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검사만 14번 받고 떠난 유엽군의 아버지가 백서를 쓰는 이유

2025-01-19

20일은 모두의 일상을 멈춰세웠던 코로나19 감염환자가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지 5년째 되는 날이다. 코로나에 대한 정보를 하나 둘 알게 되면서 대부분 사람들은 일상을 회복했지만, 여전히 그때를 벗어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2020년 3월, 17세 나이로 목숨을 잃은 고 정유엽군의 아버지 정성재씨(58)는 “달라진 건 없어요. 유엽이 방도, 응급실 뺑뺑이도 그대로죠”라고 말했다.

유엽이가 떠난 지 5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13일 방문한 경북 경산 유엽이의 집은 아직 5년 전에 멈춰있다. 유엽이가 떠난 뒤 늘어난 세간살이는 유엽이 엄마가 아들을 생각하며 빚은 ‘모자상’ 도자기와 여행 사진을 떼다 만든 영정사진 뿐이다.

유엽이는 2020년 3월 18일 코로나19 사태 초기 코로나19 감염 의심 환자로 분류돼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중증 폐렴으로 숨졌다.

2020년 3월 10일 마스크 5부제 시행 둘째 날은 비가 내렸다. 유엽이는 빗길에 마스크를 구하러 종일 발품을 팔았다. 그러다 오후 5시쯤 한 동네 약국 앞에 줄에 섰다. 선착순으로 판다는 마스크를 사기 위해 꼬박 한 시간을 비를 맞으며 기다렸다. 막 항암 치료가 끝난 감염병 ‘고위험군’ 아버지에게는 마스크가 필요했다. 유엽이는 마스크 두 장을 손에 넣었다.

유엽이는 그날 밤부터 고열에 시달렸다. 방역 지침에 따라 병원을 가지 않았다. 약국 감기약을 사다 먹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3월 12일, 열이 40도를 오르 내렸다. 경산중앙병원은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음성이 나와야 치료할 수 있다”며 유엽이를 돌려보냈다. 하필 선별진료소가 문을 닫아 검사를 받지 못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해열제와 항생제는 효과가 없었다. 고열과 구토에 시달렸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병원에서 열이 나면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 힘겹게 물을 끼얹었다.

다음날 다시 병원을 찾았지만 이번에도 병원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코로나19 검사와 폐 엑스레이 검사를 마치자 병원은 “폐에 음영이 보인다”며 “집에서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기다리라”고 했다.

집에 온 뒤 몸 상태는 전보다 악화됐다. 1339(질병관리청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더니 경산보건소로 연결을 해줬다. 보건소는 역시 “코로나19 검사결과가 나오지 않아 해줄 게 없다”고 했다.

그날 오후 다시 방문한 경산중앙병원에서 만난 의사는 대뜸 유엽이 상태가 심각하다며 소견서를 써줄 테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아버지 정씨의 차에 실려 영남대병원으로 간 유엽이는 3월 18일 영남대병원 음압병실에서 숨을 거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가족들은 끝내 병원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꼬박 엿새 동안 차 안에서 유엽이 소식을 기다리다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다.

“유엽이를 보내고 차를 바꿨어요. 2002년식 구형 싼타페에서 외제차로. 이상하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만약 내 차가 낡고 추레하지 않았다면, 더 비싸고 좋은 차였다면 병원 안으로 들어가게 해주지 않았을까.” 응급차 이송을 거부 당해 정씨 차로 영남대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유엽이는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국가는 유엽이에게 응급차조차 내주지 않았다. 유엽이는 코로나19 검사만 14번 받다 끝내 목숨을 잃었다.유엽이가 사경을 헤맬 때 아버지는 무력했다. 유엽이가 떠난 뒤 정 씨는 그 순간을 떠올리며 벌거벗은 사내가 전화기를 쥐고 있는 조각을 빚었다. 작품 속 사내는 병원 차단막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때 응급실 뺑뺑이를 돌면서도 할 수 있는 건 전화 밖에 없었어요. 병원은 들어갈 수 없었죠. 병원에서 거부 당하고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냥 그 앞에서 벌거벗고 있는 거에요.”

정 씨는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각지대가 어디서 왜 생겨났는지 알고 싶었다. 정씨는 5년 간 아들의 죽음을 이야기했다. 청와대, 국가인권위원회, 정치권 가리지 않았다. 탄원서를 내고 진정을 제기하며 토론회 참석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누구도 정씨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정부에 요구한 진상조사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고, 병원은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어렵게 마주한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안타깝지만, 유엽이 사건은 단건이고, 하나의 사례로는 부족하다”고 선을 그었다.

누군가는 그를 자랑스런 ‘K방역’의 위상에 흠집을 내는 훼방꾼이라고 불렀다. 2021년 유엽이 1주기에 경북 경산에서 청와대까지 약 380km 거리를 도보행진 할 때, 토론회에서 목소리를 낼 때, 여지없이 악플이 쏟아졌다.

“언제가 참여연대 토론회를 마치고, 인터넷에 토론회 기사가 떴어요. 그런데 기사 밑에 악플이 3000개가 넘게 달린 거에요. 그걸 보고 조카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기사 댓글 보지 말라고. 댓글 대부분이 악플이었어요. 왜 대구 경북에서 생긴일을 갖고 그러느냐. 세계적으로 K방역 잘하고 있는 데 왜 그쪽 동네에서 고추가루 뿌리냐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무덤덤했다. 다만 정부가 나서 K방역을 홍보할 때 만큼은 견디기 어렵다고 했다.

정 씨는 “정부가 K방역, K방역 이럴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며 “병원에서 쫓겨나 밖에서 돌아가신 분들, 제대로 된 치료 받지 못하고 사망한 사람들. K방역에 가려진 이면과 어두운 부분은 싹 가리고 만든 K방역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유엽이가 의료 공백을 메우는 발판이 되고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명분이 되길 바랐다.

“유엽이의 죽음은 그저 한 개인의 사망 사건이 아니에요. 공공과 공익에 대한 문제입니다. 공공의료 시스템이 체계를 갖췄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에요. 유엽이 사망 사건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재발하지 않도록 누구나 평등하게 치료 받을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이 필요해요. 그래서 공공의료 확대를 주장하고 있고, 공공 의료원 설립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응급실 뺑뺑이는 현재 진행형이고 경영난에 허덕이는 공공 의료원의 현실도 개선되지 못했다. 현 경산시장이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경산 의료원 설립은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달라진 게 없어요. 특히 경산 의료원은 꼭 필요한데 진척이 없습니다. 경산의료원이 생기면 영천과 청도, 경산, 세 지역을 아우를 수 있어요. 그러면 지역 주민들이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청와대까지 도보 행진하면서 김천 의료원에 갔을 때 느낀 바가 많습니다. 인구 14만명 도시에 이런 의료원이 있다는 자체도 놀랍지만, 거기 사는 어르신들이 김천 의료원을 굉장히 신뢰하고 있더라고요. 그분들은 대통령이고 시장이고 바뀌는 건 상관 않는데, 의료원이 없어질까봐. 그거 만큼은 겁난다고 하더군요.”

정씨는 암 환자다. 5년 새 암세포는 정 씨의 폐까지 전이됐다. 병원은 정씨에게 남은 시간은 4년 정도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지치지 않는다며 싸움을 멈출 생각이 없다고 했다. 2023년 1월 16일 경산중앙병원·영남대병원·경산시·중앙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소송은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아 2년이 지난 현재 1심 2차 변론에 그치고 있다.

“인터뷰를 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지만 바뀐건 없어요. 그래도 힘은 빠지지 않았어요. 계속 싸워야지요. 누구나 같은 일을 당할 수 있어요. 유엽의 죽음을 사회에 보탬이 되도록 승화시키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요즘 그의 일상은 단조롭다. 20년 넘게 운영하던 수학 학원도 지난해 10월 정리했다. 힘겨운 암 치료를 마치고 틈이 나면 글을 쓴다. ‘정유엽 백서’다. 유엽이를 통해 코로나19와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짚는 책이다. 진도는 더디지만 그래도 쓴다. 유엽이의 5주기 추도식도 준비중이다.

“기록을 남겨야죠. 유엽이의 죽음을 기록한 책을 통해 서민의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감대가 생기고, 또 불행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는다면 저로서는 더할 수 없는 행복일 거에요. 아무리 큰일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 속에서 사라지잖아요. 기억이 소멸되기 전에 유엽이 책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기록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가끔 집사람하고 얘기해요. 나중에 우리 유엽이 얘기가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같은 프로그램에 나올 수 있지 않알까. 우리가 떠난 뒤에라도 한번 쯤은 역사에서 회자될 수 있지 않을까. 그때를 위해서라도 유엽이 죽음에 대한 기록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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