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F-16 전투기 2대가 지난 6일 경기도 포천에서 일으킨 민가 오폭 사고의 원인은 조종사의 좌표 입력 실수로 공군 조사에서 드러났다. 조종사는 컴퓨터에 14개 좌표를 입력했다. 한 좌표는 15개 숫자로 구성되므로 모두 210개 숫자를 입력한 셈이다. 그런데 한 좌표에서 ‘5’를 ‘0’으로 잘못 입력했다는 것이다.
이런 입력 실수라면 잘 알려진 ‘체크섬(checksum)’ 기술로 막을 수 있었다. 원리는 간단하다. 좌표 15개 숫자로부터 요약값을 생성하고, 이를 좌표 끝에 덧붙여 입력한다. 그러면 컴퓨터가 같은 알고리즘으로 요약값을 재계산해 덧붙인 요약값과 일치하지 않으면 입력을 거부하고 재입력을 요구한다. 목적은 다르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주민등록번호도 비슷한 원리로 작동한다.
조종사의 좌표 입력 실수가 원인
‘체크섬 기술’로 충분히 예방 가능
교차검증 불발 원인부터 규명을

하나의 좌표를 입력할 경우 요약값이 한 자리 숫자면 90%의 확률로 오류를 탐지해 낸다. 물론 완벽한 것은 아니다. 10분의 1의 확률로 오류를 탐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중대한 오폭 사고를 90%나 줄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하지 않은가.
여러 개의 좌표를 입력할 경우 실수할 가능성은 빠르게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체크섬 기술로 오류를 탐지하지 못할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일 수 있다. 블록체인처럼 다음 좌표의 요약값에 이전 좌표의 요약값을 포함하면 된다. 그러면 좌표 1개의 오류를 탐지하지 못할 확률은 10분의 1이지만, 좌표 2개면 100분의 1, 좌표 3개면 1000분의 1로 좌표가 늘어날수록 오류 확률은 낮아진다. 포천 오폭 사고 조종사처럼 좌표가 14개라면 무려 100조분의 1까지 줄어든다. 입력 오류를 거의 확실하게 탐지해 낼 수 있었다는 의미다.
체크섬의 강점은 검증을 강제한다는 점이다. 공군 조사에 따르면 사고 조종사는 프린터 오류로 입력된 자료와 원자료를 대조하지 않았고, 입력 자료를 전투기에 업로드하는 과정에서도 대조·확인을 생략했다. 투하 직전에 마지막으로 표적을 육안으로 확인하지 않은 채 “표적 확인”을 외쳤다고 한다. 이 모든 자기검증을 합한 것보다 체크섬 하나가 더 우월했었을 것이다. 대조·확인이 자동으로 강제되기 때문이다.
공군은 재발 방지 대책으로 좌표 입력 절차를 교차검증 시스템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새로운 교차검증이 도움될 수도 있겠지만, 기존의 교차검증이 작동하지 않았던 이유를 먼저 밝혀야 한다. 두 번째 전투기의 조종사는 올바른 좌표를 입력하고도 앞선 전투기를 따라 폭탄을 투하했다. 편대장은 전투기 2대가 편대를 이탈한 것을 파악하지 못했고, 지상의 모니터 요원도 전투기 이탈을 탐지하지 못했다. 여러 겹의 교차검증이 왜 실패했는지 하나하나 추적하고 정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자기검증이든 교차검증이든 보통 검증은 사후적으로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수행된다. 그러면 매뉴얼대로 검증하지 않아도 사고만 나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고 당사자도 검증을 소홀히 하게 된다. 그러므로 중요한 검증은 체크섬처럼 실시간으로 강제하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 즉, 중요한 검증은 매뉴얼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도록 강제하고, 이에 따른 작전·훈련 중지권도 부여해야 한다.
군대의 상명하복 체계에서 수평적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것이 중첩된 검증 실패의 원인일 수 있다. 위험 정보의 소통을 촉진하려면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정 이후 건설사 등이 도입한 ‘아차상’ 아이디어도 검토할 만하다. 중대재해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아슬아슬하게 사고가 날 뻔한 준사고(near-miss) 또는 이를 막는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신고하고 포상하는 제도다. 미국 공군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도 준사고 보고 제도가 널리 활용되고 있다. 우리 공군도 포천 오폭 사고 같은 사고를 막으려면 이참에 참조할 만하다.
이번에 KF-16 전투기가 투하한 폭탄의 폭발 반경은 축구장 크기다. 폭탄 8발이 잘못 투하됐지만 사망자가 없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셈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좌표 입력에 체크섬을 도입하기를 제안한다. 기존의 교차검증이 왜 실패했는지를 철저히 분석하기 바란다. ‘K-공군형 아차상’도 만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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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인하대 경제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