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물지』나 『설문』 같은 중국의 고전에는 요(堯)임금이 어리석은 아들 단주(丹朱)를 가르치기 위해 바둑을 만들었다는 글귀가 나온다. 바둑의 기원에 대한 대략 4300년 전의 기록이다. 전설인지 사실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이 글귀는 바둑의 힘겨운 운명을 느끼게 해준다. 자고로 자식을 가르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닌가.
요임금은 아들 단주 대신 순(舜)에게 왕 자리를 물려준다. 세상은 평화롭고 누구도 권력을 탐하지 않는 화평의 시대가 이어진다. 이리하여 ‘요순시대’라는 네 글자는 태평성대와 이상 사회를 상징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바둑을 선악 대결로 본 상상력
강자가 판치는 요즘 시의적절
선한 왕이 악한 아들 물리치길

멀리 칠레에 사는 소설가 벵하민 라바투트가 쓴 『매니악(MANIAC)』에 요임금과 그의 아들 단주의 이야기가 나온다. 라바투트는 아주 이상한 상상을 한다. 요임금은 선(善)이고 그의 아들 단주는 악(惡)이다. 요임금은 아들을 가르치고자 바둑을 만들고 승부를 청한다. 선악이 대결한다. 요약하면 이렇다.
단주는 어리석기보다는 사악하다. 그냥 사악한 게 아니라 자연과 생명을 거부하는 악의 화신이다. 만 가지 덕목보다 잔인함을 제일로 여겼다. 소년 왕자는 읽고 쓸 줄도 모르고 그림이나 악기도 모르는 천치였으나 모든 종류의 게임에서 이기는 초자연적 능력의 소유자였다. 여우처럼 교활하고 간사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분노에 이끌렸고 오직 공허 후에만 찾아오는 평화를 갈망했다. 그는 죽음의 사신이고 파괴자였다.
요임금은 도덕적 무결함을 철통같이 지키는 자였다. 소박한 농부처럼 살았으나 그가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만인의 마음이 환했다. 농사는 언제나 풍년이었고 맑은 샘물은 시골까지 유유히 흘렀다.
왕자는 고사리손으로 활을 잡은 다음 날부터 사냥단을 조직했다. 모든 종의 동물들을 적어도 한 마리씩 다 죽일 때까지 쉬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길조의 상징인 용과 유니콘도 예외가 아니었다.
요임금은 사천왕과 아홉 태양과 우주 최초의 생명인 반고에게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온 우주를 가로 열아홉 줄, 세로 열아홉 줄의 격자로 나누고 삼백예순한개의 교차점을 지닌 격자판으로 만들어 그걸 가지고 악마 같은 자기 자식과 게임을 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임금은 단주에게 공간을 더 많이 차지한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게임의 규칙을 설명했다. 그리고는 마음이 내킬 때 모든 신과 악마, 그리고 하늘과 땅의 모든 피조물이 지켜보는 앞에서 승부를 겨루자고 했다. 임금은 조개껍데기로 만든 흰돌을, 왕자는 점판암으로 만든 검은돌을 사용했다. 이기는 쪽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터였다.
얘기는 여기서 끝난다. 누가 이겼다는 말은 없다. 요임금은 지혜의 화신이지만 단주는 게임의 초능력자다. 세상이 아직 존속하는 것을 보면 요임금이 승리한 게 맞겠지만 저자는 그걸 말하지 않는다. 혹 아직 대국 중인 것일까.
『매니악』이란 책은 천재 물리학자들의 얘기다. 저자에 따르면 매니악은 미치광이라는 뜻 외에 존 폰 노이만이 만든 컴퓨터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책은 마지막 제3장에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을 자세히 그린다. 위의 글은 ‘세돌 또는 인공지능의 망상’이라 이름 붙인 마지막 장의 프롤로그로 쓰인 것이다.
저자는 왜 까마득히 먼 옛날이야기, 그러니까 요임금과 단주의 이야기를 들고 나왔을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학문인 물리학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임인 바둑이 통한다고 생각했을까. 천재 물리학자들은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을 만들었다. 후회와 고통이 뒤를 잇는다. 이 가공할 물건들은 선인가 악인가. 그 갈등을 지켜보며 요임금과 단주의 승부를 떠올렸을까.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현대적인 악은 무심하고 무정하다. 단주의 모습과 어딘지 닮았다. 오늘날 도처에서 극단이 발호하고 죽음은 일상이 됐다. 악(惡)인지, 광(狂)인지 알 수 없는 절대 강자들이 세상을 종횡한다. 그들의 모습은 단주와 같은 악의 화신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혜와 선의 화신인 요임금과는 까마득히 멀어 보인다. 이런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건대 요임금과 단주의 한판 승부는 아직 진행 중이고 요임금이 고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둑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후 소박하지만 좋은 영향을 미쳐왔다. 인내와 끈기, 욕심의 절제, 균형과 조화, 패배를 받아들이는 용기 등 바둑이 함축한 수많은 덕목들은 짧은 인생에서 많은 도움을 주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덕목들은 점차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다. 세상은 그것들을 힐끗 곁눈으로 바라보고는 어디론가 질주한다.
추석 아침 이 글을 쓰며 잠시 신화 속으로 들어가 봤다. 부디 요임금이 단주와의 한판승부에서 승리하기를 기원해 본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