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독일 출신 빔 벤더스 감독의 장편영화다. 감독은 독일인이지만 배경은 일본이다. 배우들도 물론 모두 일본인이다. 주인공을 맡은 배우의 출중한 연기 때문에 17일 만에 촬영을 마쳤다고 하는데, 영화를 보면 배우의 연기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공공 화장실 청소를 능숙하게 해내는 것은 물론이고 대사 없이 표정만으로 일상에서 얻는 충만함을 연기한다,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이 영화의 제목인 ‘완벽한 하루’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만족’이라는 감정이 중요한 요소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무수히 많은 사람과 중첩되는 삶이지만, 그 속에서 오롯이 ‘나’로서 살아가는 주인공의 하루가 놀랍도록 완벽하게 그려진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 싶어서 마음을 졸인 부분이 꽤 있다. 성실하게 화장실 청소하는 주인공에게 만취한 누군가가 해코지하지는 않을까, 도심 도로를 달리는 정면에서는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같이 일하는 직원이 큰 사고를 치지 않을까, 갑자기 찾아온 어린 조카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지 않을까, 심지어는 그가 매일 찾는 목욕탕과 음식점이 어느 날 문을 닫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그 모든 순간이 평소와 같이 흘러갔다. 주인공은 일상을 순조롭게 살아갔고, 발길이 닿는 곳곳에서 충만한 표정으로 여유를 즐긴다.
어떤 관계도 그의 삶을 뒤흔들지 않는다. 아주 잔잔한 바람으로 산뜻하게 머리만 날리고 지나가는 정도다. 어째서 이런 삶을 선택했는가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 덕분에 관객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주인공의 삶과 자신의 삶을 중첩시켜 보게 된다. 그것이 이 영화가 선물하는 아주 특별하고 재미있는 경험이다.
누구에게나 일상이 있다. 나는 어떤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곱씹어 보면서 잔잔하게 빛나던 순간을 떠올린다. 내일도 모레도 사라지지 않을 그 반짝임이 새삼 감사하고, 그립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내일이 오히려 기대된다. 사실 역설적이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어쩌면 눈물겨운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아주 성실하게 밥 먹고, 일하고, 또 무엇보다 타인이 나의 일상을 해치지 않도록 중심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 그러고 보니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왜 ‘울다가 웃었는지’ 알 것도 같다. 참 고단한 인생이다.
역사가들은 자신이 살고 일하는 사회의 사상을 바로잡기보다는 설명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영화도 그렇다.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다소 불친절한 방식이기는 하다. 역사 공부와 영화감상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면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넌지시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 점이 때때로 우리가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그러므로 역시 더 읽고, 더 보는 쪽이 나은 것 같다.
황은혜 기억과 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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