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규모 조리과정에서 발생하는 조리흄에 대한 안전의식은 높아지고 있지만 각급 학교나 대형 조리시설에서 이에 대한 준비가 미흡하거나 측정 기준도 제시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조리 시 발생하는 발암물질 '조리흄'으로부터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급식실, 음식점 등에 조리흄 저감설비 설치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실제 적절한 기준을 마련한 곳은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리흄이란 기름기, 음식이나 요리용 기름이 타면서 발생하는 연기, 끓이거나 튀기는 등 230도 이상 고온에서 기름을 가열할 때 발생하는 수증기,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등 공기 중의 미세한 입자와 가스 혼합물을 일컫는다. 특히 조리흄은 사람이 호흡하면 폐 세포 깊숙이 들어가 염증을 일으키고 심할 경우에는 폐암으로 이어질 수 있는 폐암 유발인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0년부터 조리흄을 1급 발암물질로 분류한 바 있다. 또 미국 산업안전보건청은 물질별 최대 농도를 법적 기준으로 정해 시행하고 있다.
국내에서 조리흄은 학교 급식실 조리원들을 폐암으로 내몰고 있는 위험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 내 중학교 급식실에서 12년 동안 근무했던 조리원이 2018년 폐암으로 사망했고 경기 성남의 고등학교와 중학교에서 13년 동안 급식을 조리했던 조리원도 폐암 말기를 진단받아 2023년 사망했다. 또한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이 2023년 실시한 급식 노동자 건강검진 결과 2023년 9월 기준, 폐암에 확진된 노동자는 52명이었으며 폐암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는 노동자는 379명으로 나타났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해 10월 '경기도형 학교 조리실 환기 개선매뉴얼'을 마련해 모범사례로 꼽힌다. 경상남도와 서울이 공식 발표한 환기 개선기준과 차별화됐다. 가장 큰 차이는 '급기(외부의 공기를 조리실로 공급하기)'와 '조리실 내 공기 질 실시간 모니터링'으로 요약된다.
단체급식 관계자들은 환기설비의 구성은 급기와 배기로 이뤄져 있는데 조리실 환기설비 개선사업 근간인 고용노동부의 '학교급식 환기설비 설치가이드(이하 가이드)'와 '단체급식시설 환기에 관한 기술지침(이하 기술지침)'은 지나치게 '배기'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경기교육청은 기존 가이드 및 기술지침에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발전시킨 경기도형 기준을 구축해 발표했다. 지난해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동안 조리실 개선이 시급한 학교부터 경기도형 기준을 적용해 개선사업을 추진했다. 올해 1~2월 중 관내 10여 개 학교 대상 '환기설기 개선 공사' 마쳐 경기도형 기준 맞춰 '급기 시스템'과 '공기질 실시간 모니터링' 도입됐다. 일부 학교에선 외부 배출물질 집진기까지 설치됐다. 집진기는 덕트와 외부를 연결하는 배출구 끝에 설치돼 후드 및 덕트를 통해 모아진 미세먼지와 조리흄 등을 걸러 주는 역할을 하는 기구다.
학교 뿐만 아니라 산업계에도 조리흄으로 인한 폐암 진단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금호타이어 곡성공장 식당에서는 20년 넘게 일한 조리원이 2023년 폐암 진단을 받았고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도 각각 16년, 10년 일한 구내식당 조리원 2명이 폐암에 걸려 업무상 질병으로 지난해 산재 승인을 받은 바 있다.
이러한 문제가 계속되자 정부도 오는 2027년까지 약 1조원의 예산을 편성해 학교 조리실에 급·배기 공조장치를 설치하고 있으나 조리흄의 농도가 어느 정도인지, 어떻게 공조장치를 작동해야 하는지의 기준이 없는 상황이다. 새로 설치된 공조 장치로 인한 개선된 공기질을 확인할 수 없어 공기질 개선 효과를 검증하기도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확한 조리흄 파악을 위해선 조리실에 조리흄 모니터링시스템을 설치해 조리흄을 정확히 분석하고 급·배기 장치의 공기질 개선 상태를 평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조리분야 근로자의 건강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보다 세밀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경민 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