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깊은 후유증에 시달렸다. 미국은 서유럽의 황폐해진 인프라를 재건하고 경제를 회복시켜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대대적인 지원에 나섰다. 1947년부터 4년 동안 총 130억 달러(현재 가치로 약 180조 원) 규모의 지원을 했다. 서유럽 국가들은 당시 미 국무장관 조지 마셜의 이름을 딴 ‘마셜 플랜’이라고 불리는 유럽 부흥 계획을 통해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양측의 협력은 1949년 북미·유럽의 군사동맹 기구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창설로 이어졌다. 현재 32개 회원국을 둔 나토는 ‘회원국에 대한 무력 공격을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러시아의 침략을 받은 우크라이나가 종전의 전제 조건으로 나토 가입을 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미국·유럽의 긴밀한 동맹을 뜻하는 ‘대서양 동맹’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뒤 심각한 균열을 맞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무역에서 세계 모든 나라에 사기를 당해왔고, 나토에도 사기를 당했다”고 유럽 국가들을 직격했다. 미군의 해외파병을 ‘십자군 전쟁’에 비유하며 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안보 지원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또 6월 1일부터 유럽연합(EU) 국가들에 5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가 이를 7월 9일까지 유예할 것이라고 밝혔다. 심지어 트럼프는 덴마크령인 그린란드에 대한 영토 야욕을 지속적으로 드러내는 등 동맹국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EU가 2030년까지 독자 방위 역량을 대폭 강화하기 위한 ‘대비 태세 2030’ 계획을 수립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EU와 영국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5년 만에 안보·경제 등에서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고, 오직 이해관계만 있을 뿐”이라며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강조했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도 국익과 안보를 지키려면 한미 동맹을 강화하면서 자강 능력을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