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연휴 해외여행 유의사항
‘중국發 바이러스’ 괴담 불신 여전
WHO, HMPV 감염병 계절적 유행 판단
백신·치료제 없어 위생 지켜 예방해야
감염력·치명률 낮아 과도한 우려 금물
예방접종 공백이 만든 ‘홍역 구멍’
2024년 31만명 발병… 전파력 강한 질병
1968~1997년 출생자는 집단면역 없어
접종 이전 유아도 감염 노출 가능성 커
# 30대 여성 권모씨는 지난해 말 가족과 동남아시아 지역에 여행 갔다가 크게 고생했다. 가족이 전부 장염에 걸려 여행은커녕 호텔과 병원 침대에만 누워 있었던 것이다. 길거리 음식을 잘 못 먹은 게 화근이었다. 권씨는 “곧 괜찮아질 거란 생각으로 참다가 결국 막판에 현지 병원에 갔고, 병원비만 200만원 넘게 나왔다”며 “즐거워야 할 해외여행이 악몽이 됐다”고 말했다.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길어진 설 연휴기간 해외여행을 계획한 사람들은 건강관리에 각별히 신경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독감(인플루엔자)처럼 해외에서도 다양한 ‘감염 질환’이 유행하고 있는 만큼 미리 현지 상황을 숙지하고 준비한 뒤 출국해야 낭패 보는 일을 최소화할 수 있다.
과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보듯 방역은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란 점에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중국바이러스’ 괴담의 주인공, ‘HMPV’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중국 병원 마비’, ‘중국발 바이러스’ 등의 괴담이 잇따른 ‘인간 메타뉴모바이러스(Human Metapneumovirus·HMPV)’가 대표적이다. 질병관리청이 발빠르게 “괴담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있다.
현재 해외에서 HMPV가 유행 중인 나라는 미국, 중국, 영국 등이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14주차(3월31일∼4월 6일)에 8.11%로 정점을 찍고 감소 추세를 보였다가 12월 이후 상승세다. 다만 세계보건기구(WHO)는 HMPV 검출률 증가를 호흡기 감염병의 계절적 유행으로 판단하고 있다. 국내에선 2014년부터 제4급 급성호흡기감염증 표본감시 대상으로 지정된 바 있다. ‘신종’ 바이러스가 아닐뿐더러 중증·위험도에서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HMPV는 대부분 호흡기 바이러스처럼 호흡기 비말(입에서 나오는 작은 물방울), 감염자의 분비물, 오염된 물건 접촉을 통해 전파된다. 감염 시 발열, 기침, 가래, 콧물, 코막힘 등 감기와 유사한 증세를 보이고 심한 경우 세기관지염, 폐렴 등의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 예방백신이나 치료제가 따로 없어서 개인위생을 통한 예방이 최고다.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HMPV는 다양한 호흡기 바이러스 중 하나”라며 “코로나19 경험 때문에 중국발 감염병이라는 심리적인 이유로 공포가 크지만 감염력이나 치명률 등에서 특별히 우려할 만한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엄 교수는 “다만 독감 등 호흡기질환이 다 그렇듯 어린이와 노약자, 면역저하자 등 취약계층은 주의해야 한다”며 “감기 수준이라고 쉽게 생각하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과도한 우려를 확산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30대 아빠와 1세 미만 영아 자녀 ‘홍역 구멍’
오히려 해외여행 시 더 경계해야 할 질병은 홍역이다. 홍역은 2급 법정 감염병이다. 홍역은 전파력이 매우 강한 호흡기질환이다. 감염력은 보통 감염자 한 명이 평균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감염자 수를 의미하는 ‘R0(기본 재생산수)’로 측정하는데, 홍역의 R0는 12∼18이다. 이는 백일해(12∼17)와 비슷하고, 코로나19 초기 변이(2∼3), 오미크론 변이(8∼10) 수준보다 훨씬 높다.
WHO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적으로 약 31만명의 홍역 환자가 발생했다. 유럽(10만4849명)과 중동(8만8748명), 동남아시아(3만2838명) 등에서 많이 나왔다. 홍역은 백신(MMR·홍역·유행성이하선염·풍진) 접종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문제는 백신 접종 전 영유아와 1970∼1990년대에 태어난 30∼50대다. 1968년 이전 출생자는 백신이 아니라 실제 감염을 통해 홍역에 대한 면역이 대부분 형성됐다.
현재 영유아 국가 필수예방접종으로 MMR 접종이 시작된 것은 1983년이고, 2회 접종은 1997년에야 이뤄졌다. 1968∼1997년 태어난 사람들의 집단면역이 비는 셈이다. 유아의 경우 12~15개월에 한 번, 4~6살에 추가 접종하기 때문에 만 1세 이전 유아의 경우 해외여행 시 홍역에 노출될 수 있다.
엄 교수는 “홍역 등에 대한 영유아 국가 필수예방접종은 만 4세 정도가 돼야 마무리된다”며 “아직 나이가 어려 백신 접종을 마치지 않은 영유아가 감염병 유행 지역으로 여행가는 건 피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어 “불가피하게 가야 할 경우 최소한 1차 접종이라도 마친 뒤로 여행 일정을 미루거나 현지에서 위생에 철저히 신경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동남아 여행 시 ‘뎅기열’ 주의는 기본이다. 이집트숲모기가 주요 매개체인 뎅기열은 매년 1억명 이상의 환자가 나오는데 백신과 치료제가 없다. 치명률은 보통 0.1∼2% 수준이고, 대부분은 완전히 회복하지만 뎅기출혈열, 급성 뎅기열 쇼크 증후군 등의 합병증이 나타날 경우 치명률은 20∼50%까지 올라갈 수 있다.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모기 기피제 등을 챙기면 좋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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