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發) 스푸트니크 쇼크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10-12

동서 냉전이 한창이던 1957년 10월 4일 소련(현 러시아)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했다. 러시아어로 ‘위성’, ‘동행자’, ‘동반자’ 등 뜻을 지닌 스푸트니크는 그날 소련 과학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대기권을 뚫고 우주로 치솟았다. 미국은 엄청난 충격에 사로잡혔다. 정부 관계자와 과학자들은 물론 일반 국민도 마치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얼어붙었다. 소련이 1949년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 핵무기 보유국이 되었다고는 하나, 미국인들은 소련을 진정한 경쟁 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우주 탐사를 비롯한 과학기술 모든 분야에서 미국이 훨씬 더 앞서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것이다.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 발사 성공으로 이 같은 확신은 하루아침에 허물어졌다. 그로 인해 생겨난 말이 바로 ‘스푸트니크 쇼크’(Sputnik Shock)다. 대오각성한 미국 정부는 이듬해인 1958년 국책 연구기관인 항공우주국(NASA·나사)을 세웠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과학 교육 과정도 확 뜯어고쳤다.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인공위성은 미국이 소련에 졌지만 달 등 우주 탐사에선 기필코 역전승을 거두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1969년 7월 21일 미 우주선 아폴로 11호를 타고 날아간 미국인이 달에 첫발을 내디디며 비로소 미국인들은 스푸트니크 충격에서 벗어났다.

요즘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중국의 미국 추격이 말 그대로 점입가경이다. 신호탄은 올해 1월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출시한 AI 모델이었다. 최소 비용만 썼는데도 AI 분야 최강자로 꼽혀 온 미국 오픈AI의 대표 모델 챗GPT와 맞먹는 성능을 과시했다. ‘이래 갖고 미국 AI 기업에 무슨 경쟁력이 있겠는가’ 하는 회의감 때문인지 엔디비아 등 AI 반도체 분야 업체들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다. 실리콘밸리의 유명 투자자 마크 앤드리슨은 딥시크를 “AI의 스푸트니크 순간”이라고 규정했다. 1950년대 중반 미국이 모르는 사이 소련의 항공우주 기술이 미국을 앞지른 것처럼 2020년대 들어 미국이 방심하는 동안 중국의 AI 기술이 미국을 추월하기 직전까지 왔다는 뜻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국의 선각자들조차 완전히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2024년 11월 미 연방의회의 초당적 기구인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이른바 ‘AI판 맨해튼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행정부가 전쟁의 판도를 바꿀 신무기인 원자폭탄 제조를 위해 인력과 예산을 아낌없이 쏟아부은 사업이 바로 맨해튼 프로젝트 아닌가. 위원회는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미국이 중국과의 첨단 기술 경쟁에서 이기려면 AI 분야에서 맨해튼 프로젝트와 같은 대규모 민관 합동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소련발(發) 스푸트니크 쇼크를 극복한 미국이 이제 중국발 스푸트니크 쇼크도 헤쳐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