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가 다시 대만의 벽을 넘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1차전을 놓치면서 험난한 가시밭길을 밟게 됐다.
한국은 13일 대만 타이베이돔에서 열린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B조 예선 대만과의 1차전에서 3-6으로 졌다. 본선 진출을 위해 반드시 잡아야 할 경기였지만, 선발투수 고영표가 2이닝 4피안타(2피홈런) 6실점으로 무너지면서 일찌감치 승기를 내줬다.
모두 12개국이 출전하는 이번 대회는 A조와 B조로 나뉘어 예선을 치른다. 조별 1·2위만 일본에서 열리는 본선행 티켓을 따낸다. 이날 패배로 한국은 남은 4경기 중 최소 3경기를 이겨야 본선 진출 가능성이 생기게 됐다.
한국의 1차전 상대는 홈팀 대만이었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출전한 역대 국제대회에서의 대만전 전적은 26승16패로 한국이 우위다. 그러나 근래 5게임에선 2승3패로 밀리고 있다. 대만의 성장세가 두드러지면서 최근 맞대결에선 승패와 상관없이 늘 팽팽한 경기가 전개됐다. 특히 이번 프리미어12는 대만에서 열린다는 점도 한국에는 부담이었다.
상대 안방에서 1차전을 치러야 하는 류중일 감독은 선봉장으로 오른손 사이드암 고영표를 낙점했다. 1991년생으로 투수진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고, 국제대회 경험도 풍부한 고영표에게 막중한 임무를 맡겼다. 대만 타자들이 고영표의 장기인 체인지업을 효과적으로 공략하지 못한다는 점도 고려했다.
그러나 고영표는 2회말에만 홈런 2방을 내주며 무너졌다. 2사 1루에서 리카이웨이와 쟝쿤위에게 각각 우전안타와 볼넷을 허용해 만루 위기로 몰렸고, 천천웨이에게 우월 만루홈런을 맞았다. 손 쓸 틈 없이 4점을 내준 고영표는 계속 흔들렸다. 린리에게 우익수 키를 넘기는 2루타를 맞은 뒤 천제슈엔에게 다시 우월 2점포를 허용하고 말았다.
대만의 파상공세로 격차가 6-0으로 벌어지자 타이베이돔은 3만여 홈팬들의 함성으로 가득 들어찼다. 지난해 대만이 약 1조6000억원을 들여 만든 대규모 돔구장답게 압도적인 위용으로 한국 선수들의 기를 눌렀다. 원래 타이베이돔의 수용인원은 4만명이지만, 누수 문제로 이보다 적은 3만3000장의 티켓만 판매했다. 입장 숫자는 줄어들었어도 일방적인 응원은 경기 내내 계속됐다.
분위기가 가라앉은 한국은 3회까지 상대 선발투수 린여우민에게 막혀 점수를 내지 못했다. 미국 마이너리그 리노 에이시스(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트리플A)에서 뛰고 있는 왼손 에이스 린여우민은 예리한 슬라이더와 시속 140㎞대 후반의 빠른 공으로 한국 타자들을 봉쇄했다.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던 한국은 4회 따라가는 점수를 냈다. 1사 2루에서 김도영이 좌월 2루타를 터뜨려 홍창기를 홈으로 불러들였고, 박동원이 중전 적시타를 추가해 2-6으로 추격했다. 이어 7회에는 대타 나승엽이 천관웨이로부터 우월 솔로포를 빼앗아 1점을 더했다. 그러나 남은 이닝에서 더는 따라붙지 못하면서 3-6으로 졌다.
비록 1차전은 패배로 끝났지만, 마운드에서 희망을 발견한 점은 적잖은 수확이었다. 고영표 다음으로 투입된 최지민과 곽도규, 김서현, 유영찬, 조병현 등 젊은 투수들은 6이닝을 3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남은 경기 불펜진 활용폭이 커지면서 실낱같은 기대감을 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