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법'에서도 강렬한 진보…의대 때려치우고 법대 간 정계선

2025-04-02

“재판관 1인(재판관 정계선)의 인용 의견은 (중략) 피청구인의 헌법과 법률 위반이 인정되고 그 위반의 정도가 피청구인의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하다는 것이다.”

2024년 3월 24일 헌법재판소가 배포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심판 사건 보도자료. 기각과 각하 의견을 낸 7인의 이름이 지나가고 그의 차례가 되자 만인이 놀랐다. 유일하게 ‘완전 인용’ 의견을 낸 정계선 헌법재판관이 그다. 그는 앞서 1월 23일의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심판 사건에서도 4인의 인용파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진보 성향 재판관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걸맞은 결론이었다.

과연 정 재판관은 4일 있을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에서도 같은 입장에 설까. 그리고 정 재판관과 함께 이 위원장 사건에서 인용 판단, 즉 “이 위원장을 파면해야 한다”고 밝힌 진보파 동료 문형배·이미선·정정미 재판관은 메인 이벤트에서 어떤 입장에 설까. 하루 앞으로 다가온 헌재 선고를 차분히 기다리면서 이들 4인의 면면을 다시 살펴보자.

알 파치노가 목청을 돋웠다. 1987년 서울대 후생관의 영화 상영관에 “정의란 무엇이냐”는 그의 호소가 울려퍼졌다. 그 호소는 몇 안 되는 관객과 함께 그 영화, ‘모두에게 정의를’(...And Justice for All)를 보던 한 서울대 의대생의 가슴에 정확하게 가 닿았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극 중 변호사로 등장했던 알 파치노의 그 대사는 그 의대생의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그리고 새로운 질문이 솟아났다.

남들은 가지 못해 안달이던 서울대 의대를, 그는 과감히 그만뒀다. 그는 다시 공부를 시작해 1988년 서울대 법대에 재입학했다. ‘정의’와 ‘학생운동’이 이음동의어였던 시절, 그는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세상이 조금씩 변하고, 소련과 동유럽권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으로 학생운동이 하나의 장벽에 부딪쳤을 때 그의 머릿속에는 책 한 권이 떠올랐다. 고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이었다.

조 변호사를 전범 삼아 뒤늦게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한 그는 3년 만에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했다. 정해진 수순대로 법관이 된 그는 30년 가까이 판사로 봉직한 결과 최고 영예인 헌법재판관이 됐다.

그리고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탄핵당한 대통령을 상대로 일생의 화두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법적 판단을 내리게 됐다. 그는 정계선(56) 헌법재판관이다.

후술하겠지만 공교롭게도 그는 이미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을 상대로 중형을 선고한 이력이 있다.

정 재판관의 초년시절은 주경야독과 학생운동으로 특징지어진다.

충북 충주가 고향인 정 재판관은 충주여고를 수석 졸업한 뒤 주변의 조언에 따라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의 신입생 시절은 풍족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충주비료’에서 일하면서 가족을 먹여살렸던 아버지가 회사의 통폐합 및 민영화에 따라 실직하면서다. 모친이 충주에서 작은 한복점을 운영하면서 뒷바라지했지만 정 재판관은 대학 생활 중 많은 시간을 아르바이트에 할애해야 했다.

거기에 사회 현실에 대한 고민이 덮쳐왔다. 정 재판관이 처음부터 운동권은 아니었다. 전국이 민주화 운동으로 들썩였던 1987년에도 의대 1학년생 정계선은 선뜻 아스팔트를 밟지 못했다. 그는 인사청문회 때 다음과 같이 당시를 회고했다.

거기서 만난 영화 ‘모두에게 정의를’이 그의 인생 행로를 바꿨다. 악덕 피고인을 변호해야 했던 변호사 아서 커크랜드(알 파치노)의 양심선언이 뼈대를 이루는 그 영화를 보고 그는 법으로 전공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1988년 서울대 법대에 재입학한 그는 과 내 동아리였던 노동법연구회에 들어가면서 운동권 학생이 됐다. 고법 판사 A의 설명이다.

정 재판관은 아주 강한 진보 성향을 갖고 있죠. 서울대 PD 계열로, 아주 열심히 학생운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정 재판관도 고민의 기로에 섰다. 계속 운동을 할 것이냐, 아니면 제도권으로 들어갈 것이냐. 그는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법부 관계자 B의 설명이다.

학생운동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휴학과 복학을 반복했던 정 재판관은 1992년 7월이 돼서야 사시 준비를 본격적으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대 의대와 법대에 연거푸 합격했던 그의 두뇌는 여전했다. 정 재판관은 사시 준비를 시작한 지 3년 만인 1995년 제37회 사시에 합격했다. 그것도 수석이었다.

지난해 12월 23일 인사청문회에서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 재판관에게 “공부를 정말 잘했다”고 칭찬하면서 그걸 한마디로 요약했다.

정 재판관이 사시 합격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내놓았던 일성 역시 그다웠다.

한번 손에 쥔 수석 타이틀은 2년 뒤 사법연수원(27기) 수료 때도 유효했다. 연수원 수석이 서울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후 그는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고법 판사, 울산지법과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서울서부지법원장 등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가 남긴 최초 타이틀도 적지 않다. 정 재판관은 울산지법의 첫 여성 형사합의부장이었고 여성 최초로 공직비리 뇌물 등 부패 사건 전담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장이 됐다.

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장 시절인 2018년 10월 5일 그는 자신을 세상에 뚜렷이 각인시킨 판결을 하나 내리게 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징역 15년을 선고한 1심 판결이 그것이다. 정 재판관은 당시 TV로 생중계됐던 선고 공판에서 한 시간가량 판결 요지를 또박또박 읽어내려갔다. 그러고는 선고 막판 이 전 대통령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지금 되돌아볼 때 특히 눈에 띄는 이력은 헌재 파견 경력이다. 정 재판관은 2010년부터 2년간 헌법재판소에서 파견 연구관으로 근무했다. 그는 “헌재에서 일본군 위안부 관련 한일협정 사건을 연구했다”고 밝혔다.

당시 헌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원폭 피해자들이 제기한 위헌 소송이 계류돼 있었다. “피해자들이 일본 법원에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1965년 체결한 한·일협정을 이유로 번번이 패소하고 있는데도 정부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는 취지의 소송이었다. 헌재는 이에 대해 2011년 8월 “정부가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은 건 행정부작위에 해당하며 위헌”이라고 결론내렸다.

정 재판관은 “당시 조약에 대한 무지를 절감하고 2011년 말 막 법원 내에 설립된 국제인권법연구회에 가입하게 됐다”고 인사청문회에서 회고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그가 가입한 각종 모임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는 진보 성향 판사들의 모임으로는 쌍두마차 격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모두 가입했다. 특히 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는 인사모라는 소모임에도 가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직 판사인 C의 전언이다.

정 재판관은 이 밖에 헌법연구회, 외국사법제도연구회, 현대사회와성범죄연구회 등 다양한 모임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물론 정 재판관은 진보 모임 활동 행적에 대한 편견을 거부한다. 그는 인사청문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타인이 규정하는 데 대해 거부감을 표했고, 그 성향 또는 사건 관계자와의 친소 관계가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강하게 부인했다.

인사청문회장에서는 그걸 설명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청문회장을 웃음바다로 만드는 일도 있었다.

김한규 의원: 후보자가 서울대 법대 나오셨고, 배우자(황필규 변호사)도 서울대 법대 나오셨고, 배우자의 형(황철규 전 부산고검장)도 서울대 법대 나오신 검사 출신이세요. 윤석열 대통령하고 같은 학교 나오시고 이렇게 연이 있는데 윤 대통령한테 편향적으로 유리할 가능성은 없습니까?

정 재판관: 저희 남편이 (윤 대통령 모교인) 충암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일동 폭소)

정 재판관의 남편인 황 변호사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일하고 있다. 이곳은 수임료를 받지 않고 후원자들의 후원금만으로 운영되는 공익재단이다. 최근 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서 국회 측 소추 대리인단 공동대표를 맡은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이 이 공익재단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재판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 재판관은 청문회장에서 “김 전 재판관은 비상근 무보수 명예직 이사장이며 김 전 재판관이 제 남편의 인사권을 갖고 있거나, 급여를 주는 것도 아니라 이해관계 충돌이 있을 여지는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정치적 성향 또는 인간적 친소 관계와 판결 간의 연관관계에 대한 선입견을 차치하더라도 정 재판관이 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서 탄핵 찬성 입장에 설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C는 이런 견해를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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