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677조원 규모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심사 절차에 돌입한 가운데 여야 대치가 심화하면서 예산정국이 시작부터 얼어붙고 있다. 농업예산을 예비심사하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도 쌀값문제 등을 두고 여야가 살얼음판 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4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 출석하지 않고 한덕수 국무총리가 예산안 시정연설문을 대독하자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비판하면서 내년도 예산안을 대대적으로 손질하겠다는 내용의 ‘2025년 예산안 평가와 심사방향’ 자료를 배포했다.
여야의 냉랭한 분위기는 농해수위에서도 감지된다. 당장 이번주로 예정됐던 심사 일정이 줄줄이 미뤄졌는데, 여기엔 최근의 쌀값문제가 자리한다.
앞서 10월25일자 전국 평균 산지 쌀값(80㎏ 기준)이 18만2900원을 기록하자 농해수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10월 한달 평균 가격이 18만5301원에 그쳐 수확기(10∼12월) 쌀값이 20만원을 돌파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면서 “정부가 ‘양곡관리법’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개정 등 민주당의 대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향후 예산안 심사 등을 보이콧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예비심사가 이뤄진다 해도 뇌관은 산적해 있다. 야당이 쌀값문제를 고리로 농업수입안정보험 등 정부의 역점 사업 예산을 감액하려고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수입안정보험은 쌀 등 농산물 가격 하락 위험으로부터 농가경영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 중인 정책보험으로,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 올해 81억원보다 25배 많은 2078억원을 반영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면 예비타당조사(예타)를 거치도록 한 ‘국가재정법’에 배치될 뿐 아니라 사업 시행 근거도 ‘농어업재해보험법’ 등에 담기지 않아 예산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민주당은 정부가 깎은 ‘채소가격안정제’ 예산 등은 원상복구하고, 무기질비료와 농사용 전기요금 등 경영비 지원을 위한 사업 예산 등은 증액하겠다는 계획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관계자는 “어려운 우리 농업 현실을 고려하더라도 예산 심사를 늦출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수입안정보험은 정부가 오래 준비한 사업인 만큼 계획대로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농해수위에서 여야 갈등이 예고됐다면 향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에선 다른 측면의 우려가 제기된다. 예산안을 실질적으로 심사하는 예결위 위원 50명 중 농해수위 소속 여당 의원이 한명도 없다는 점에서다.
한 국회 관계자는 “예결위 심사 때는 사업별로 누가 증액 요청을 했는지, 또 얼마나 많은 의원들이 증액을 요청했는지를 중요하게 보는데 농업 사정을 잘 아는 여당 의원들이 전무해 아쉽다”면서 “특히 감액을 위주로 하는 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에서 농업예산의 칼질을 방어할 여당 의원이 없는 건 뼈아픈 대목”이라고 전했다.
양석훈 기자 shakun@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