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 부산 스포원 테니스 경기장에서 열린 남자프로테니스(ATP) 비트로 부산오픈 챌린저대회(총상금 20만달러). 두 번째 예선에서 나카가와 나오키(일본)를 꺾고 본선행 티켓을 거머쥔 신산희(경산시청)가 기자회견실을 노크하며 “승자 인터뷰 해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기자들의 호응이 있자 인터뷰를 자청(?)한 신산희가 유쾌한 말솜씨로 기자회견을 이끌었다.
사실 신산희에게 ATP 투어 아래 등급의 챌린저대회 본선행도 늘 쉽지 않았던 도전이었다. 신산희는 한국 남자 테니스계에서 꾸준히 기대를 받아왔던 선수지만 동시대에 활약한 정현, 권순우, 홍성찬 등에 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신산희는 “올해 제 꿈이었던 국가대표에 발탁되고선 마음이 편해졌다. 공을 칠 때도 자신감이 붙었고 컨디션이 좋아서 마음 속으로는 ‘본선행도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기대도 했다. 단지 승리해서가 아니라 막힌 뭔가를 깨고 넘어섰다는 느낌”이라며 기뻐했다.
1997년생 신산희는 국군체육부대를 제대한 뒤 20대 중반이던 3~4년 전부터 안정적인 국내 생활 대신 해외 투어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다른 선수들에 비해 많이 늦은 투어 도전이었다. 스폰서도 없는 상황에서 소속팀에서 받는 연봉을 투어 비용으로 써야 하는 등 많은 것을 내려놔야 하는 쉽지 않은 길이다.
“테니스 선수로서 길을 걸어왔고, 열심히 운동했으니 국내 선수에만 그치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상무 시절)남지성 형이 조언도 해주며 용기를 줬다. 해외 투어 도전 첫 해를 뛰면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언젠가 메이저대회 예선을 뛰겠다는 목표가 있다. 앞으로도 조금 더 세계 무대에 도전할 생각이다.”
어려운 ‘늦깎이’ 도전에 나름 성과도 있다. 신산희는 지난 1월 처음 대표팀에 발탁돼 남자 테니스 국가대항전인 데이비스컵에도 출전했다. 그는 “그 무대에서 뛰었다는게 큰 경험이다. 그런 경험들이 이번 대회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신산희의 개인 최고 랭킹은 429위다. 현재는 653위다. 챌린저대회라도 본선을 자력으로 출전하기 위해선 랭킹을 많이 끌어올려야 한다. “지금 내가 (실력으로)확 튀는 선수가 아니라는 점을 잘 안다. 출중한 선수들이 많은 만큼 나는 묵묵히 성실하게 운동하겠다”는 신산희는 “800위, 400위, 200위권 등을 랭킹별로 큰 벽이 있다. 나는 매 단계에서 막힘이 있음을 느꼈다. 언젠가 후배들에게 조언하고, 이끌어주기 위해서라도 내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랭킹에 올라서고 싶다”고 도전 의지를 강조했다.

신산희는 이어진 16일 단식 본선 1회전에서 요하너스 먼데이(259위·영국)도 제압했다. 신산희가 챌린저대회 16강에 오른건 지난해 중국 산둥성 지난챌린저 이후 두 번째다. 신산희는 “지난 중국대회 보다 훨씬 높은 레벨을 선수들을 이겨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예선 첫 경기부터 ‘대진운도 안 따른다’고 생각했는데 200위권 선수들을 (예선부터)3경기 연속으로 이겨 한편으로 무섭기도 하다”며 기분좋게 웃었다.
프로 테니스 선수들은 패배감을 잘 극복하는 것도 실력이다. 1년 52주간 전 세계에서 거의 빠짐없이 대회가 열리고 있지만, 매 대회 마지막까지 웃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 뿐이다. 랭킹이 낮은 선수들은 대회 초반부터 다음 일정을 준비해야 하는 일이 허다하다. 신산희는 투어 도전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매주 지는 일상이 반복된다. 내 돈을 써가며 투어를 다니면서 질 때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지금까지 경험해보니 지름길은 절대 없더라”면서 “저도 이 정도까지 왔는데, 재능있는 지금 어린 선수들이라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길게 멀리 보고, 인내하면서 투자도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에겐 더 냉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신산희는 17일 단식 2회전에서 쉬위셔우(237위·대만)에 져 8강 진출에는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