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인상은 ‘애처가’였다.
지난 2월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열린 부산에서 처음 인사를 나눴던 그는 ‘아내 따라 탁구에 빠졌다’는 표현이 잘 어울렸다. 아내가 선수들의 활약상에 펄쩍 뛰어오르며 기뻐하면, 옆자리에서 슬그머니 미소를 짓던 인물이었다.
그랬던 그가 탁구계 수장이 됐다. 지난 11월 6일 제26대 대한탁구협회장 선거에서 당선된 이태성 세아홀딩스 대표이사(46)다.
이 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지금은 문을 닫은 한 탁구장이 첫 출발이다. 평생 음악만 공부했던 아내가 한 방송에서 현정화 한국마사회 감독이 현역 선수인 서효원을 상대로 탁구를 치는 것을 보고 갑자기 탁구에 빠지더니 탁구협회 부회장이 됐다. 그리고 아내 따라 탁구를 다시 시작한 난 회장이 됐다. 우리 부부와 탁구를 치던 분들도 놀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2년 탁구 꿈나무를 키우는 세아아카데미를 설립한 이 회장은 올해 해체 위기에 놓였던 KGC인삼공사 탁구단까지 인수해 탁구계의 키다리 아저씨로 불렸다. 이젠 탁구협회장으로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이 회장은 “아직 모르는 게 많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두 가지는 자신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재정이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탁구협회 현실을 감안할 때 그의 존재 자체가 큰 뒷배다. 올해 탁구협회 부회장직을 내려놓은 아내 채문선 탈리다쿰 대표이사(38)를 통해 애경그룹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다. 채 대표는 애경그룹 3세다.
이 회장의 첫 행보도 후원사 계약이었다.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BNK금융그룹을 끌어 안았다. 앞으로는 계약 만료가 다가오는 기존 스폰서들과 재계약, 그리고 새로운 스폰서 발굴 등이 숙제다.
이 회장은 “BNK금융그룹과 협약 자체는 내가 부임하기 전에 결정된 사안”이라면서도 “(내)회사 일을 위해 남에게 뭔가를 부탁하기는 싫다. 내 이익을 위해 빚을 지는 것 같다. 그런데 탁구협회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좋은 일을 해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 당장 내가 몸을 담은 세아그룹도, 아내의 집안인 애경그룹도 이사회를 찾아가 한 명 한 명 설득해야 한다. 기업인에게 회장을 맡긴 탁구인들의 바람대로 재정 확보에 힘을 기울이는 게 내 일”이라고 말했다.
둘째는 소통이다. 탁구인이 아니라 그 어떤 이해 관계에서도 자유롭다. 이 회장은 “때로는 탁구를 잘 모른다는 부분이 이점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난 사실 외부인이라 선입견도 없고, 특정인과 친분도 없다. 앞으로 최소한 반 년 정도는 탁구계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부하려고 한다. 전임 집행부의 좋은 정책은 계승하고, 부족한 부분은 내가 채우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인답게 재정 확보를 우선시했던 그도 성적은 고민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만리장성’ 중국을 따라갈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다.
이 회장은 최근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막을 내린 국제탁구연맹(ITTF) 혼성 팀 월드컵을 떠올렸다. 3박4일간 현장을 찾은 그는 결승에서 한국에 패배를 안긴 중국과 실력차가 아닌 인프라에 놀랐다. 이 회장은 “부산세계선수권대회에 쓴 예산이 150억원이었다. 혼성 팀 월드컵은 그 두 배인 300억원이더라. 중국은 후원사만 10개, 그리고 후원할 기회를 기다리는 기업만 30개였다. 중국 탁구의 위상을 보니 앞으로 내가 할 일이 뭔지 알겠더라”고 말했다.
언젠가 한국 탁구가 다시 올림픽 금메달을 따낼 수 있는 로드맵도 그려가고 있다. 엘리트 저변 확대를 위해 상비군을 10명에서 20명으로 늘리면서 지원을 늘려갈 생각이다. 이 회장은 “김택수 유남규 현정화 같은 스타가 계속 나올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다행히 신유빈이라는 새 스타가 나타났다. 제2의 신유빈이 계속 나올 수 있도록 돕겠다. 그러면 한국 탁구도 다시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