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얼굴로 산 까닭
“노숙인 쉼터 생활 상담, 신문·우유배달, 대리운전, 노래방 알바,
마트 상품 진열, 목욕탕 세신사 보조도 했고 축구 심판도 했죠.”
이는 한국에 12명뿐인 K리그 축구 심판 정동식이 살아온 삶이다.
그는 한때 일곱 가지 일을 한 번에 했으니 일곱 얼굴로 산 셈이다.
어린 시절 축구 선수를 꿈꿨던 그가 축구 심판이 된 이유는 뭘까?
“축구 선수였던 대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했어요.
그때 달랑 배낭 하나, 호주머니엔 2000원이 있었습니다.
마침 노숙인 쉼터에서 일하며 살 수 있게 되어 학업과 병행했어요.
당시 죽도록 축구를 해왔지만, 제 실력이 모자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축구를 그만두고 한 2년간 축구장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인생 절반을 함께한 축구를 떼어놓기가 어렵더라고요.
선수로 경기장을 누비진 못하지만, 심판으로 경기장을 누벼보기로 했죠.”
결국 그는 축구 심판을 하기 위해 한때 일곱 얼굴로 산 터였다.
그는 자격증 딴 지 12년 만에 K리그 심판이 되고 꽤 유명 인사가 됐다.
2022년 슈퍼매치 심판을 뛰고, 올해의 주심상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축구선수 김민재와 닮은꼴로 축구 팬의 관심을 끌 정도가 된 터였다.
그런데 그는 심판으로 꽤 알려졌지만, 현재 환경공무관을 병행하고 있다.
서초구 소속으로 헌릉로, 매헌로 일대를 청소하는 기동대 소속인 게다.
그가 축구 심판의 꿈을 이뤘는데도 환경공무관으로 일하는 이유는 뭘까?
“심판은 좋아하는 일이지만, 제 아이 셋을 키우기엔 버겁습니다.
제가 홑벌이니 안정적인 직업이 필요했고요.”
한때 일곱 일을 한꺼번에 했듯 그의 삶은 한곳에 머물지 않는 게다.
더욱이 그는 강연가로서도 활동하는 터다.
그러니 그의 얼굴은 진작에 일곱을 넘어 진화 중인 게다.
심판, 환경공무관이지만 강연가로 나서는 이유를 그는 이리 말했다.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제 책 제목처럼 고비마다 살아냈습니다.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고 멈추지 않으면 꿈이 이루어지더라고요.
그 ‘이루어짐’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강연가로 발을 내디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