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400m 천재’ 양예빈…“초등학생 때 기록이네요. 그래도 다시 달릴 겁니다”

2025-04-21

경상북도 구미시민운동장에서 열린 아시아 육상경기선수권 대회 최종 선발전 여자부 400m 예선. 양예빈(안동시청)은 8명의 주자 중 가장 늦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양예빈의 기록은 선두에 30m 이상 뒤처진 1분 01초 38. 무려 양예빈의 초등학생 시절 수준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예선에 출전한 21명 중 17위의 기록으로 양예빈은 대회를 쓸쓸히 마무리했다.

지난 2019년, 중학교 3학년이던 양예빈은 한국 육상에 샛별처럼 등장했다. 양예빈은 29년 묵은 중학생 한국 기록까지 새로 깨며(55초 29) 그야말로 거침없이 내달렸다. 양예빈은 그해 열린 전국체전에서 성화 주자로 나설 만큼 높은 인기를 자랑했고, 한국 육상의 미래를 책임질 스타로 한 몸에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뜨거웠던 주목도 잠시, 고등학교 진학 후 양예빈의 소식은 좀처럼 들려오지 않았다. 대형 스타 탄생으로 떠들썩했던 언론에서도 더 이상 양예빈의 이름을 찾기는 어려웠다.

2025년 4월 육상 대회 현장에서도 양예빈에게 주목하는 이는 없었다. 지난 6년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양예빈에게 찾아가 어렵사리 인터뷰를 요청했다. 아쉬움 가득한 표정의 양예빈은 뜻밖에도 담담하고 또 진솔하게 입을 뗐다. 양예빈에게 지난 6년의 세월에 대해 물었다.

Q. 정말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이제 실업(안동시청)에서 뛴 지 3년 됐어요. 부상에서 회복한 후로 안 좋았던 부분 잡아가면서 훈련하고 있었어요. 몸이 아픈 곳도 많았어요. 그동안 아무래도 오래 달려오다 보니까 아픈 것도 많았고, 또 몸과 마음이 뜻대로 잘 안 맞아서 아픈 것도 생기더라고요.

Q. 고등학생 이후 몸이 계속 안 좋았던 건가요?

아무래도 제가 많이 뛰다 보니까 몸에 부하가 걸리지 않았나 싶어요. 제가 그 부하 걸린 것을 다른 운동으로 보완해야 했는데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가만히 있었죠. 또 제가 아무래도 여자다 보니까 성장기 때 호르몬 문제가 좀 있어서 약을 좀 먹었는데, 부작용 때문에 몸이 불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마치 핑계 대듯 말씀을 드리기가 조심스러운 게 다른 선수들은 정말 큰 부상을 당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큰 부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없는 부상도 아니다 보니…. 저는 정말 잦은 부상이 계속 반복됐거든요. 완전한 몸 상태에서 뛰고 싶은데, 이게 몸이 참 애매한 상태다 보니까 전처럼 완전한 몸 상태에서 제가 아예 힘을 쓰지 못했던 것 같아요.

Q. 중학생 당시 양예빈을 위한 전담팀이 따로 있었으면 어땠을 것 같나요.

그때는 제가 듣기로는 뭐 제안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코치님들 의견이랑 제 의견을 종합한 결과 전담팀 없이 가보려고 결정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전담팀이 많이 활성화됐고, 다른 선수들도 실제로 많이 그렇게 하는데 이제 저는 그 당시에 그런 제안이 처음이다 보니까 제가 그런 선택을 한 거였죠. 만약 저를 미성년자부터 지금까지 계속 봐주시는 코치님이 계셨다면 그게 정말 복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Q. 해외 유학 제의는 없었나요?

제가 코치님을 오로지 전적으로 믿었거든요. 그런 메시지 같은 건 제가 아닌 코치님을 통해서 들어오는 부분이어서 그 당시 코치님이 어떻게 선택하셨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 당시 코치랑은 결별했나?) 네, 진학을 하면서 코치님이 계속 바뀌었죠. 다른 선생님과도 합을 맞추는 데 시간이 걸리고, 그게 좀 맞춰진다 싶으면 저는 또 전학을 가거나 실업팀에 가야 했고 그런 부분에서 조금 아쉬웠던 것 같아요.

Q. 오늘 성적은 솔직히 조금 놀랐습니다. 이렇게까지 기록이 떨어진 줄 몰랐어요.

오늘뿐만이 아니라 사실 지금 3년째 이러고 있어요. 중학교 기록도 아니에요. 사실 초등학생 때 기록이죠. 400m를 처음 뛸 때 나오던 기록이었어요.

Q. 기량이 이렇게 아쉽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실업 1, 2년 차 때는 몸에 충격이 좀 많이 와서 거의 시합을 안 뛰었어요. 감독님이랑 이야기해서 좀 휴식을 받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제가 학생 때는 저를 가르쳐주는 선생님들을 전적으로 믿고 계속 따랐던 것 같아요. 근데 그렇게 계속 모든 부분을 의존하고 따라가다 보니까 제가 성인이 됐을 때, 막상 세상 밖으로 놓아졌을 때는 제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지금 다시 시작하는 느낌으로, 육상을 처음 시작하는 느낌으로 제 몸도 제가 좀 스스로 알아가고,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부딪혀 가고 있는 과정인 것 같아요.

Q. 당시 연맹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없나요?

저는 다른 주변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결론은 이건 제 몸이잖아요. 기량이 떨어진 부분에 있어서 남들한테 그런 핑계를 대고 싶지 않았어요. 그냥 저 스스로를 계속 깨우치고 도전하자는 그런 생각밖에 없었기 때문에 저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다른 환경 등의 부분에 있어서 변명하고 싶지 않았어요.

Q. 도쿄올림픽 당시, 양예빈 선수가 출전하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어요.

저도 지금 5년, 6년 전 제 몸 상태가 유지됐으면, 지금쯤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출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죠. 그런데 몇 년째 이런 성적을 거두고 있으니까…. 저도 모르겠어요. 지금 계속 문제점을 깨우쳐 나가려 하고 있는데, 아무리 못해도 이 기록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Q. 육상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요.

정말 많았죠. 그런데 어쨌든 제가 시작한 종목이잖아요. 또 저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 응원해 주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이 너무 컸기 때문에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런 분들이랑 같이 다시 또 해보자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어쨌든 육상은 저를 양예빈이라는 선수로 만들어줬잖아요. 몇 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꼭 400m 한국 신기록을 깨고 싶어요.

Q. 혹시 어릴 때의 관심이 독이 됐다고 보나요.

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너무 감사하게도 저를 응원해 주는 팬들이 많았고 관심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그때 당시에는 사실 다른 선수들처럼 관심을 즐겼었다면 더 제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조금은 들긴 하는데... 제가 그런 성격도 아니다 보니 잘 즐기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저는 솔직히 이렇게까지 말하는 게 처음인데, 말할 계기나 시간이 제게는 필요했던 것 같아요. 이제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육상을 조금은 즐기고 싶어요.

중학생이던 자신을 향한 수많은 카메라가 낯설고 무서웠던 어린 소녀는 이제 자신의 마음을 조리 있게 내뱉을 수 있는 22살의 실업팀 성인 선수로 성장했다. 6년 여의 시간 동안 양예빈의 기록은 줄었지만, 육상을 대하는 마음 만큼은 더 커졌다.

지금도 한국 육상엔 수많은 유망주가 탄생하고 또 소리 없이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많고 많은 샛별이 또다시 허무하게 지지 않기 위해, 한국 육상계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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