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선 보이스피싱] ④노동편 '마동석팀' 그녀는 왜 '초선'이 됐나...일자리 잃은 청년들의 선택

2025-11-21

정상적인 노동시장 막힌 청년들...'월 500만원' 기본급의 유혹

코로나 이후 더 확산된 범죄, SNS 통한 위화감이 더 자극

[서울=뉴스핌] 김영은 김지나 기자 = '초선'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범죄조직 '한야 콜센터', 일명 '마동석팀'으로 불린 조직원에 소속됐던 그녀(31세)는 이 이름으로 불렸다.

이 조직에는 '초선' 말고도 삼국지에 나오는 여포, 제갈량이 있었고 또 위인전 속 인물인 신사임당, 허준, 유관순도 있었다. 이들은 마치 삼국지 게임을 하듯 오롯이 익명이 보장된 사이버 공간 속에서 범죄조직에서 할당한 보이스피싱 업무를 했다.

'초선'은 일명 '로맨스팀' 상담원이었다. 그녀는 다정한 목소리로 마치 성매매 조건만남을 해줄 것처럼 돈 많은 40대에게 접근해 온라인 사이트 가입을 유도했다. 그 과정에서 본인인증에 필요하다며 송금을 요구했다.

이렇게 초선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4개월간 5명으로부터 3억원을 편취했다.

◆ 자발적으로 범죄에 가담하는 청년들은 왜?

지난 10월 31일 오후 2시 서울동부지법 201호 법정.

'초선'은 검정색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미동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어디서 난 지 모를 얼굴 상처엔 밴드가 붙어 있었다.

올해 초 그녀는 목숨을 걸고 6명의 '동료'들과 보이스피싱 조직을 탈출했고, 한국으로 돌아와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 범죄행위에 가담한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됐다.

"징역 3년 6개월에 처한다"

재판장은 그녀에게 이 같이 선고했다.

"돈을 좀 많이 벌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생납치가 아닌, 스캠인 줄 알면서도 넘어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현지에서 우선 여권을 빼앗기고 엄청난 실적 압박에 시달리게 되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라는 판단에 가담자들은 한국으로 다시 도망쳐오게 되지만 그래도 처벌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 태국 현지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담한 피해자 혹은 피의자를 주로 변호하고 있는 전형환 변호사(메가엑스법률사무소)의 말이다.

◆ '월 500만원 기본급'의 유혹

'초선'이 피고인으로 있는 2025년 10월 서울동부지법 판결문을 보면 구체적으로 범죄 수익금이 조직원들에게 어떻게 배분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전체 범죄수익 중 약 30%는 대포통장 비용 등 운영비로 빠지고, 35%는 관리자가 챙기며, 남은 35%가 팀별로 배분된다. 팀장은 조직원의 실적에 따라 마치 '월급'처럼 정해진 날짜에 기본급과 함께 범죄수익금의 5~10%를 수당으로 지급했다.

2024년 11월 울산지법의 보이스피싱 범죄 관련 판결문에는 보다 구체적인 금액이 등장한다.

월 500만원의 기본급 제공

범행에 성공할 경우 범죄수익의 8%의 포상금

'조직원' 모집책은 본인이 끌어온 조직원 급여의 10% 수당

범죄조직의 기본급과 성과급 체계는 정상적인 기업처럼 견고했고, 웬만한 대기업 보다 '우수'했다.

"정상적인 노동시장 이행이 막혔다고 느끼는 청년들이, 단기간에 큰돈을 벌 수 있다면 범죄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비정상적 일자리로 발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피라미드 판매 같은 '회색 지대'에 머물렀다면, 지금은 그 구조가 아예 범죄 영역까지 확장된 셈이죠."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 같이 분석하며 보이스피싱에 가담한 청년들을 '좌절된 이행(Disturbed Transition)'의 전형이라고 표현했다.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가 내놓은 사회 청년층(만 15~29세) 고용률(올해 10월 기준)을 보면 10명 중 4명 정도의 비율(44.6%)로, 1년 전보다 1.0% 떨어져 18개월째 내리막을 걷고 있다. 정상적인 취업이 좌절된 20~30대 중심으로 범죄조직으로 돈을 벌기 위해 넘어가는 흐름을 나타내는 상황이다.

"인력모집 역할을 담당하는 조직원은 국내에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청년층을 대상으로 고수익을 보장하며 영입하고 있고, 이에 MZ세대(20~30대) 다수가 조직원으로 가담하고 있음"

'초선'이 가담한 '마동석팀'을 검거한 서울동부지검에서 지난 7월 18일 내놓은 자료에 포함된 내용이다.

"초선은 어린 시절 부모 모두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 오랜 시간 생계를 책임져 왔어요. 캄보디아에 결국 '돈 많이 준다'는 말을 듣고 혹해서 경제활동을 하러 간 거죠. 성인이 된 후 계속 혼자 생계를 책임지고 힘들게 탈출한 여러가지 사정도 고려해주면 좋겠습니다." '초선'의 재판에서 방청석에 앉아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던 '초선' 지인은 말했다.

◆ SNS로 느낀 사회적 위화감...좌절된 취업 청년들의 선택

보이스피싱 조직에 자발적으로 가담한 청년들에게 들이대는 법적 잣대. 범죄에는 마땅히 법적 책임이 따라야 하지만 동시에 청년들이 더 이상 캄보디아를 마지막 선택지로 여기지 않도록 만드는 것, 그것 역시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코로나19 이후에 범죄가 더 확산된 것 같습니다. 전국민이 재테크에 관심을 갖게 되고 부를 차지하게 된 사람들이 소셜미디어로 과시하기도 하는 가운데 사회적 위화감을 느꼈을 청년들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월 200만원의 정상적 일자리에 만족을 하지 못하고, 혹은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은 청년들이 위험부담을 지고서라도 범죄를 선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은 단속하지 않으면 고도화되고 진화하는 범죄이기에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단속과 처벌이라는 강한 잣대가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형환 변호사는 말했다.

"캄보디아 사태는 '해외 취업'의 또 다른 사례로 보이기도 합니다. 국내 청년의 실업난이 심각해지니 해외로 나가서 일자리를 찾은 것인데, 이제는 해외 범죄 취업의 실태를 국가가 조사해서 관리하는 절차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봅니다. 점점 더 많은 청년이 '해외 취업형' 범죄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인데 고용노동부 및 외교통상부 차원에서 이 같은 취업 행태의 실태를 파악하고 해외 주재 영사 기관들의 꾸준한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병훈 교수의 제언이다.

yek105@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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