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의 ‘판탈롱 나팔바지 이야기’…옷과 몸에 관한 빛나는 아포리즘

2025-07-23

헌법학자 안경환 선생으로부터 당신의 부모님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젊은 시절 아나키스트로 살다 간 아버지 안병준과 이름난 패션디자이너로 활동했던 어머니 조경희의 삶의 궤적은 그지없이 먹먹했다. 자서전을 집필하고 계신 선생을 졸라 어머니 이야기를 따로 떼어내어 쓰고 싶다고 했더니 쾌히 승낙하셨다. 이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사실이 바탕이지만 허구와 상상을 대폭 섞어 구성했다. -‘작가의 말’ 중에서

 ‘판탈롱 나팔바지 이야기’는 한 여성 패션디자이너의 파란만장한 삶에 바치는 헌사다. 옷과 몸에 관한 빛나는 아포리즘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특정한 장르에 갇히는 걸 거부한다. 기존의 예술 장르를 구분하는 원칙에서 벗어나 새롭고 자유로운 글쓰기 방식을 시도한다. 시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하고, 동화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하다.

 안도현 시인이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형식의 책 ‘판탈롱 나팔바지 이야기’(몰개·1만4,000원)를 들고 나타났다.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작가 스스로도 궁금해서 장르를 특정하지 않은 채 내놓게 됐다고 한다. 저자는 “행과 연, 단락과 문단을 만드는 기준을 의도적으로 무시했고, 그 어떤 형식의 경계 안에 내용을 가두지 않고 이미지와 이미지가 흘러가도록 내버려뒀다”면서 “나는 평소에 꽤 더듬거리면서 궁색하게 하나하나 문장을 쓰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되도록 자유롭게 문장이 스스로 숨을 쉬도록 방치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안도현은 독자들에게 여러 가지 빛깔로 기억되는 작가다. ‘연탄재’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가 하면,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의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유명하고, ‘간장게장’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겨준 사람이기도 하다. 이처럼 다양한 영역에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안도현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롭고 특별한 책을 펴낸 것이다.

 안도현의 새 책은 자기 앞에 놓인 벽을 끊임없이 돌파하면서 자유를 향해 나아갔던 한 여인의 이야기다. 인간의 몸과 옷에 대한 철학적 서사를 서정적 문장으로 그려낸 이 책은 천천히, 그리고 게으르게 페이지를 넘겨야 한다. 여든여섯 개의 챕터마다 여든여섯 가지의 서로 다른 매혹적인 이미지와 시적 사유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미래를 확신하지 못하고 고뇌하는 청춘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안도현의 선물과도 같은 책이다.

김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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