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따지지 말자는데

2025-10-08

피타고라스 정리(그림)는 피타고라스보다 500년 앞선 중국 주나라 시대에 ‘구고현 정리’라는 이름으로 증명되었고, 파스칼의 삼각형은 파스칼보다 390년 앞선 중국 송나라 시대 양휘의 책에 등장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름을 바로 잡지 않는다.

미분법을 공부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 로피탈 법칙도 요한 베르누이가 로피탈에게 알려줘, 로피탈이 자신의 책에 실어서 로피탈 법칙으로 알려졌다. 또, 3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흔히 ‘카르다노 해법’이라 부른다.

이유는 이렇다. 1535년 베네치아에서 ‘3차 방정식 풀기’ 공개 시합이 열렸다. 타르탈리아(1499~1557)와 피오르가 맞붙었는데 여기서 타르탈리아가 승리했다. 당시만 해도 이런 수학적 비법은 비밀로 간직한 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런데 밀라노의 카르다노(1501~1576)가 타르탈리아를 찾아가 애타게 졸라 비밀을 지키겠다는 맹세 아래 해법을 알아냈다. 그 후 약속을 어기고 『위대한 술법』이라는 책에 이 해법을 실었고, 3차 방정식 해법이 오늘날 카르다노 해법으로 불리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수학자의 반응이 시원찮다. 게으른 것인가, 아니면 무심한 것인가.

헝가리 수학자 폴 에르되시(1913~1996)의 얘기가 힌트를 준다. “신이 만든 수학책이 존재하고 수학자들은 어쩌다가 그 책의 일부 페이지를 살짝 엿본 것뿐이다.”

그러니 이미 존재하는 진리를 엿본 것을 두고 그 엿본 사람이 누구냐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얘기한다. 그저 편의를 위해 이름을 붙인 것이니 너무 따지지 말자는 것이다.

이 기막힌 철학을 무엇이라고 해야 하나. 혹자는 플라톤주의라고 부르지만, 무소유 철학이 더 그럴듯하다. 문득 공(功)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는 세상에 이런 무심한 정신이 청량한 느낌마저 준다. 그런데 왜일까? 철학이 힘으로 역사를 누르는 기분이 드는 건. 생각이 깊어진다. 역사란 무엇인가.

이우영 고등과학원 HCMC 석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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