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첫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펑펑 쏟아졌다.
이례적 첫눈 폭설, 그날이었다.
분명 내 어느 젊은 날엔 세상을 하얗게 뒤덮는 흰 눈에 가슴이 설렜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날은 어느 젊은이의 ‘마지막 이사’를 돕는 날이었다.
첫눈이 반갑다는 생각보다는 집에 가는 길이 걱정될 뿐이었다.
“그건 내리지 말아요. 눈 맞으면 고장나겠어.”
차에 싣고 간 값비싼 장비가 눈을 맞아 고장날까 봐 다급하게 말렸다.
폭신폭신 예쁜 눈은 온몸에 솜털처럼 내려앉곤 금세 녹는데,
내 마음은 그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울 뿐이었다.
그날 작업은 4층 원룸의 2층이었다.
주택가 좁은 골목의 원룸 건물은 사다리차 사용이 어렵다.
경사진 길이면 차를 고정하기 힘들고, 전신주로부터 거미처럼 뻗어나온 전깃줄에 걸려 작업이 위험하다.
더구나 이런 날씨엔 사다리차 기사들이 일하지 않으려 한다.
없는 살림이라도 기본적 물건들이 채워져 있으니 계단을 수십 번씩 오르내려야 한다.
“짐이 많지는 않을 거야, 젊은 사람이라고 했어.
눈 때문에 계단이 미끄러우니 조심해야겠어요.”
나도 다짐하고 함께 간 직원에게도 당부했다.
의뢰받은 집의 현관을 열자 바깥보다 싸늘한 냉기가 훅 밀려왔다.
고인은 사후 3일 만에 발견됐다.
추운 날씨 냉골방에서 다행히도 시신은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됐을 게다.
집 안에선 시취 대신 탄내가 가득했다.
한 줌의 열기도 품지 않은 싸늘한 탄내.
냉동탱크에서 새어나오는 듯한 냄새.
베란다의 창문을 열었다.
방구석에서 번개탄 박스가 보였다.
“이게 문제야, 이게. 이렇게 쉽게 살 수 있잖아.
그렇다고 안 팔 수도 없는 거고.”
번개탄의 용도는 온돌방을 데우는 연탄에 불을 붙이기 위한 것이다.
아궁이 연탄불이 꺼지면 꼬맹이한테도 돈을 쥐어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사오게 하던 게 번개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