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존재 자체가 감사, 벌써 당신이 그립습니다" [내가 본 교황]

2025-04-21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밀은 사랑입니다 .

사랑만이 악으로 야기된 공허한 공간들을 채울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세상 사람 모두에게 당신의 사랑을 쏟아부으시고

그들 각자의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당신의 이 말씀을 새롭게 되새김하는 요즘입니다

파릇한 신록이 물결치는 봄의 정원에서

슬픈 소식을 듣고는 떨리는 손으로 촛불을 켜는 시간입니다

간혹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어도 다시 웃는 얼굴 보여주셨기에

퇴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을 놓았습니다.

그런데 아니라구요

?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 영원의 나라로 떠나셨다구요

?

당신이 안 계신 이 세상은 너무도 허전하고 슬퍼서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네요.

종파를 초월해 모든 이를 벗으로 가족으로 끌어안는 사랑의 전령사였던 당신.

약하고 가난한 이들을 늘 우선적인 돌봄의 따듯한 눈길과 손길로 위로하던 또 한 분의

예수님이었던 당신이 벌써부터 그립습니다.

종이에도 늘 조그맣게 남기는 당신의 사인 글씨처럼

작은 자로 낮은 자로 겸손하게 살고 싶으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

스스로를 죄인이라 고백하며 언제나 겸손되이 기도를 청하시던 분.

교황으로 재임하신 12년 동안 우리가 당신께 감사드릴 일들을 열거하자면

끝도 없이 많지만, 그냥 존재 자체로, 우리 곁에 계신 것 자체로 감사했습니다

여러 회칙과 강론을 통해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셨고, 오류의 어둠에 빠질 때는

길을 밝혀주는 등대가 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

누구에게 가야 하나요

?

우리의 집이고 산이고 강이었던 분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될 수 있던 분

아버지고 스승이며 예언자이고 철학자이며 상징 언어를 즐겨 쓰신 시인이기도 했던 당신

당신의 웃는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서 우리에게 기쁨과 위로를 주셨습니다.

미움을 용서로 녹이는 불이 되시느라 늘상 고달픈 삶을 사셨습니다.

끊임없이 샘솟는 지혜의 언어는 흐르는 강물로 세상을 적셨습니다.

'복음의 기쁨'에서 강조하신 그 말씀을 오늘의 가르침으로 다시 읽어봅니다

"실재가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곧 천사 같은 순수주의, 상대주의의 독재, 공허한 미사여구, 현실과 동떨어진 목표, 반역사적 근본주의, 선의가 없는 도덕주의, 지혜가 없는 지성주의 등을 거부하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황님, 간절한 그리움으로 오늘도 내일도 다시 다시

불러보게 될 그 이름, 프란치스코 교황님

진정 ‘모든 이의 모든 것’으로 한 생을 살아오셔서

우리의 슬픔 또한 그만큼 깊고 크고 무겁습니다

희망의 순례, 희년의 문으로 들어가는 올 한 해

저는 한 번도 당신을 직접 뵈온 적이 없으나

2014년 한국에 오실 때 환영의 글을 적어 책에 싣고

『교황님의 트위터』라는 책을 번역해

이웃 친지들과 기쁘게 나누기도 했습니다

당신께서 쓰신 책을 따로 모아 둔 예쁜 서가도 있습니다.

당신이 고뇌하며 빚어낸 수많은 신앙의 가르침들

일상의 길 위에서 모범으로 보여주신 이웃 사랑과 기쁨의 표현들을

우리도 늘 잊지 않고 따라 할 수 있도록 함께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누구보다 멋진 인생의 수장이고 교장이신 당신이 안 계신 세상에서도

당신과 긴밀히 결합하여 있는 충실한 학생들이 되겠습니다. 우리는

당신과의 슬픈 이별이 슬픔을 넘어서는 거룩한 다짐으로

성인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두 손 모읍니다, 우리는

부디 안녕히 가십시오.

'Let us dream' 함께 꿈을 꾸자는 당신의 초대에

늘 기쁘게 응답하는 기쁨을 누리겠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가야 할 지복의 나라에서 편히 쉬십시오,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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