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이상 ‘절반’은 이미 인스타그램 사용자
‘디지털 독립’을 바라는 사춘기 또래 문화
플랫폼 기업들, ‘늦깎이’ 청소년 보호 장치 마련 개선돼야
디지털 양육, 감시보다 동행
[디지털포스트(PC사랑)=슬롯]
옆 동에 사는 지인의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다. 그가 가끔 육아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다. 우리 집 첫째와 나이 차가 많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 만날 세계’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학기 초 그의 고민은 인스타그램이었다. 아이가 인스타그램을 하게 해달라고 졸랐다고 했다. 이유를 들어보니, 이미 대부분의 아이들이 인스타그램을 사용하고 있었고, 특히 아이들이 DM(Direct Message: SNS에 포함된 메신저 기능) 기능을 통해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그런 분위기는 올해만의 일이 아니라, 작년에도 그랬다고 한다. 나는 꽤 충격을 받았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이 인스타그램을 한다고?
초등학교 4학년 이상 ‘절반’은 이미 인스타그램 사용자
실제로 인스타그램을 이용하는 초등학생들은 생각보다 많다. 통계를 보면 그 사실이 분명해진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2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청소년 2,500명 중 78%(1,952명)가 SNS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 중 인스타그램 이용자는 81.6%에 달했고, 이를 전체 청소년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63.7%가 인스타그램을 사용 중인 셈이다.
이 조사는 2022년에 이뤄졌지만, 이후 3년간 국내 인스타그램 이용자 수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또한 학년이 높을수록 SNS를 포함한 미디어 이용률이 높아지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러한 흐름을 감안하면,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의 인스타그램 이용 비율은 절반을 훌쩍 넘겼을 가능성이 크다.

해외도 사정은 비슷해 보인다. 비영리단체 ‘쏜’(THORN)이 베넨슨 스트래티지 그룹과 함께 2020년 미국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만 13세 이하 어린이 중 40%는 이미 인스타그램을 사용하고 있었다. 쏜은 디지털 세계의 성적인 위험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단체다.
‘디지털 독립’을 바라는 사춘기 또래 문화
사춘기 아이들은 누구나 비밀스럽고 독립적인 소통을 갈망한다. 부모의 시선이나 통제를 벗어나 친구들과만 나누는 이야기, 감정, 속내가 필요하다.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또래와의 관계는 단순한 우정을 넘어서고, 그 안에서 자율성과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욕구가 강하게 작동한다. 예전처럼 교실 끝자락에서 속닥이며 수첩에 서로의 얘기를 적어주던 ‘교환일기’가 그랬듯, 자신들만의 닫힌 공간은 늘 존재해왔다. 다만, 시대가 바뀌며 그 통로가 디지털로 옮겨갔을 뿐이다.
지금 아이들에게 그 교환일기의 자리는 인스타그램 DM이 대신하고 있다. 초등 고학년 아이들이 인스타그램에서 친구들과 사적인 대화를 주고받고, 단체 대화를 만들고, 특정 친구들과만 조용히 소통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공개된 피드보다 비공개 메시지를 더 선호하는 건, 자신들의 관계를 외부로부터 보호하려는 감각이 반영된 결과다.
어떤 아이에게는 인스타그램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나만의 방’, 혹은 ‘친구와의 비밀 통로’인 셈이다. 이 닫힌 디지털 공간에서 아이들은 또래 안에서 소속감을 확인하고, 신중하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며, 점차 독립적인 사회적 존재로 성장해간다.
옆 동에 사는 지인도 결국 아이에게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줬다. 대신, 인스타그램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한 부모의 설명을 잘 듣겠다는 약속을 먼저 받아냈다. 지인이 며칠 동안 관찰해 본 결과, 아이의 친구들이 인스타그램을 이용하는 방식이 처음 걱정했던 것만큼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피드에 개인정보를 노출하거나 얼굴 사진을 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프로필 사진도 설정하지 않은 ‘알 계정’ 형태로 DM만 사용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설명이다.
인스타그램 청소년 보호 조치 강화중이지만, 여전히 현실과 괴리
인스타그램은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청소년 보호 정책을 점차 강화해왔다. 2021년부터 만 14~17세 이용자의 계정은 기본적으로 ‘비공개’로 설정되며, 낯선 사용자로부터 DM을 받지 않도록 하는 기능이 추가됐다. 2024년에는 ‘청소년 계정(Teen account)’ 기능을 도입하고, 부모가 자녀 계정을 감독할 수 있는 ‘부모 통제 센터(Parental Supervision)’ 기능도 함께 도입했다.
청소년 계정은 한국에서는 만 14~18세 자녀에 대해 2025년 상반기에 적용됐다. 부모 통제 센터에서 보호자는 최근 7일간 자녀의 대화 상대, 하루 이용 시간 등을 확인하고 이용 시간을 제한할 수 있게 됐다. 부모가 메시지 내용을 직접 볼 수는 없어서 여전히 아이들의 프라이버시와 독립성은 존중된다.

플랫폼 기업들, ‘늦깎이’ 청소년 보호 장치 마련 개선돼야
이렇게 기업에서 도입한 조치들은 아이들 입장에서도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조치다. 계정 설정이 기본적으로 비공개이고, 보호자와의 연결이 앱 내에서 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구조라 어색하거나 과잉 개입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너무 늦게 왔다는 점이다. 쏜(THORN)이 2020년에 발표한 조사에서는 이미 만 13세 이하 어린이 중 40%가 인스타그램을 사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들은 훨씬 이전부터 플랫폼 안에 있었지만, 보호 장치는 한참 뒤늦게 따라온 셈이다. 지금이라도 기업이 더욱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개입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미성년자 보호는 부모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둘 수 없는, 플랫폼의 공동 책임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 지점에서 약관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드러난다. 인스타그램은 만 14세 미만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나이를 속여 가입하는 아이들이 많다. 통계적으로도 초등 고학년의 인스타그램 사용자는 상당히 많다. 약관은 존재하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막을 장치는 없다.

디지털 양육, 감시보다 동행
이 지점에서 부모의 디지털 리터러시 수준은 결정적인 변수다. 어떤 부모는 인스타그램의 기능과 위험 요소를 파악하고, 자녀와 함께 사용 규칙을 정한다. 반면 어떤 부모는 자녀가 어떤 계정을 만들었는지, 어떤 콘텐츠를 보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심지어는 가입 자체를 쉽게 하기 위해 자녀의 나이를 18세나 19세로 설정해 주는 경우도 있다. 같은 플랫폼이지만 아이들이 겪는 미디어 환경은 천차만별이다.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모의 이해도에 따라 그 환경의 질은 극명하게 갈린다.
초등학생의 인스타그램 사용은 단순히 ‘허락할까 말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사용하는 기술 환경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안전하게 관계를 맺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도록 도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하다. 단순한 통제나 제한이 아니라, 함께 기준을 만들고 스스로를 점검하는 과정이 동반돼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양육자는 감시자가 아니라 동반자여야 한다. 아이의 온라인 활동에 관심을 갖고, 때로는 질문하고, 때로는 대화하며 함께 자라야 한다. 그래야 아이도 디지털 환경에서 자신을 지키고, 타인을 존중할 줄 아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 아이의 계정을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계정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 기사는 digitalpeep님의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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