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ㅜ김영갑 사진 작가 20주기 추모(상)

보슬비가 내렸다. 숙연해지는 마음으로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초입의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주황색 작은 간판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산수국이 소담하게 피어있었다. 고독한 사랑, 사랑의 기억이라는 꽃말을 가진 산수국을 보며 故 김영갑 사진작가를 떠올렸다. 오롯이 사진을 사랑했고, 제주 중산간에 들어 작품에 몰두했던 사람, 필름을 사기 위해 굶주림을 견뎌야 했던 그는 오름과 억새, 바다, 해녀 등 제주다움의 정수를 작품으로 녹여냈다.
바람난장은 짐을 푸는 곳이 무대가 된다. 2017년부터 지금까지 200여 회 공연으로 제주 곳곳의 비경이나 공간을 알리고 사람들과 소통해 왔다. 오늘은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찾은 관객들과 진정한 사람, 故 김영갑 사진작가를 추모했다.
바람난장 김정희 대표가 이생진 시인의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낭송하며 서막을 알렸다.
김영갑
-두모악 갤러리
이생진
해마다 12월 말쯤이면
성산읍 삼달리에서
김영갑이 걸어오듯 사진 달력이
걸어온다
중략
그는 2005년 5월에 떠났는데
달력은 계속해서 내게로 온다
그는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1982년부터 제주를 오가다가
제주도에 반해 1985년부터는
몸도 마음도 다 짊어지고
제주도로 들어왔다
바닷가와 중산간
한라산과 마라도
마라도에서 나는 그를 만났다
그리고 내가 구엄리에 있을 때
구엄리에서 자주봤다
그러다가 그는 루게릭병으로 갔다
사진기를 들고 다닐 수 없어서
사진 찍기를 포기하고
죽을힘을 다해서 마지막 작품으로
남겨놓은 것이
두모악 갤러리다
중략

박훈일 관장은 인사말에서 故 김영갑 작가의 20주기를 맞아 문화패 바람난장 방문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어서 김정희 대표가 정희성 시인의 <사진작가 김영갑의 서울 나들이>를 낭송했다.
사진작가 김영갑의 서울 나들이
정희성
한 십 년 비루먹으니
심 봉사처럼 눈이 뜨여
김형의 영토는 이를테면 영혼의 인화지.
단편처럼 살다가는 쪽달과
들벌레 야윈 곡소리와 현무암 쪼개는
마른번개
용눈이 오름 흐벅진 굼부리까지
성산포 파도주름으로 질끈 동여매
밤 도와
서울로 왔습니다
영지의 식솔들
억새를 베먹다 남긴 햇빛 올가미로
한나절 꼬드겨 데불고 와서는
도마뱀처럼 풀어놓았습니다.
푸들 푸들 놀라는 사람이
오히려 없어
그가 참 편안히 웃다가
밤 도와
제주로 내려갔습니다.

시어들만 봐도 ‘김형의 영토’가 보인다. 김형의 동선이 읽어지고 편안히 웃는 맑은 영혼이 인화되어 나오는 것 같다. 오름, 굼부리, 성산포, 파도, 억새는 김형의 피사체였다. 카메라 하나 달랑 메고 누볐던 제주, 제주인보다 더 제주다운 것들에 매료되어 제주의 ‘외로움과 평화’를 읽어내고 염원했던 故 김영갑 사진작가, 정희성 시인의 시에 마음이 젖어 들었다.
강상훈 세이레아트센터 대표가 이춘호 시인의 <빙체>를 낭송했다. 이어서 이천희 성악가가 허림 시, 윤학준 곡 ‘마중’을 노래했다.
마중
허림 시, 윤학준 곡
사랑이 너무 멀어
올 수 없다면 내가 갈게
말 한마디 그리운 저녁
얼굴 마주하고 앉아
그대 꿈 가만가만
들어주고 내 사랑 들려주며
그립다는 것은 오래전
잃어버린 향기가 아닐까
사는 게 무언지
하무뭇하니 그리워지는 날에는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
그립다는 것은 오래전
잃어버린 향기가 아닐까
사는 게 무언지 하무뭇하니
그리워지는 날에는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
꽃으로서 있을게

오늘 같은 날 어울리는 가사와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故 김영갑 사진작가를 잊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들과 그리워하며 추모하는 예술인들이 어우러진 만남의 장, 이곳은 사람 향기로 가득했다. ‘그립다는 것은 오래전 잃어버린 향기가 아닐까’ 꽃으로 서 있으면 향기로 올 것만 같은 사람, 산수국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그의 포토 에세이집 《그 섬에 내가 있었네》처럼 故 김영갑 사진작가는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박수 하며 앵콜을 외치는 관객 속에서 공연이 무르익어 갔다.
▲글=김도경(시인, 동화작가)
▲사회=김정희▲시낭송=강상훈▲성악=이천희
▲시 낭송=이정아·장순자 ▲기타 음향=김종구
▲사진=이정아 ▲총감독=김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