탔으니까 곰에 비유해서 '곰돌이같이 너무 예뻐. 엄마가 곰을 제일 좋아하거든. 너 곰같이 너무 예쁘다' 그러고 쇼를 하고 나오고 내가 그랬어요. 정말 가슴이요.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 이건. 내가 대신 죽으면, 살릴 수만 있다면 내가 죽고 싶다는 이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요."

-백금녀, 윤장호 어머니

이후 장호는 짧게는 6시간에서 길게는 12시간에 이르는 대수술을 열 번이나 받아야 했어. 무려 1년 동안. 그 사이 몇 번 죽음의 고비도 찾아왔어. 그토록 힘든 시간들. 장호는 결국 버텨냈을까?

"지금은 2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저도 제가 많이 좋아지려고 노력을 많이 했고. 그래서 지금 현재는 괜찮다고 표현을 하고 싶은데. 그때 당시는 너무 힘들었죠."

-윤장호, 당시 천안초 축구부 6학년

잘 버텨낸 장호는 결국 마지막 생존자가 됐어. 하지만 어린 장호가 겪어야 했던 고통은 너무 끔찍했어. 소중한 친구들과 동생들을 잃었다는 슬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 당장 온몸으로 전해지는 화상 치료의 고통까지. 화상치료의 고통은, 말로는 표현할 수도 없다고 해.

"그냥 '지옥'이라는 말을 표현하고 싶어요. 그 치료실에 비명소리도 그렇고 제가 느끼는 고통도 그렇고. 제가 견딜 수 없는 아픔이어서, 면회 온 엄마한테 '엄마 원망 안 할 테니까 나 좀 죽여달라'고. 하늘에서 지켜줄 테니까 나 좀 죽여달라고. 그래도 엄마가 제 앞에서 안 울었는데, 그날이 아마 처음 우셨을 거야. 견딜 수 있다고 조금만 더 참자고…"

-윤장호, 당시 천안초 축구부 6학년

고작 열세 살인 아이에겐 얼마나 가혹한 시간이었겠어. 이후 5년간 미국을 오가며 몇 번의 수술을 더 받아야 했지만, 장호는 그것도 씩씩하게 잘 견뎌냈어. 그리고 꿈에 그리던 집으로 돌아가게 됐어.

"하루하루 살아있다는 게 기적이고 나한테는 기쁨이었으니까요. 그게 부모의 심정인 것 같아요. 부모는 그거를 지켜줄 수 있다는 그 힘이 있기 때문에."

-백금녀, 윤장호 어머니

물론 엄마의 응원도 큰 몫을 했지만, 장호가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축구를 다시 하고 싶다는 꿈이었어.

"저도 제 몸을 봤지만, '빨리 나아서 축구해야지' '뒤처진 거 빨리 더 남들보다 두 배로 열심히 해야지' 이런 생각들로 버틸 수 있었던 거지. 제가 만약에 그때 당시에 '난 이제 축구 못한다'고 제가 만약에 이제 그런 마음 가짐으로 치료를 받았더라면 견딜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윤장호, 당시 천안초 축구부 6학년

지옥 같은 고통에서 장호를 버티게 해준 건 꿈이었어. 그럼 장호는, 그 꿈을 이뤘을까?

▲ 최악의 학교 참사, 놓쳐버린 세 번의 기회

이런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는 거 알고 있었어? 무려 스물 다섯 명의 사상자를 낸 대형 참사였는데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 천안 시민들조차 잘 기억하지 못할 정도야. 왜 그럴까? 이 사고 불과 한 달 전에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가 있었거든. 192명의 사망자와 151명의 부상자를 냈고 나라 전체가 충격과 슬픔에 빠졌어. 그러다보니 한달 후에 터진 이 사고는 상대적으로 사람들 눈에 띄지 못했어. 하지만 학교에서 벌어진 역대 최대의 사고야.

국과수 조사 결과, 합숙소 화재 원인은 전기 누전이었어. 화재가 발생하는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지. 하지만 유족들은 이 사고를 분명한 '인재'라고 말해. 대비할 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다는 거야. 적어도 아이들을 지켜낼, 세 번의 기회가 있었거든.

보통 학교에선 건물마다 소방시설을 갖추고 정기적으로 소방 훈련 및 점검을 해. 근데, 천안초 축구부엔 그 모두가 없었어. 소방 점검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어. 합숙소가 세워진 1993년부터 10년 동안이나. 왜? 400제곱미터, 약 120평 미만의 학교 시설은 소방 점검 대상이 아니었던 거야. 25명의 아이들이 매일 숙식을 하고있는 합숙소가 그냥 방치된 거야.

그런데 경찰 조사를 해보니, 관할 교육청에선 합숙소 점검을 꾸준히 한 걸로 나와. 점검일지에도 기록이 남아 있었어. 그럼, 점검을 했는데 왜 그런 참사가 벌어졌을까. 수사 과정에서 정말 황당한 사실이 밝혀져.

"천안초 축구부 합숙소 화재참사 발생 1주일전 천안교육청 직원이 합숙소를 점검한 것처럼 허위로 서류를 조작했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대전지검 천안지청 담당 검사는 7일 천안초 축구부 합숙소 화재 당시 천안교육청 담당자 2명을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월드컵 붐으로 학교 합숙소 인원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는데, 실질적인 지원이나 관리 시스템이 전혀 없었던 거지. 그렇게 첫번째 기회를 놓쳐버렸어.

그럼에도 두 번째 기회가 있었어. 합숙소 화재 사고 4년 전, 유치원생들을 포함해 무려 스물세 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이 있었거든. 바로 씨랜드 화재 참사. 이건 씨랜드 참사 이후에 나온 기사야.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은 어린이, 청소년 관련 시설 전부에 대한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전관리본부 관계자는 '방화벽 설치, 소방 스프링클러 등 안전시설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면서 '관련 법규 마련과 당국의 지속적인 단속만이 제2의 씨랜드 사건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화재를 대비하는 개선안이 만들어졌고, 실제로 많이 좋아지긴 했어. 근데 운동부 합숙소는 제외된 거야.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한다는 참사의 교훈. 그걸 또 놓친 거지.

마지막 세 번째 기회는, 민우가 아직 중학교에 진학하기 전, 축구부 합숙소에서 있었던 일이야.

"제가 천안초 숙소 생활을 했을 때 한 번 대피했었던 적이 있어요. 새벽에 일어났는데 막 친구들이 깨우더라고요. 근데 하얀 연기가 엄청 많이 차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희 다 그때는 빨리 나갔죠."

-강민우, 당시 천안초 축구부원

합숙소가 불과 3개월 전에도 불이 날 뻔했던 거야. 그때도 축구부 아이들은 모두 자고 있었어. 그런데 어느 순간 합숙소에 연기가 가득 차고 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던 거야. 알고 보니 사골국을 불에 올려놓고 깜빡한 거야. 다행히 아이들이 한발 먼저 알아차리고 모두 탈출할 수 있었어. 그때 아이들은 그랬대. "와, 여기 불 나면 큰일나겠다"라고. 하지만 그 후로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어.

"왜 미리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나. 아쉬움과 분노, 그런 게 있죠."

-강민우, 故강민수의 형

사고 이후 관련된 사람들은 처벌을 받았어. 축구부 감독과 코치는 합숙소에서 아이들을 지킬 의무가 있었어. 하지만 화재가 났던 그 시각, 코치는 개인적인 일로 합숙소 밖에 있었어. 현장에 어른이 아무도 없었던 거야.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감독과 코치는 금고 1년 2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고 학교 교장에게도 벌금형이 내려졌어. 그리고 공문서위조죄로 기소된 교육청 담당자들도 벌금형을 받게 돼.

▲ 꿈은 이어진다

처벌은 이렇게 끝났지만, 유가족과 생존자는 평생 그 아픔을 견디며 살아가야 해. 장호가 그 고통 속에서도 꼭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던 이유 '축구'. 건강을 회복한 장호가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운동장이었어. 두 발 땅에 딛고 운동장에 섰을 때의 그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어. 공을 차며 슬슬 앞으로 달려 나가는데, 뭔가 이상해.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너무 숨이 가빠오는 거야.

"뭐 몇 분 뛰자마자 그냥 뭐 몇 시간 뛴 것처럼, 가래는 계속 나오고, 폐도 아픈 거 같고. 다리는 제 마음대로 안 따라주고. 다리가 제일 문제였던 거 같아요. 발, 오른발이. 이제 발가락을 절단하면서… 그때 느꼈던 것 같아요. 내 몸이 축구할 수 없는 몸이구나라는 걸."

-윤장호, 당시 천안초 축구부

사실 퇴원할 때부터 장호는 장애를 갖고 있었어. 오른쪽 발가락 3개를 잃었거든. 그뿐만 아니라 화상과 수술의 흔적으로 몸이 온전치 않았어. 장호는 결국 달라진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축구선수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

그럼, 이제 천안초 축구부 아이들의 꿈은 여기까지인걸까? 아니, 그 꿈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야.

더 높은 성적을, 더 빨리 달성하기 위해서 합숙을 했던 건데, 어떤 성과도 아이들의 안전보다 우선될 수 없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닫게 됐어. 천안초 축구부 합숙소 사고 이후,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 합숙소는 폐쇄됐어. 천안초는 축구부 자체가 사라졌어. 그 사고는 모두에게 아픔이고 상처였으니까. 누구도 축구부 얘기를 꺼낼 수 없었던 거지.

그런데 얼마 후, 다시 축구부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어. 이런 제안을 한 건, 바로 유가족들이었어.

"하늘에서 아이들이 지켜볼 텐데 팀이 없어졌다고 하면 얼마나 슬퍼하겠어요."

아이들이 얼마나 축구를 좋아하고 팀을 사랑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분들이니까. 이렇게라도 지켜주고 싶은 게, 부모들의 꿈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천안초 축구부는 다시 창단됐어. 참사를 겪은 부모님들은 새로운 축구부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어. 새로 꾸려진 선수들에게 각종 용품, 후원금까지 전달해.

"새 축구부를 바라보는 학부모들의 감회도 남달랐다. 내 아이 등번호가 붙은 축구복을 장만해 새 축구부원에게 입혀줄 때는 말라붙은 줄 알았던 눈물이 장맛비처럼 후두둑 손 등에 떨어지기도 했다."

"아이들이 이 옷을 입고 가을께 대회에 나가 뛰는 모습을 보면, 경기에 이기거나 지면, 우승하거나 탈락해 돌아오는 길에 마중 나가면 또 울 것 같습니다."

장호랑 민수형 민우도 같은 마음이야. 후배들이 즐겁게 축구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어.

"축구부가 없어지는 거는 바라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다시 천안초등학교에 축구부가 생겨서…"

-강민우, 합숙소 화재 사건 유가족

"저희 후배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뛰면 훨씬 더 좋다고 생각했고, 그랬으면 좋겠고 제발 그랬어야, 그랬으면 하는 바람뿐이었죠."

-윤장호, 합숙소 화재 사건 생존자

이건 천안초 축구부의 현재 유니폼, 그리고 엠블럼이야. 별 9개가 그려져 있어. 먼저 하늘의 별이 된 아홉 명의 아이들을 기리는 의미라고 해. 천안초 선수들은 매 경기, 이 별을 가슴에 달고 뛰는 거야.

그럼 부활한 천안초 축구부는 선배들처럼 축구 명가의 맥을 이어올 수 있었을까? 사실 초반엔 축구를 잘하는 아이들이 오려고 하지 않아서 난항을 좀 겪었어. 경기만 나갔다 하면 지고 또 지는 거야. 무려 40연패. 2년 내내 지기만 했어. 선배들의 뒤를 이어 승승장구하길 바라는 건 헛된 꿈인 건가 싶은 그때, 하나 둘 이기는 경기가 늘어가. 그러더니 2009년엔 충남 소년체전에서 우승해. 그리고 지금까지 천안초는 충남 최강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어. 선배들의 명맥을 다시 이어간 거야.

장호는 그런 후배들을 지금도 곁에서 지켜보고 있어.

"저는 학교를 자주 가요. 살면서 힘들 때, 좀 많이 가는 것 같아요 학교를. 후배들을 보면 거의 진짜 끝날 때까지 멍 때리고 보는 것 같아요. 그 훈련이 다 끝나서 그 자리가 흩어질 때까지. 같이 뛰던 생각이 많이 나죠. 제가 뛰었던 기억도 나고. 먼저 간 친구들도 생각나고…. 나중에 꼭 다시 만나서 고통 없는 곳에서 다시 축구하자. 잘 지내고 있어.."

-윤장호, 합숙소 화재 사건 생존자

축구를 사랑했던 2003년 천안초 축구부. 아이들의 꿈은 22년의 세월을 지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

매년 3월 26일에는 천안초등학교에서 추모식이 열려. 아이들이 우리에게 남긴 걸 잊지 않고 되새기는 거지. 바로 그저께가 3월 26일, 22주기였어.

장호는 지금 어떤 일을 하는지 안 궁금해? 장호는 장애와 상처를 딛고 스무 살 무렵부터 요식업계에서 일을 했고 지금은 천안에서 작은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어. 치킨이 아주 맛있다고 해. 게다가 일하는 틈틈이 보육원에 봉사활동도 다닌대. 살아가는 동안 하루하루 의미 있게 살려는 거야. 또 다른 아이들이 장호 덕분에 자신의 꿈을 키워가고 있겠지.

끔찍한 사고의 생존자로 산다는 건 어떤 걸까. 어떤 참사의 생존자들은 숨죽이며 살아갈 수 밖에 없대. 희생자 유가족의 슬픔과 고통에 본인은 비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야. 그래서 알 수 없는 죄책감 같은 것도 있어. 본인들도 평생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건데. 얼마나 힘든 삶이겠어.

장호 어머니가 이번에 만난 '꼬꼬무' 제작진에게 이런 말을 했대.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고. 앞으로 안타까운 사고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한편, 생존자들의 삶에도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