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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토 다쿠 일본 농림수산상(장관)이 최근 쌀 의무수입 물량 축소를 두고 “노력하고 싶은 과제”라면서 재협상 의욕을 내비쳤다. 이에 국내에서도 일본처럼 의무수입 물량 재협상에 나서자는 의견과 신중론이 충돌하고 있다.
에토 장관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국민이 (소비량) 전제가 바뀌었는데 수입량이 변하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고 지적해도 무리가 없다”며 “(의무수입 물량 축소) 허들은 높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에토 장관이 이같이 주장한 배경에는 급격한 쌀 소비 감소가 있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타결된 이후 한국과 일본은 쌀 관세화를 유예하는 대가로 의무수입 물량으로 불리는 최소시장접근(MMA) 물량을 수출국에 허용했다. 일본은 1986∼1988년 소비량(1065만t)을 기준으로 7.23%에 해당하는 연간 약 77만t의 쌀을 수입한다. 하지만 ‘일본농업신문’에 따르면 최근 일본의 쌀 소비량은 연 700만t으로 미끄러졌다.
국내에도 매년 40만8700t의 의무수입 쌀이 들어오고 있다. 기준연도(1988∼1990년) 소비량의 7.96%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쌀 소비량 감소세가 가팔라 1988∼1990년 평균 121.1㎏에 달하던 소비량은 지난해 55.8㎏으로 53.9% 줄었다. 의무수입 쌀 소화 부담이 갈수록 커지는 구조다.
일본이 의무수입 물량 감축 카드를 꺼내들면서 국내에서도 재협상을 준비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일본이 공식적으로 협상에 나서면 연대하거나 일본의 선례를 토대로 여러가지 협상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대두되는 ‘세계무역기구(WTO)·자유무역협정(FTA) 무용론’도 이런 제안에 힘을 싣는다. 한·미 FTA 타결로 한국은 농산물시장을 개방하는 대신 자동차·철강 등을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무역확장법’을 근거로 2018년에 이어 올해도 모든 수입 철강 제품에 최대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국제 규정이 힘을 잃는 상황에서 자구책을 마련하자는 제안도 제기된다. 문대림 민주당 의원(제주갑)은 최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공청회에서 “80년간 유지해온 다자간 무역 체제가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농정당국이 (WTO 규정에 집착해) 소극적으로 농민을 옥죌 필요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신중론도 팽팽하다. 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은 “재협상 결과가 부정적일지 긍정적일지는 속단할 수 없다”며 “다만 쌀 의무수입 물량을 조정하려면 원칙적으로 WTO 가입국 모두가 협상 대상으로, 얼마나 대가를 치를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이어 “수입 쌀 관세 인하, 쇠고기 (무관세) 쿼터 확대, 비농업부문에서의 협상 등이 예상되는 시나리오”라며 “협상에 뛰어들 수는 있지만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물량만을 줄이는 협상은 힘들다”며 “재협상에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농업계 관계자는 “일본 농림수산상은 정치인 출신으로 일종의 ‘립서비스’ 차원에서 한 정치적인 발언인지, 실제로 추진 의사가 있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김소진 기자 sjkim@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