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도경영(正道經營) 실천으로 세계 1위 비철금속기업을 일궈내다.’
지난 6일 별세한 고(故)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은 고려아연을 세계 1위 종합 제련업체로 성장시킨 주역으로 꼽힌다. 고려아연은 7일 최 명예회장이 ‘정도경영만이 살길’이라는 신념으로 평생을 현장 중심 경영과 기술 혁신에 바쳤다고 기렸다.
최 명예회장은 고려아연 창업주인 최기호 선대 회장의 차남으로 1941년 황해도 봉산군에서 태어났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대 경영학 석사(MBA)를 취득하고 1973년 귀국했다. 그는 1974년 고려아연을 창립한 뒤 30여 년 만에 세계 최고 비철금속 기업으로 고려아연을 키워냈다. 그는 생전에 경영 철학으로 화려한 혁신보다 꾸준함과 성실함을 강조했다.
최 명예회장은 제련업 진출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국내외 금융기관을 설득해야 했고, 가까스로 국제금융공사(IFC)로부터 자금을 유치할 수 있었다. 1978년 온산제련소 완공 이후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 확보를 위해 연구소 설립과 설비 투자에 나섰다. 1990년에는 기업공개(IPO)를 통해 투명경영의 토대를 마련했다. 1992년 고려아연 회장에 오른 그는 ‘원칙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말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호주에 손자회사 썬메탈코퍼레이션(SMC) 제련소를 설립하는 등 글로벌 경영을 강화했다.
최 명예회장은 ‘친환경 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아연 잔재를 재활용하는 청정슬래그 기술을 상용화해 환경 경영의 모델을 제시했다. 그가 추진한 기술 혁신과 장기 투자로 고려아연의 아연 생산 능력은 연 5만 톤에서 65만 톤으로, 매출은 100억 원대에서 12조 원대로 늘었으며 시가총액은 20조 원에 육박하는 등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비철기업으로 성장했다.
인재와 노사 화합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장학사업과 해외연수를 장려했고, 38년 무분규와 102분기 연속 흑자 기록을 남겼다. 특히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도 단 한 차례의 구조조정이나 명예퇴직을 시행하지 않아 국내 재계의 귀감을 사기도 했다.
사회공헌에도 앞장섰다. 1981년 명진보육원 후원을 시작으로 장학사업과 사회복지단체 기부를 이어왔고, 임직원들의 ‘급여 1% 기부 운동’과 자원봉사회를 직접 독려했다. 이런 공로로 2013년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했다.
최 명예회장의 장례는 7일부터 나흘간 회사장으로 치러진다. 장례위원장은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이 맡았으며,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이며 영결식은 10일 오전 8시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