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류준현 기자] 국내 은행권의 평균 대손충당금 적립률이 글로벌 평균치보다 지나치게 높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미국을 대표하는 일부 은행 다음으로 우리나라 은행들의 충당금 적립률이 높은 실정인데, 지나친 충당금 적립이 밸류업과 잠재 부실가능성 대비에 부정적일 수 있다는 의견이다.
17일 금융연구원이 발간한 금융브리프 포커스 '국내 은행그룹의 대손충당급 적립률 국제 비교와 시사점'에 따르면 국내 전 은행의 대손충당금 적립률(CR)은 평균 141.8%로, 미국계 은행(JP모간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코퍼레이션) 180%대 다음으로 가장 높았다. 유럽·일본·호주 등은 50~70%대에 그쳤다.

CR는 부실여신에 대비한 대손충당금 적립 정도를 나타내는 비율로, 금융회사의 신용 손실 흡수능력을 평가하는 주요 지표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을 바탕으로 금융감독원이 독자적 기준을 수립해 대출 건전성 등급을 5단계(정상-요주의-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로 나누고 있다. 여기서 은행들은 3단계인 고정이하의 대출건부터 부실채권으로 상정하고, 대손충당금을 적립하고 있다.
지난 2017~2023년 국내 7개 은행그룹의 CR는 글로벌 은행그룹 대비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2023년 말을 놓고 보면 국내 은행그룹은 158.0%(4대 시중은행지주(KB·신한·하나·우리) 168.1%, 지방은행지주(BNK·JB·DGB) 144.6%)를 기록해 글로벌 주요 은행그룹의 97.4% 대비 압도적으로 높았다.
국내 은행그룹이 글로벌 은행들 대비 상당한 격차를 보이는 건 당국이 '정상'으로 분류한 대출에 대해서도 가계대출에 1%, 기업대출에 0.85%의 충당금을 각각 적립토록 하는 까닭이다. 또 해외 CR 수준이 낮은 건 담보대출 비중이 높고, 부실채권 발생 시 내부에서 직접 관리하는 관행도 한 몫 한다.
실제 국내은행은 부실채권을 보유하면서 기업 회생을 적극 도모하기보다 채권추심이 가능한 자회사나 외부기관에 조기 상·매각해 자산건전성을 높이려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글로벌 은행그룹은 기업대출 시 해당 기업의 매출채권을 담보로 운영자금 위주의 대출을 내어주고 있다. 이에 글로벌 은행들은 연체가 발생하더라도 굳이 충당금을 많이 적립할 필요성이 없다는 평가다.
이 같은 충당금 적립 관행의 차이를 고려해도 국내 은행들의 충당금 적립 수준이 과다한 만큼,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게 금융연구원의 시각이다.
보고서를 집필한 김우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글로벌 평균 대비 과다한 충당금 적립은 내부의 가용자본 수준을 약화해 그룹의 성장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배당 여력을 감소시키는 등 밸류업 제고라는 시대정신에 역행할 수 있다"며 "과거의 부실 청산에는 도움이 되나 잠재 부실 발생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예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우려했다.
은행 영업환경이 악화됐을 때 당국은 'CR 관리 강화'를 내걸어 건전성 개선을 꾀할 수 있지만, 투자자로선 발생하지 않는 부실에 과다하게 충당금을 적립하는 게 달갑지 않은 까닭이다.
이에 김 선임연구위원은 단순 충당금 적립률을 높이기보다, '리스크를 고려한 수익률 관리'에 집중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했다. 대표적으로 '위험가중자산이익률(RoRWA)' 지표를 눈여겨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RoRWA는 대출의 위험 정도에 따라 가중치를 매긴 위험가중자산 대비 이익의 비중을 뜻한다. 위험가중치가 높은 대출이나 저수익 대출을 많이 취급할 경우 영업실적이 좋더라도 RoRWA는 낮은 수준에 머물게 된다.
실제 지난 2023년 말 기준 금융그룹별 RoRWA를 살펴보면 시중지주 평균값이 1.84%, 지방지주 평균값이 1.54%를 기록했다. 이는 북미 평균 2.39%, 유럽 평균 2.44%, 호주 평균 2.34%에 견줘 압도적으로 낮은 편이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미국계 은행그룹들이 코로나 사태 발생 시 과거와 달리 대규모 충당금을 적립할 수 있었던 것도 높은 수익력에 바탕을 둔 자신감의 발로"라며 "향후 국내 은해애그룹들도 지금보다 높은 위험조정수익률이 기대되는 비즈니스, 중위험-중수익 모델로의 비즈니스 전환이 전략적으로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