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 사진전 ‘슈팅 더 퓰리처’
1942년부터 2024년까지 수상작 120여점
전쟁의 참상과 쫓겨나는 이주민 등
현재에도 ‘살아있는 과거’
무너지고 부서진 건물들 가운데 땅이 움푹 패어 있다. 마치 도시 한가운데 운석이 떨어진 흔적 같다. 깨진 콘크리트와 뒤틀린 금속으로 가득한 구덩이 주변에 사람들은 어쩔 줄 모르며 서성인다. 이스라엘 폭격으로 무너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난민캠프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다. 2024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한국전쟁부터 베트남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벌어진 전쟁의 참상 등 근현대사의 주요한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세계적 권위의 언론 사진상인 퓰리처상 수상작들을 모은 ‘퓰리처상 사진전-슈팅 더 퓰리처’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1942년 퓰리처상 사진 부문 수상작이 처음 나온 이후 지난해 수상작까지 총 120여 점에 이르는 사진을 볼 수 있다.
아픈 한국 현대사를 다룬 사진도 있다. 1951년 수상작인 ‘한국전쟁’에서는 수많은 피난민들이 중공군을 피해 폭파된 대동강 철교 위는 건너는 절박한 장면이 담겼다.
너무나도 유명한 대표작들도 빠지지 않았다. 굶주린 수단 소녀를 뒤에서 지켜보는 독수리를 찍은 사진, 베트남전쟁에서 네이팜탄 폭격을 피해 달려가는 소녀를 찍은 사진, 베트콩을 즉결 처형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등을 볼 수 있다. 뉴욕 9·11 테러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참상을 찍은 사진들도 만날 수 있다.
1942년 최초의 퓰리처상 사진부문 수상작은 포드 자동차 공장에서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가 폭행당하는 장면을 포착한 사진이다. 12만 명의 노동자가 파업에 들어갔다. 군중 속에서 갑자기 8명의 사내가 나와 몽둥이와 주먹으로 노동자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사진을 촬영한 밀턴 브룩스는 카메라를 코트에 숨긴 채 군중 속에 파고들어 사진을 찍었다.
대통령 후보의 밑창이 뚫릴 정도로 낡은 구두를 촬영한 사진도 있다. 1952년 미 대선에서 아이젠하워와 겨루던 아들라이 스티븐슨이 다리를 꼬자 신발 밑창에 난 구멍이 드러났다. 윌리엄 갤러거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최초의 한국인 기자의 수상작도 볼 수 있다. 2019년 로이터통신의 김경훈 기자는 미국과 멕시코 접경지대에서 최루탄이 터지자 기저귀 차림의 두 딸을 데리고 다급하게 도망치는 어머니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수상작들을 연대기적으로 배치하고, 사건과 취재 상황을 기록한 설명과 영상 등을 함께 볼 수 있다. 관람객들이 작품이 탄생한 시대적 상황,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참혹한 전쟁, 쫓겨나는 이민자, 폭력에 희생당하는 사람 등을 담은 수상작들은 과거의 문제가 현재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전시를 기획한 시마 루빈은 “퓰리처상 사진전은 단순히 과거를 보여주는 전시가 아니다. 퓰리처상 수상작들은 현재와 연결돼 있다”며 “우리가 이를 이해할 지혜가 있다면 미래는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3월30일까지.