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혁명 기간 북한은 화교학교를 폐쇄하고 전체 화교 1만 명을 추방했다. 중·북은 서로 대사를 4년간 소환했다. 베이징의 홍위병은 김일성을 ‘수정주의 앞잡이(走狗)’라고 욕하는 대자보를 걸었다. 북한 관리는 중원왕조의 한반도 침략 역사를 끊임없이 선전했다.”
올해 6월 20일 왕밍위안(王明遠) 베이징시 개혁·발전연구회 연구원이 SNS에 올린 과거의 북·중 일화다.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상호 군사원조 조항을 담은 양자 조약을 체결한 다음 날이었다.
“역사적으로 러시아(소련)가 북한에 접근할 때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에 충격을 줬다. 러시아가 동방에서 미국 진영과 경쟁에 집중할 때마다 한반도 정세가 긴장되고 심지어 동북아에 새로운 군비 경쟁 혹은 충돌을 야기했다. 그래서 중국은 러시아와 북한 모두와 좋은 친구이지만 러·북 양자 관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처럼 왕 연구원은 러시아의 동진을 보는 중국의 불편한 심리를 숨기지 않았다. 검열 당국도 방관하며 암묵적으로 동조했다.
이어 홍콩 중문대학의 유명 학술저널 『이십일세기』는 8월호에 ‘동북아 안보구조’를 다뤘다. 선즈화(沈志華) 화둥사범대 종신교수는 북·중·러 애증의 삼각관계를 “취약한 연맹”으로 표현했다. 중국 개혁개방 직후 북한의 불만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소련 군함의 북한 입항을 허용하고, 소련 항공기에 영공을 열어줌으로써 사실상 중국 안보에 위협을 가했다”고 회고했다.
선 교수는 결론에서 “중·소·북 3국의 내부 관계는 전면적인 화해를 이루기 어렵고 비록 공동의 적을 상대해도 각자 원하는 바가 다르고, 누가 우두머리가 되느냐 문제가 있었다”라며 “만일 중국이 러·북 동맹에 참여한다면 중국이 일관되게 견지해 온 주변의 안정과 평화적 발전을 도모한다는 목표 및 전략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했다. 러·북과 거리 두기를 촉구한 것이다.
이제 북한의 우크라이나 참전으로 북·중·러 삼국지에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 13세기 칭기스칸과 우구데이의 몽골군 이후 8세기 만에 아시아 군대의 유럽 등장이다. 유럽인들은 당시를 떠올리지 않을까.
중국에는 당장 북·중 친선의 해 베이징 폐막식이 숙제다. 수교 75주년 기념일(10월 6일)은 지났다. 11월 미국 대선과 다자외교 시즌 이후로 예상된다.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위원장과 김덕훈 총리가 북 대표단 단장 물망에 오른다. 중국의 대북 영향력과 외교 실력이 시험대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