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국가’ 한국

2025-12-09

스리랑카 청년 이완은 경기 포천시 의료원에서 태어났다. 한국에서 취업한 부모님과 양계장 기숙사에서 자랐다. 미등록 상태였던 이완은 2021년 한국에서 15년 이상 거주한 청소년들이 벌금을 내면 비자를 주는 구제 조치에 따라 920만원을 내고 체류 자격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완이 성년이 돼 보호자 자격으로 체류해온 어머니와는 헤어져야 한다.

한국에서 24년째 거주 중인 몽골 출신 마리나도 고교를 졸업하면 한국을 떠나야 할 처지였다. 인권위원회가 국내에서 장기 체류 중인 미등록 이주아동의 고교 졸업 후 강제 출국은 인권침해라며 시정을 권고한 뒤 마리나는 2021년 임시체류 자격을 받을 수 있었다. 현재 체류 자격은 유학생으로, 졸업 후 바로 취업해야만 추방을 면할 수 있다. 하지만 극한에 가까운 청년 취업 현실을 감안하면 아뜩하다.

이두안은 한국 생활 18년차인 필리핀 출신 청년이다. 특성화고를 다니며 기술자격증을 취득했고, 학교 소개로 취업에 성공했으나 고졸로는 취업비자(E-7)를 받을 수 없는 규정 탓에 포기해야 했다. 그러다 국내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한 외국인 청소년들이 대학 진학 없이도 취업할 수 있도록 하는 E-7-Y비자가 지난 4월 신설돼 그 혜택을 받게 됐다.

이완, 마리나, 이두안은 EBS가 지난 9월 방영한 다큐멘터리 <시민 미완: 경계의 청년들>에 등장한 이주배경 청년들이다. 조금씩 완화되곤 있다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지내온 이주배경 청년들이 안정된 체류 자격을 얻기 위한 문턱은 여전히 높다. 한국에서 공교육을 받으며 한국 사회에 필요한 인재로 자라났음에도 한국에 기여할 기회는 제한적이다.

외국인 노동자·귀화자, 이민자 2세 등 ‘이주배경인구’가 지난해 271만5000명으로, 국내 인구의 5%를 넘어섰다. 이주민들은 그간 한국의 뿌리산업과 돌봄노동을 떠받쳐 왔고, 인구소멸이 가속화하는 지방 중소도시에선 지역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이들이 없다면 한국 사회는 작동할 수 없다. 그들은 저임금 노동력 혹은 ‘특별 관리대상’이 아니라 한국의 미래를 함께 꾸려갈 동반자다. 이 관점에서 이주민 정책을 재설계해야 한다. 우선 차별적 뉘앙스가 짙은 ‘다문화’라는 말부터 바꾸면 좋겠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