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정년연장을 위한 과도기적 조치로 계속고용(정년퇴직 후 재고용) 의무화가 필요하다는 공익위원 권고안을 내놨다. 법정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기업에 고용 의무를 부과하고 노사 협의로 노동 시간과 직무를 조정하는 절충안이다.
노동계는 “재고용 과정에서 임금·노동 조건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경영계는 “기업에 계속고용의무를 부과하면서 핵심인 임금체계 개편 방안은 빠져있다”고 각각 반발했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정년 간의 격차로 소득공백이 불가피하고, 21대 대선의 주요 공약으로도 정년 연장이 등장하고 있어 차기 정부 들어서도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사노위 산하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계속고용위원회’의 이영면 위원장은 8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에서 ‘공익위원 제언’ 형식으로 고령자 계속 고용 문제 논의 결과를 발표했다. 공익위원들은 청년 취업난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 등을 고려할 때 법정 정년을 늘리는 것보다는 65세까지 고용을 의무화하는 고령자 계속고용의무제도가 현실적이라고 봤다.
공익위원 제언은 우선 개별 사업장에서 노사가 자율적으로 합의해 정년을 연장하면 이를 존중하고, 노사 합의가 없는 사업장의 경우 사업주에게 고령자 계속고용의무를 부여한다. 현행 60세 정년이 지나면 퇴직 후 다시 계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노동자가 원할 경우 사업주는 계속고용의무를 가지고 고용해야 한다. 이때 직무와 임금 조건은 노사 협의를 통해 결정된다.
공익위원들은 기업에 고용 의무를 부과해 법정 정년을 65세로 올리자는 노동계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면서 노사 협의로 노동 시간과 직무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해 경영계 요구도 절충했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현재 60세 정년을 맞는 노동자는 대기업·공공 부문 등 전체의 15%에 불과하다”며 “나머지 85%는 많은 통계에서 49~51세 회사를 떠난다. 이들이 고령 사회를 대비하는 역량이 훨씬 떨어지는데 한쪽에 너무 집중하면 나머지는 어떡할지 고민이 됐다”고 말했다.
계속고용 기간 고령이라는 이유로 생산성을 크게 밑도는 임금을 주거나 연공에 근거한 과도한 임금을 책정하지 않도록 ‘생산성에 상응하는’ 적정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권혁 고려대 교수는 “정년연장 혹은 재고용 중 양자택일을 하라는 게 아니라 원칙적으로 계속고용을 희망하는 근로자들은 보편적으로 재고용의 대상”이라며 “생산성에 비례한 임금을 책정하면서 청년들의 박탈감을 막고 연령 차별이라는 법적 분쟁도 유발하지 않는 방안을 찾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해 입법을 전제로 계속고용의무 적용 시기는 2027년까지 2년간 유예 기간을 부여한 뒤 2028∼2029년 62세, 2030∼2031년 63세, 2032년 64세, 2033년 65세로 단계적으로 연령을 올릴 것을 제안했다. 이렇게 되면 국민연금 수급과 계속고용의무 연령 간 차이가 점차 줄어 2033년(65세)에는 같아진다.이 위원장은 “당장은 법정 정년연장이 어렵기에 과도기적 조치로 계속고용 의무를 부여하자는 것”이라며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노동시장 수요 공급을 검토해 2차 베이비붐 세대 은퇴 등 여건이 성숙되면 정년연장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는 노사정 합의안이 아니라 공익위원의 제언으로 강제력이 없다. 계속고용위는 지난해 6월 출범해 지난 1년간 노사정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논의해 왔다. 노동계에서는 한국노총이 참여했으나 지난해 12·3 불법계엄 사태 이후 전면 불참을 선언했으며 6월 새 정부 출범 때까지 관련 논의를 보류하기로 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성명을 내고 “경사노위는 공익위원 제언에 대한 노사 의견 청취 등 최소한의 절차조차 생략했다”며 “재고용 과정에서 고용형태가 바뀌고 임금·노동 조건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65세 정년연장안 도입을 위한 법 개정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했다.
경영자총협회(경총)도 “정년 60세 의무화로 초래된 청년고용 감소나 고령자 조기퇴직자 증가 등 부작용은 높은 임금 연공성에서 비롯됐다”며 “기업에 재고용 대상자 선택권을 부여하지 않고 원칙적으로 일하기 희망하는 고령 근로자 모두를 재고용하라는 의무를 강제하면서 임금체계 개편 방안은 빠져 있어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최근 “정년 연장을 사회적 합의로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기업에 정년 제도에 대한 자율권을 주겠다고 했다. 차기 정부에서 정년 연장은 주요 의제가 될 전망이다. 경사노위는 공익위원들의 제언을 정부에 공식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권기섭 경사노위 위원장은 “올해 하반기에는 입법이 되어야 국민연금 수급 연령과의 괴리를 줄일 수 있다”며 “이 안을 토대로 국회의 정년연장 특위, 국민연금 특위에서 논의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