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생각나는 옛날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남자가 산에서 나무를 하다 요정을 구했다. 그 보답으로 요정은 남자에게 세 가지 소원을 선물하겠다고 했다. 남자의 가슴이 부풀어 올랐을 터이다. 어떤 소원을 빌어야 좋을까. 큰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빌고도 소원이 둘이나 남는다. 바랄 수 있는 것이 무한히 많을 것이다. 남자는 어떤 것을 선택할지 고민하다 이내 대단한 소원에 대한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마 그의 일상이 몹시 고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과 함께 둘러앉은 소박한 저녁밥상을 두고 그는 “여기 소시지 한 묶음만 있으면 좋겠다”라고 소원을 빌어버리고 만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소시지에 남자도 부인도 깜짝 놀랬다. 남자는 요정과의 일이 생각나 부인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부인은 남편의 이야기를 다 듣고 기쁘기보다 화가 먼저 났다. 그렇게 귀중한 기회를 칠칠치 못하게 소시지 따위에 낭비하다니. 부자가 되면 소시지 따위는 몇백 묶음이라도 구할 수 있지 않은가. 부인은 화가 나서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 따위 변변찮은 소시지는 당신 코에나 붙이시지.“ 이번에도 요정은 소원을 들어주었다. 이제 남은 소원은 단 한 가지 뿐 이었다. 남자는 코에 소시지를 달고 사는 부자가 되느니 지금 자신의 삶이 나을 것 같았다. ”제 코에서 소시지를 떼주십시오.“ 세 번이나 되었던 엄청난 기회는 결국 코에 붙였다 뗀 소시지 한 줄로 끝났다.
옛날 우화가 가지고 있는 함의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의미심장하다. 이 이야기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지 말란 것일 수도 있고 항상 입을 조심하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이 시대에도 많은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서 코에 소시지나 붙이고 어부인 눈치를 보며 성질이나 부리는 이가 있음을 우리는 안다. 혹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의 소중함을 가르쳐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운동을 하겠다며 법석을 떨다 다리를 다치고, 감기 끝에 폐가 상해 한 달 가까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밤잠을 이루지 못한 적이 있었다. 스스로 몸에 마뜩잖은 곳이 많다고 생각했으나, 그 부족한 몸조차 얼마나 고맙고 견실한 것인지를 정상상태를 잃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의사 수가 부족하다며 정부가 일으킨 난리가 벌써 열 달이 넘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길거리 광고판이며 엘리베이터 내부까지 구석구석 청년 의사들을 모함하는 캠페인은 국민들에게 불안감만 심어주었을 뿐이다. 대학병원의 교수들과 대다수의 개원의들은 물론, 당장의 사태에서 조금 비켜나 있는 치과의사들은 자기 자리에서 환자들을 지키고 있다. 그럼에도 위중한 병으로 상급 병원에 누워 있는 환자와 남은 의료진의 고생과 고뇌는 엄청날 것이다. 의사 부족이라 호도하며 매년 2천명의 다짜고짜 증원을 우기지 않았다면, 각급 병원에는 올해 3천 500여명의 신규의사가 충원되었을 것이다. 이제, 의사가 부족하게 된 원인은 누구 때문인가.
우리 치과의사들이라고 태평성대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연말을 앞두고 소속 위원회에서 관내 회원들이 불이익을 보지 않게 챙겨야 할 의무 리스트를 꼽아보았다. 개설 시에 들어야 할 교육은 그렇다 쳐도, 온갖 자율점검과 교육이 스멀스멀 늘어나 열다섯 가지가 넘는다. 거기에 구강검진교육이니 진방장치 안전관리 책임자 교육이 돌연 주기적으로 되풀이해야 하는 의무로 추가되었다. 대한민국은 교육만능주의에 빠졌다고 할 만하다. 유럽에서 18세기에 발호해 구한말 조선땅에 유입된 계몽주의 사조가 21세기 대한민국을 여전히 지배하는 듯하다. 이 많은 교육이 정녕 무지몽매한 치과의사들을 계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교육신설을 핑계로 국가 예산을 할당받아 먹고 살아야 할 누군가를 위해 치과의사들이 필요한 것일까.
대한치과의사협회는 내년 감개무량한 백 주년을 맞는다. 조선인 최초로 치과의사 자격을 취득한 함석태 선생님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 현대식 치과의사의 등장은 1914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 땅에 생긴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자 현대의료 교육기관인 제중원(濟衆院)은 무려 1885년에 조선 정부에 의해 설립되었다. 본디 광혜원(廣惠院)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던 것을 12일 후에 여러 질환을 치료하는 곳이란 뜻이 내포된 제중원으로 바꾸었다. 요즘 말로 하면 종합병원[general hospital]쯤 되겠다. 널리 내리시는 왕실의 은혜에 대한 프로파간다보다 제중원 시설 자체의 정체성을 명시하는 게 옳다고 19세기 조선의 임금과 조정관리들은 판단한 듯하다. 지금 21세기 대한민국의 보건 정책을 책임지고 있다는 자들의 행태와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과학을 하는 자는 과학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과학적 사고란 현상을 관찰하고 분석, 이해함에 있어 객관적 증거를 토대로 논리적인 인과관계를 추론하는 방식이다. 무턱대고 많으면 좋다는 것은 과학적인 사고가 아니다. 바이러스가 낮에는 옮겨지지 않고 저녁 8시 이후에 옮겨질 위험이 있으며, 승용차 내부는 바이러스 확산 우려가 있지만 버스나 지하철 내부는 안전하다는 주장도 과학적이지 않다. 나는 좋은 대학을 세 곳이나 다니며 미생물학을 세 번이나 배울 기회가 있었다. 전설의 드라큘라 백작처럼 밤에만 활동한다는 바이러스에 대해서 설명해주시는 스승님은 단 한 분도 계시지 않았다.
과학적 사고를 갖추지 못한 자는 의료 과학을 책임질 자리에 몸담을 자격이 없다. 미신 같은 믿음을 과학이라 주장하며, 의사가 환자를 살필 시간보다 나라님의 영에 복종하는데 시간을 쓰는 것이 마땅하고, 전근대적 계몽사상으로 의사들을 다스리면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관료들은 안타깝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 나셨다. 한국인을 핍박한 공적만으로도 백작위[Comte]를 받을 수 있는 시절도 있었겠으나, 지금은 주권이 국민에게서 근거함을 헌법에 명시한 자유민주주의 공화국 대한민국의 시대이며, 의료인 역시 대한민국의 국민이기 때문이다.
구한말 이래 한국인들은 현대적인 의료혜택과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의 독립이라는 큰 선물을 얻었다. 우리가 소원해야 할 마지막 선물은 꿈에라도 통일일 뿐, 국민이 은혜를 꿈꿔야 하는 미신적 전제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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