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최고의 포병을 보유한 군대의 손을 들어주곤 했다. 포병을 ‘현대전의 신’으로 여기기도 했다. 포탄이 날아오는 소리야말로 전장에서 최고의 공포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새로운 전쟁이 펼쳐지는 우크라이나에서 새로운 공포가 등장했다. 날카로운 모터와 프로펠러의 소리가 가까워지면 병사들은 공포에 사로잡힌다. 바로 드론이다. 러시아를 돕기 위해 파병한 북한군 1만1000여 명은 블라디보스토크 인근에서 현지 적응 훈련을 받고 쿠르스크 지역의 전장에 배치됐다. 북한군이 최근 전투에 참여해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이어진다. 우크라이나군이 공개한 영상에는 러시아 군복을 착용했지만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병력이 눈밭에서 드론 공격으로 쓰러지곤 한다. 공중에 나타난 드론을 겁에 질려 쳐다보거나 드론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는 장면도 있다. 화살로 전쟁을 준비한 북한이 조총을 마주한 듯한 충격일 수 있다.
드론, 전장의 새로운 공포
골판지 드론 미사일 대체
‘복제기’ 전략 수립한 미국
한국, 드론 생태 조성 시급
현대전의 필수템, 드론
드론은 무인항공기를 통칭해 일컫는 단어다. 1935년 영국이 최초로 ‘퀸비(여왕벌)’라는 무인항공기를 제작하자, 미국은 ‘드론(수벌)’을 만들어 대응에 나선 게 드론의 시초다. 미·소 냉전이 격화하며 미국은 조종사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U-2 고고도 정찰기 대신 정찰용 드론을 적극 활용했다. 위성 통신과 위성 항법(GPS) 기술의 발달은 지구 반대편에서 원격으로 조종이 가능한 ‘드론의 시대’를 열었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미국은 감시 정찰과 정밀타격능력을 결합한 MQ-1 프레데터와 그 후속인 MQ-9 리퍼를 투입해 테러범을 암살할 정도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동안 군사 강국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드론이 21세기 전쟁의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우크라이나는 2022년 2월 자신을 침공한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해 드론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쟁 초기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무기 지원이 여의치 않자 우크라이나는 원격 조종 항공기 동호인들을 모아 ‘아에로 로즈비드카’(공중 수색 정찰)라는 드론 부대를 가동했다. 이들은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스스로 개발하며 온갖 상상력을 동원했다. 골판지로 일회용 드론을 만들고, 장난감 같았던 민수용 드론에 수류탄이나 포탄을 실어 공격에 나섰다. 감시용 드론과 공격형 드론을 동시에 띄우는 헌터-킬러 팀은 적을 발견하는 즉시 공격에 나서는 역할을 했다. 우크라이나 군은 비싸 봐야 수백만 원 가량인 ‘저렴한’ 드론을 소대나 분대급의 소부대까지 배치하며 화력을 보강했다. 대전차 소대의 드론은 적 기계화 부대를 수㎞ 밖에서 미리 탐지하고 정밀 타격을 유도하거나 자폭 공격을 하고, 적의 병사 한 명 한 명을 쓰러뜨렸다. 이제 분대에서조차 기관총보다 드론을 중시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특히 우크라이군은 현장 전투 경험을 토대로 1인칭(FPV·first person view) 자폭형 드론을 선보였다. 레이싱 드론에 폭약을 결합한 FPV 드론은 빠른 속도로 전장을 드나드는 기동성뿐만 아니라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공격할 수 있도록 했다. 대당 500 달러(약 75만원) 안팎의 드론이 50억원이 넘는 전차를 파괴하는 일도 빈번해졌다. 드론의 효과가 입증되자 우크라이나는 포탄을 찍어내듯 월 2만 대 이상의 드론을 만들어 1만 대 이상을 소모했다. 우크라이나 정보통신부 주도로 200개 이상의 드론 제작 회사가 만들어졌고, 올해 3분기까지만 해도 150만 대의 드론을 생산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역시 이란의 샤헤드-136 드론을 긴급 도입해 2022년 9월부터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를 공격했다. 3.5m 길이에 200㎏인 이 드론은 1500~2500㎞를 비행해 건물과 차량을 공격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자폭 드론을 응용해 ‘란쳇3’라는 드론을 만들었고, 월 30만대 생산이 가능하다며 ‘드론 심리전’에 나섰다.
시급한 유·무인 복합전투 체계
해군력이 거의 없는 우크라이나는 해양 드론으로 2년 남짓 동안 러시아의 흑해 함대 전력의 30%를 손상시켰다. 드론 전쟁은 한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가성비 높은 드론 전쟁을 목도한 미국도 지난 5월 저가의 인공지능(AI) 드론 수 천대를 도입하는 리플리케이터(replicator·복제기) 전략을 수립했다. 바이든 정부가 계획한 전략이지만 트럼프 정부 역시 중국에 비해 수적 열세인 드론 전력 확보를 위해 이 계획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드론의 핵심 요소인 인공위성 사업을 하며 트럼프 당선인에 입김을 행사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 엑스(X) 최고 경영자도 반기는 분위기다. 북한은 2023년 ‘해일’이라는 핵탄두 탑재 수중 무인 드론을 선보였고, 지난 8월에는 1000㎞급의 장거리 자폭 드론과 100㎞급의 단거리 자폭 드론을 선보였다. 게다가 지난 12월 초부터 쿠르스크 전선에서 전투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진 북한군은 전장에서 처절한 희생을 치르며 드론 전쟁을 온몸으로 ‘배우고’ 있다.
물론 현대전에서 중요성이 커지고는 있어도 드론이 만능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구 감소로 병력이 줄어들고 있는 점, 기술의 발달과 가성비를 고려하면 드론을 활용한 유·무인 복합 전투(Manned Unmanned Teaming, MUM-T)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한국은 이미 30년 전 최초의 국산 드론 ‘송골매’를 개발해 2000년에 실전 배치한 드론 선진국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최근에서야 국산 중고도무인기(MUAV)를 개발하는 등 드론 전력의 현대화 속도는 더뎠다. 육군이 2019년부터 드론 봇을 선보이고 국방부가 유·무인 복합전투를 강조하고 있지만, 막상 드론 생태계는 취약하다. 가장 기초적인 드론 소재·부품·장비의 ‘메이드 인 차이나’ 의존도도 높다. 각종 행사에 등장하는 드론 군집쇼 등 보여주기가 아니라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드론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전하는 피의 교훈이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