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피 2025] 장립종 쌀 생산·저탄소농법 실천…기후변화 선제적 대응

2024-12-30

해남 땅끝황토친환경영농법인

인도·동남아 주요품종 ‘인디카’

아열대화 발맞춰 22㏊서 재배

다문화가정 등 시장잠재력 커

국내 쌀 소비시장이 위축되는 가운데 세계 쌀시장의 90%를 차지하는 장립종 쌀에 주목하는 곳이 있다. 전남 해남 땅끝황토친환경영농조합법인(대표 윤영식)이 그 주인공이다.

2009년 설립된 땅끝황토친환경영농조합법인은 유채를 활용한 자원순환유기농법을 통해 쌀·잡곡류 등을 생산, 연간 56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법인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장립종 쌀 재배에 뛰어들었다.

벼는 크게 단립종인 ‘자포니카’와 장립종인 ‘인디카’로 구분된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소비되는 쌀은 짧고 둥근 ‘자포니카’로, 밥을 지었을 때 부드럽고 찰진 식감이 특징이다. 반면 ‘인디카’는 쌀알이 길고 불었을 때 훌훌 날리는 특성이 있다. 주로 쌀국수·파스타·향미 등에 활용된다. 인도와 동남아시아 국가 등 세계 쌀시장에서 유통되는 물량 대부분을 차지한다. 법인에선 현재 100여농가가 군 간척지와 일반 논에서 22㏊ 규모로 장립종 쌀을 재배하고 있다. 법인의 장립종 생산량은 연간 120t이다.

법인이 장립종 재배에 앞장선 배경은 기후변화 대응이다. 2021년부터 세종대학교와 기후변화 대응 품종개발 시범포를 조성했다. 세종대 산학협력단은 비료와 물 사용량을 줄이고 침수에 강한 ‘아이피에스(IPS)’ 품종 등을 개발했고, 현재 법인에서 재배하고 있다. 진중현 세종대 스마트생명산업융합학과 교수는 “식량안보 차원에서 한반도의 아열대화에 대비해 동남아지역 장립종 벼를 우리 환경에 적합하게 개발할 필요가 있었다”고 밝혔다.

점차 위축되는 국내 쌀 소비시장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목적도 있다. 윤영식 대표는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과 다문화 가정도 증가하고 있어 내수에서도 잠재력이 있다”며 “미국을 주요 수출 대상국으로 한 장립종 쌀 가공식품 개발과 수출 전략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론 CJ제일제당과 즉석밥 등 가공식품을 만들어 장립종 수출을 모색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올해 3월 대통령 소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CJ제일제당 등과 ‘쌀 수출 산업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윤 대표는 “현재 국내외 쌀시장이 햇반과 도시락 같은 즉석밥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며 “장립종은 찰기가 적어 냉동·해동 과정에서도 쌀알의 형태가 잘 유지돼 품질 관리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진 교수도 “일반 쌀의 아밀로스 함량이 15∼20%인 데 비해 장립종은 25%가 넘는다”며 “아밀로스 함량이 높을수록 찰기가 없기 때문에 쌀을 가루로 만들기 쉬워 쌀국수 등 면류로 가공하기 더 수월하다”고 밝혔다.

법인은 이미 수출과 가공분야에서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했다. 유기농쌀 ‘하이아미’, 신경 안정에 도움을 주는 가바 성분이 풍부한 ‘가바쌀’ 등을 생산해 수출한다. 일반 쌀과 기능성 쌀을 합쳐 2008년 40t을 미국에 처음 수출했고 2023년에는 500t을 내보냈다. 올해는 소규모 장립종 전용 도정시설을 건립할 예정이다. 이를 시작으로 재배부터 도정·가공·유통까지 아우르는 장립종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다. 윤 대표는 “현재 장립종의 일부만 유기농으로 재배하고 있지만 적응단계를 거쳐 유기농 재배면적을 점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농자재업체나 정부 연구기관의 지원도 필요하다. 그는 “장립종 병해충 연구와 대응방안 등 재배매뉴얼 구축도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해남=이시내 기자 cine@nongmin.com

청원생명농협쌀조합공동법인

오창등 친환경·GAP농가 모아

저탄소농산물 인증 추진 성공

소비자 관심 맞춰 발빠른 전환

“지난해같이 이상기후가 심각해질수록 저탄소인증을 받은 친환경농산물의 가치는 더 높아지고 소비자는 더 늘 것으로 믿습니다.”

지구촌을 강타한 이상기후와 온실가스 배출문제는 농업계에 심각한 도전을 던지고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패러다임을 바꾸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실천하는 이가 있다.

충북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에서 4.3㏊ 규모로 벼농사를 짓는 정석훈씨(65)가 대표적이다. 27년째 친환경농업을 고수하는 그는 이제 저탄소농법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정씨의 도전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만 해도 화학비료와 농약 없이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무모하다는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친환경’이란 단어조차 생소한 때였다. 그는 ‘전 국민 30%가 건강한 친환경쌀을 먹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지역 18농가와 함께 오창친환경쌀작목반을 조직하고 친환경농업에 도전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처음 2년간은 생산량이 줄고 쌀의 질도 좋지 않아 의구심이 들었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전국의 선도농가를 찾아다니며 배웠고, 자문할 연구소나 대학교를 찾을 수 없어 어렵게 구한 일본 논문을 번역해 공부했습니다.”

정씨는 농가들과 실증테스트를 수없이 반복하며 지역 논에 맞는 재배법을 정립하기 위해 힘을 쏟았다. 그 결과 가을 추수 후 바로 청보리·호밀 같은 녹비작물을 심고, 모내기 전 네번의 경운을 통해 땅심을 올려 비료 사용량을 줄이는 농법을 개발했다. 친환경농법에서 가장 어렵다는 제초 작업에는 ‘우렁이농법’을 도입하고, 논두렁에는 제초 매트를 설치해 필요 없는 제초 작업을 줄였다.

“땅에서 농약과 화학비료 성분을 빼내고 친환경인증을 받기까지 5년이 걸렸고, 생산량은 오히려 15%가량 증가했어요. 좋은 성과가 이어지자 농가들의 참여가 늘어나 현재는 185농가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매년 철저한 교육과 지도로 사후 관리도 철저히 하고 있죠.”

친환경농업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정씨를 비롯한 작목회는 2022년 청원생명농협쌀조합공동법인(대표 이범로)과 함께 ‘저탄소농축산물 인증’에 도전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 이 인증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저탄소 농업기술로 작물을 생산하는 농가에 부여한다. 비료·농약 절감, 농기계 사용 저감, 물관리 개선 등 환경오염 부담을 줄이는 지속가능한 농법이 핵심이다.

현용철 청원생명농협쌀조공법인 과장은 “오창뿐 아니라 친환경·농산물우수관리(GAP) 인증을 받은 청주 전역의 농가를 모아 저탄소농축산물 인증을 추진해 전국 최대 규모인 1143농가가 받았다”며 “기후변화와 탄소배출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선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저탄소농축산물 인증은 지금까지의 모든 농사 과정을 한번 더 검증받는 자리였다. 우렁이를 활용한 ‘생물적 자원을 이용한 제초’로 인증을 획득했지만 논물 관리, 비료·농약·유류 사용량 저감 등 생산 전 과정에서 탄소배출량 준수 여부를 꼼꼼히 따졌다. 2년차인 지난해 진행된 인증 갱신에서도 철저한 사후 관리로 재인증에 성공하며 신뢰도를 높였다.

정씨는 “농업은 단순 생산이 아니라 환경과 지구를 생각하는 생명산업이 돼야 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저탄소농법을 통한 안전한 먹거리 제공은 농업이 미래를 위해 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했다.

청주=황송민 기자 hsm777@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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